- 라라 소소 51
매달 마지막 주가 되면 약간의 우울과 일정량의 의기소침이 찾아오면서 마음이 다소 분주해진다. 10월은 그게 심했다.
여름 동안 예상치 못했던 찰나의 순간에 나의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려 버려서. 나 자신이 이렇게 나약하다는 사실을 또다시 절감했고, 그게 인정이 되면서도 역시나 나도 어쩔 수 없이 일개 인간이구나, 까지 다시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다. 잠을 자기도 힘들고 숨은 턱 막히고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쿵쿵거리고 머릿속은 고장 난 스크린처럼 수도 없이 지지직거려서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건 기대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시간이 다소, 많이 필요했을 수밖에.
넋이 나가 있는 바람에 집중을 하나도 하지 못했고, 계획했던 분량의 작업을 거의 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당연히 결과물도 형편없거나 거의 나오지 못했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 점점 쌓여가는 실망감. 사람이 약해져 있으면 뭐든지 다 작아지기 마련이다.
몸에 배어 있는 ‘책임감’이라는 건 참 무섭다. 그 때문에 살아나기도 했겠지만, 숨고 싶고 가만히 어둠 속에 몸을 웅크리고만 있고 싶어서 더 힘든 날들이기도 했다. 나 괜찮아요, 나 아무렇지도 않아요, 나 평소와 같아요, 나에게 집중하지 말아요, 더 이상 말 시키지 말아요. 푹 꺼져있는 눈과 시꺼먼 얼굴색을 감추기 위해 나아지지도 않는 화장을 하고, 무슨 일 있는 건 아닌지 물어볼 수 없도록 오히려 좋아 보이도록 옷을 차려입고 몸을 움직였다. 부정적인 생각과 뭉쳐있는 말들이 솟구쳐 나왔지만 꾹 눌러 참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조곤조곤하게 긍정적인 말을 했다. 마치 내가 선한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면 지금의 나와는 다른 그런 사람이 된다고 믿고 있듯이.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말을 혐오하는데, 시간이 지난다고 힘듦이 줄어들거나 덜 아픈 게 아니니까. 주위 사람들에게서 서서히 잊혀 갈 뿐, 당사자는 여전히 이전의 시간에 머물러 있다. 다만 표정으로도 말로도 더 이상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나도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안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와 아픔이 나아지는 건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거리를 두게 되어 24시간 시달림에서는 벗어나게 된다는 걸 조금은 느끼고 있다.
더운 여름이 하루하루씩 지나가며 일부러 거리를 두고자 했던 치열한 노력이 마음을 조금씩 가라앉혀주었다. 마음에서 비롯된 게 분명한 심각한 몸살과 목감기도 나에게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아파도 계속 몸을 움직여야만 하는 상황에서 비움을 생각했다. 약을 먹고 몸살의 통증이 반짝 사라지면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핑계로 다수 안에서 홀로 떨어져 고요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갔다. 누군가 아프든 놀라든 충격에 멈춰 있든 행복으로 그 순간을 박제하고 싶든 어느 순간이든지 상관없이 시간은 누구에게도 영향받지 않고 변함없이 흐른다. 시간의 멈춤, 세상의 멈춤, 시계의 멈춤, 나의 멈춤, 그러나 흘러감.
10월은 열심히 재미있게 집중했다.
모든 걸 뒤로하고 멈췄던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자료를 찾느라 아침이 밝아오는지도 몰랐고, 잠을 잘 자지 못해도 집중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만큼 나아졌다. 쭈굴쭈굴했던 마음이 미세하게 펴지고 있었다. 더 나아가야 하지만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일단은 멈출 때가 되었으니, 1차 마감을 하고 나니 마지막 주가 되었다.
목요일 저녁에는 명동에 간다.
