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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ara 라라 Oct 02. 2024

나는 원한다.

- 라라 소소 50


 나는 여유로운 마음을 원한다. 게으름에는 여유로운 마음이 대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유로움을 빙자하여 실컷 게으를 수 있다. 게으름의 종류도 여러 가지인데, 앞서 말한 여유로움을 빙자한 게으름과 불안한 게으름으로 크게 구분이 된다. 여유로움을 빙자한 게으름은 일상에서 약간 벗어나서 나에게 쉼을 준다는 변명의 거리가 있어 어느 정도는 스스로를 이해시킬 수 있지만 불안한 게으름은 마음에 불안을 품고 있어 스스로에게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기만 한다. 나는 자주 게으르고 그중 불안한 게으름의 빈도수가 월등히 더 많다. 불안한 마음으로 게으름을 부릴 때는 보통 마감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작업이나 일을 빨리 마무리해 놓는 것이 나에게 훨씬 유리한 경우다. 그럼에도 그 마지막 시간에 딱 맞추기까지 게으름을 피우며 불리한 상황으로 몰아간다. 배짱 두둑하게 제대로 여유를 부리거나 제대로 쉬거나 제대로 게으름을 부리면 좋으련만 막상 불안한 게으름 앞에서는 제대로 쉬지도 못할 거면서 신경을 많이 쓰곤 한다. 이런 게으름은 결과가 좋지 않다. 해야 할 일을 마감 시간 안에는 마무리를 하긴 하지만 늘 조금 더 일찍이라고 예상했던 시간 안에는 제대로 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업은 둘째치고 마음이 불편한 상태로 게으름을 피우면서 하는 행동들이 별로 만족스럽지가 않다. 시간이 넉넉하고 하루 종일 마음껏 게으름을 피워도 될 때 게을러야 한다. 여유로운 마음은 핑계가 아니라 게으름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요즘 왜 이렇게 여유로운 마음이 생기지 않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새벽에 책을 읽을 때에는 마음이 여유로울지도 모르겠다. 그냥 읽고 생각하고 책장을 넘기고 바깥을 한번 쳐다보고 멍하니 있다가 또 책을 읽고 시계를 보면 어느새 새벽이 밝아오고 있다. 시간을 보지 않아도 해가 뜨는 시간이 늦어지기 시작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단지 9월에서 10월로 넘어갔을 뿐인데, 6시는 되어야지 밝아오기 시작한 새벽 기운이 이제는 6시 30분이 조금 지나면서 밝아지더라. 확실히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나 보다. 낮에는 아직도 더운 기운이 있지만 그늘에 가면 다소 시원하고 새벽과 저녁에는 깜짝 놀랄 정도로 싸늘하다. 창문을 닫고 이불을 포근히 덮고 자야 하는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가을이 오래가면 좋겠지만 기나긴 여름을 보내고 난 후의 가을은 후다닥 지나가 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벌써부터 하루하루 지나가고 있음이 아쉬운 마음이다. 낮은 조금씩 짧아지고 밤이 조금씩 길어질 것이다. 낮에 쨍하게 반짝이는 햇살도 물론 좋다. 또, 밤의 어둠이 조금씩 가시면서 사물이 무채색에서 유채색으로 바뀌어 가는 그 순간의 발견이 마음에 잔잔한 기쁨을 가져오기도 한다. 기쁨을 안고 잠이 들면 해가 다 뜨고 환해져 버렸을 때 눈을 뜨게 되는데, 새벽과 한낮 그 중간으로 낮의 빛보다는 아침에 느지막하게 떠 오를 그 햇살이 나의 잠을 방해하지 않고 나의 아침을 상쾌하게 해 주리라 믿는다. 더위에 지쳐 잠 못 이루다가 늦어진 기상 시간, 오늘보다 내일은 조금이라도 더 일찍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갑자기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는 것은 몸에 좋지 않다. 나에게만 일수도 있지만 나는 느린 사람이라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껏 게으르고 싶은 마음을 가득 담아도 그렇게 하지 못할 때에는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내 마음과 몸이 스트레스를 먼저 받아버린다. 스트레스는 미세한 통증을 동반하고 콕콕 쑤시며 나를 건드린다.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빠르게 할 일을 해치우고 잠을 자면 되는데, 그게 또 그렇게 되지가 않더라. 빠르게 해치우는 것도 잘되지 않고, 평소에도 느리지만 다음날에 빨리 일어나서 나가야 될 때에는 해야 할 일들이 더 더디게 이루어지는 것만 같다.




