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 소소 49
나는 사냥꾼이다.
사냥꾼이란 무엇인가? 사냥꾼은 외부 세계를 지각하고 살피며 이 세상을 살아간다. 무언가를 할 때 지켜보고 듣고 주목하고 체계적으로 배우고 관찰하면서 나의 것으로 만들어 나간다. 나는 과연 사냥꾼인가? 정확히 사냥꾼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사냥꾼이 되고 싶을 때가 많다고 대답해야겠다. 무언가를 배울 때 혼자서 부딪히고 천천히 알아가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제대로 된 걸 듣고 이해하며 나아가는 걸 더 좋아하기도 한다. 후자가 더 체계적이기 때문이고 습득이나 학습에 드는 불필요한 시간을 줄일 수 있을 때가 많아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 스스로가 굉장히 체계적이거나 똑 부러지는 타입이라고 말하기에는 소위 양심이라고 일컫는 가슴속 어딘가가 간질간질하다.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계획적이고 자신에게 엄격하게 대하기도 하지만 모순적으로 온몸을 둘러싸고 있는 게으름이 그것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된 정보를 얻고 깨달은 걸 실천하며 내가 이해를 제대로 한 게 맞는지 확인하는 사냥꾼 같은 나의 모습을 우러러 바라보고 싶은 건 아닐까 싶다.
어떤 것을 새롭게 배우고 해 냈을 때, 나는 과연 그 과정과 결과를 어떻게 지나가는지 생각해 본다. 최근에 성취한 것이 뭐가 있을까? 딱히 생각 나는 게 없네. 그건, 없는 것 같다. 어딘가에 조금이라도 있을지도 모르니까 '같다'라고 모호하게 마무리해야지.
아, 새로운 강의가 하반기에 시작했을 텐데 찾아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수업 준비도 공모전 준비도 프로그램 정리도 할 게 많아서 바빠야 하는데 계획만 있고 실천이 없어 큼직한 칸을 가지고 있는 스케줄러가 텅텅 비어 있다. 펼쳐 보지 않고 지나가는 하루들이 많아 프리랜서로서 자격 미달이다. 내가 알아서 찾아보고 나아가야 하는데 떠 먹여주는 게 먹고 싶어 진다. 이런 사냥꾼 같지 않은 라라, 키아라. 같으니라고.
나는 사냥꾼이다.
사냥을 나간다. 무언가를 죽이고 싶지는 않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사냥의 정의는 이렇다.
1. 명사 : 총이나 활 또는 길들인 매나 올가미 따위로 산이나 들의 짐승을 잡는 일.
2. 명사 : 힘센 짐승이 약한 짐승을 먹이로 잡는 일.
사냥꾼은 사냥하는 사람이고 사냥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므로 위의 의미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어찌 되었든 짐승을 잡아야 한다. 먹이로 잡아야 한다. 총이나 활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길들인 매를 가지고 있지 않다. 올가미는 만들면 되려나. 무엇보다도 나는 힘센 짐승이 아니다. 잡아먹히는 약한 짐승이 더 어울리겠다. 사냥꾼이 되고 싶지 않다. 곰사냥이라는 단어가 언급되는 단편 소설을 대화의 주제로 삼은 글을 읽었다. 곰사냥을 떠나는 이야기였나. 책을 덮는 순간 모든 내용은 사라졌다. 곰사냥이라는 단어만 남았다. 하지만 그 단어를 읽었을 때 <곰 사냥을 떠나자>라는 그림책이 떠올랐다는 사실만은 기억이 난다. 들판을 지나고 호수를 지나며 신나게 곰사냥을 떠나자고 노래를 부르는 그림책이다. 흑백 그림과 컬러 그림이 번갈아 가며 페이지가 지나서 인상적이고, 내가 마음에 담고 있는 작가님의 그림인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놀랐던 그림책이다. 곰사냥도 사냥이다. 곰을 잡아야 하는 것. 사냥이라고 해서 꼭 무언가를 죽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림책에서도 곰은 나오지 않고 결국 마무리는 따스한 집 안이다.
죽이지 않고 사로잡는 사냥. 내가 어떤 것을 무엇으로 사로잡을 수 있을까. 그건 꼭 총과 활, 길들인 매나 올가미 따위가 아니더라도 매력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에게는 어떤 매력이 있는가.
나는 몽상가다.
몽상이라는 단어가 좋다. 몽상을 발음할 때 이응 받침의 그 울림이 좋다. 몽상가는 마음속에 사물을 보는 눈이 따로 있다. 무언가를 배울 때 자신만의 길을 찾고 직접 부딪혀서 자신이 납득할 만한 방식으로 알아내는 타입이다. 어떻게 보면 필요 없어 보이고 돌아가는 지난한 과정이 있을지라도 이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뭔가 큰 변화를 얻는다. 나는 몽상가일까. 몽상가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뜬구름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뭔가 매력적인 것 같기도 하다. 몽상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 같은데 이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냥꾼 장착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몽상가 장착을 끌어내려 버린다. 몽상가라고 하면 총체적으로 예술적인 면과 고리를 맺게 된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머릿속에 구름이 뭉게뭉게 있는 사람들. 그래서 어디든 조금은 다르게 느껴지는 사람들. 비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평범하지는 않은 사람들. 요즘에는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다 몽상가 같지는 않다.
나는 몽상가다.
몽상가이기를 꿈꿨다. 꿈꾼다. 꿈꾸고 싶다. 뭔가를 할 때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사냥꾼처럼 체계적이기도 하지만 또 아무 곳이나 떠돌아다니는 그런 계획 없음이기도 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많이 알아보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막상 여행지에 가면 하염없이 돌아다닌다. 골목이나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계획에 없었던 어떤 곳이든 배회하기를 즐기고 공원이나 자연이 그저 보이는 곳에서 가만히 오래도록 앉아 있기도 한다. 순간 그 장소가 마음에 들면 책을 읽거나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내는 게 좋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앉아 있는 사람들, 무언가에 열중하고 어떤 걸 하거나 하고 있지 않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좋다. 그건 여행이 아니어도 평소에 자주 하는 행동이다. 이런 시간이나 뭔가를 끄적이는 시간이 좋다. 몽상가들이 하는 수많은 행동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막 떠들거나 내 안에 있는 에너지 같은 뭔가를 소모하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지도. 내뱉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내뱉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에너지가 너무 닳아 없어지는 기분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그래서 전화 통화는 나에게 너무 힘든 ‘작업’ 중의 하나이다. 차라리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다.
몽상가는 어떤 대화를 할까. 타인과 대화를 하면서 좋은 생각을 떠올리고 창의적으로 생산적으로 결론을 낼까.
여행 중의 어떤 기억을 떠올릴 때면 각기 다른 느낌을 느끼게 될 때가 있고 같은 느낌을 지니고 있을 때가 있다. 난 햇살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초록과 파랑의 냄새도. 자주 사진의 기억에 의존한다. 사진에 의해서 기억하고 느낌을 새기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때때로 바뀌고 달라져 기록을 하고 싶어 진다. 나는 몽상가가 아닌가.
‘사냥꾼과 몽상가’는 나탈리 골드버그의 글에서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사냥꾼과 몽상가’를 그녀의 친구들에게서 들었다고 했다. 그들은 카를로스 카스타네다가 쓴 ‘돈 후앙’에 관한 책에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 단어들은 오랜 시간과 많은 사람들을 거쳐 나에게까지 이르렀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요즘 MBTI로 사람의 성향을 많이 이야기하듯이 사냥꾼인지 몽상가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건 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종의 재미있는 놀이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사냥꾼인가, 몽상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