명동 성당에서 예비신자들을 도와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 선배 봉사자의 권유로 코로나 때부터 온라인으로 교육을 받고 봉사하기 시작했는데, 작년부터는 대면으로 모임이 진행되고 있어서 모임이 있는 날에는 명동에 가야 한다. 나는 목요일 저녁반 고정으로 예비신자들이 세례 받기까지 6개월의 시간 동안에 한 그룹을 담당하여 이들과 동반하고 있다. 신부님의 강의 1시간이 지나면 각 그룹으로 나누어 봉사자와 함께하는 모임 시간이 1시간 더 있다. 성인이 되어 스스로 신앙을 찾아온 예비신자들의 마음을 가만히 살펴보다 보면 유아 세례를 받고 모든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자라온 내가 부끄러워질 때도 많다. 세상에 당연한 건 티끌 하나만큼도 없는데 말이다.
보통은 4호선을 타고 명동역에서 내려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한 번 더 계단을 오르고 카드를 찍고 나와서 또다시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온다. 명동의 중심 거리 쪽으로 나가는 출구에는 늘 사람으로 붐벼서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는 평소에 그 반대편 출구로 나오곤 한다. 명동역은 4호선 전철에서 내리면 출구가 맨 앞과 맨 뒤, 극과 극으로 되어 있다. 내가 나가는 출구는 중심 거리에서 두 블록이 떨어져 있고 골목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전철을 타고 내릴 때, 이쪽에는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다.
목요일.
날씨가 약간 흐렸다. 마감을 하고 충전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에, 마지막 주 치고는 마음이 조금은 편안했고,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쉬거나 책을 읽거나 걷거나 마음에 드는 그림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후가 되고 창밖으로 해가 조금씩 저물어 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리고 다소 우울한 마음이 올라왔다. 더불어 학생에게 말을 건네는 내 목소리도 톤이 낮아졌다. 이상한 마음.
그날의 기분으로는 명동에 가고 싶지 않았다. 왜 그런지도 모르는 마음으로 예비신자들을 만나 어떤 나눔을 할 수 있을까. 결국에는 봉사자라는 가면을 쓰고 봉사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만 하는 허물분인 그런 내가 되어버리고 말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놈의 ‘책임감’. 개인적인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내 책임과 의무를 저버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명동을 향했다.
명동역에는 이상하게도 사람이 많았다. 평소에는 이러지 않는데 무슨 일인가 싶을 정도로 고개가 갸웃거렸다. 외국인들도 많았다. 이들과 함께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와서 한 번 더 계단을 오르고 카드를 찍고 나와서 또다시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골목으로 들어갔고, 두 블록이 지나 중심 거리로 가는 길목이 눈에 들어왔는데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었다. 무서웠다. 그리고 생각이 났다.
오늘이 핼러윈이구나.
10월의 마지막 날. 저 수많은 사람들이 핼러윈을 즐기러 나왔는지 아니면 그저 목요일 저녁의 외출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들의 일정은 나에게 중요하지도 않다. 하지만 2년 전 이태원 참사가 생각났고, 지난 주말에는 기억하고 있었는데, 10월 29일 당일에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잊고 있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해 질 녘의 그 우울과 기묘한 감정은 여기에서 비롯된 게 분명했다.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있던 무언가가 나에게 일깨워준 거다.
기억은 중요하다.
시간은 해결해 주지 않는다. 그곳에 머물러 있는 이들이 있다.
매월 마지막 주에 찾아오는 우울은 그전 삼 주 동안 그달에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자책하는 마음에서 온다. 또 남은 며칠 동안에는 조금이라도 마무리를 지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분주해진다. 이번 10월은 평소와 달랐고, 마지막 주도 그래서 평소와 다르게 지나가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 여전히 우울했고, 그 우울한 마음으로 신부님의 강의를 흘려서 듣고 그룹 모임을 시작했다. 가면을 쓰고 싶지 않아서 솔직하게 예비신자들에게 얘기하며 나의 마음을 나누었다. 그리고 모두를 위해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