 짐을 쌀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느림과 게으름은 나의 디폴트, 거기에 더하여 여유로움이 절실히 필요해. 일단 가방을 꺼내 놓고 이것저것 중에 어떤 것을 챙겨야 할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잘 때 입을 옷이나 실내복이 하나 있고, 갈아입을 외출복이 하나 있고, 속옷이 있고 양말이 있고 읽을 책이 있고 그러면 될 텐데, 자꾸 뭐가 하나씩 추가가 된다. 이를테면 선크림이 있어야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자책이 담겨있는 이북 리더기도 챙겨야 하고, 여러 가지 충전기도 챙겨야 하며, 갑자기 찾아올 추위에 대비해서 몸을 다 덮을 수 있는 얇고 커다란 타월이나 조금은 도톰한 무릎 담요도 하나 챙기고 싶어 진다. 반대로 어떤 상황에서는 덥게 느낄지도 모르니까 얇은 옷도 하나 챙기고, 손수건도 잊지 말아야 한다. 글을 쓰거나 손쉽게 메모를 하려면 노트도 있어야겠고, 그러려면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펜도 필요하다. 커피는 매번 나에게 필수로 필요한데 일회용 용기는 환경에도 좋지 않고 가지고 다니기에도 불편하니까 텀블러를 챙겨야 한다. 물과 같은 무색의 음료를 위한 텀블러와 커피같이 색이 있어 주의를 조금 더 기울여 세척을 해야 하는 텀블러 두 종류가 적당하다. 커피를 사 먹지 못할 때를 대비해서 일회용 인스턴트커피도 몇 개 챙겨야 한다. 혹시 모르니까 비타민도 충분히 챙기고 두통 및 기타 통증을 대비하여 자주 먹는 상비약을 챙겨야 한다. 이렇게 하나씩 늘어나다 보면 짐이 또 많아진다.


  맞다, 이번 가족여행은 수영장이 있는 숙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매일 오전, 아침 식사 후에는 수영이 예정되어 있고, 오후에도 수영장에서 보낼 시간적 여유가 상당히 있을 테니까 수영복도 챙겨야 한다. 나는 물을 좋아한다. 물놀이도 수영도 물에 몸을 담그고 있어도 이유 없이 재미있다. 가벼운 수영복, 래시가드, 그리고 수영복 재질이나 방수가 어느 정도는 되고 바람막이 기능도 하는 위아래 입을 옷 등, 짐이 몇 개 더 늘었다. 이런저런 짐을 정리하고 챙기면서 목욕용품도 넣고 화장품도 담는다. 이렇게 글로 정리를 하고 나면 금세 챙기겠지 싶지만, 또 그렇게 물품 품목대로만 챙기지도 않으니까 시간이 더 걸릴 게 분명하다. 




 마음의 여유는 도대체 어디서 오게 만들 수 있을까. 이런 준비도 즐기면서 하면 좋을 텐데. 약간 플러스알파로 즐기고 있지만 여유는 별로 없고 시간이 많이 드는 준비가 나의 일상이다. 마치 연수 봉사 들어가기 전날에 봉사자 파견 미사를 봉헌하고 기쁜 마음으로 집에 들어와서 짐을 챙기고 하나씩 다시 확인해 보는 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는 그다음 날에 연수가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 잠을 자지 못하고 출발해야 하는 그런 상황. 컨디션 조절을 잘하고 연수 봉사를 해야 하지만 결국에는 어쩌면 가장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들어가게 되어 버리는 첫날의 그 아이러니한 상황.


 가족여행은 연수 봉사와는 다르다. 연수는 그 안에서 받는 충만함과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과 무엇보다도 간식이 있다. 중간중간에 틈을 이용해서 쉴 수도 있다. 물론 나는 경험이 있는 봉사자이니까 처음 하는 봉사자들에 비해서 그렇게 쉬는 요령을 조금은 갖고 있다. 밥을 먹지 않고 잠시 쉬는 방법도 있다. 가족여행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내가 아파도 티를 낼 수가 없고 내가 힘들어도 내 마음대로 쉬거나 조절하는 게 어렵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 (엄마 포함) 둥이 조카들과의 시간은 소중하고 즐겁지만 평소 내가 사용하는 에너지에 비해 세 곱절은 넘게 더 소모한다는 부작용이 있다. 기분이 좋고 기운이 올라가는 건 조카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만 가능하다. 이번 여행이 좋으면서도 걱정이 되고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숙소가 나 혼자만 사용하는 방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가족과 함께하는 꽉 찬 사흘의 시간 동안에 나만의 여유를 찾기 위해서는 책과 노트와 연필을 들고 어딘가로 가야만 한다. 문제는 숙소가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고 개별 행동을 하는 걸 아버지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숙소 안에 늦게까지 하는 커피숍이 있으면 좋겠다.


 나만의 시간과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여유를 느끼고 싶다. 여유로운 마음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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