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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ara 라라 Sep 18. 2024

프리랜서의 슬픔, 그 기간.

- 라라 소소 48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을 하며 직장인들에게 가장 부러웠던 건 매달 정해진 날에 들어오는 ‘월급’이었다. 프리랜서의 일이 일 한 만큼의, 아니, 일이 나에게 들어오고 내가 들어온 그 일을 해 낸 만큼의 수입이 생기는 거라 매달 불규칙한 수입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게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물론 초기에는 퇴직금이 있었고 통장에 잔고도 좀 있어서 그런 생각을 자주 하지는 않았다. 단지 미래에 대한 약간의 불안을 느낄 뿐이었다. 또 그간 일을 하며 나 몰라라 방치했던 몸은 점점 악화되어 수술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건강상의 문제가 퇴사의 주된 이유 중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천천히 준비하고 수술을 받아서 몸을 회복시키는 데 중점을 두느라 거의 일 년간은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기도 했다.


 여유롭게 하루를 내가 원하는 대로 보낼 수 있으니 참 좋은 시간이었다.


 그 당시에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기에 생활비가 그리 많이 들지는 않았고 감사하게도 입에 풀칠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도 꾸준히 들어왔다. 풀칠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은 지금도 마찬가진데 풀의 점성이 점점 더 묽어지고 있다고 해야 할까. 너무 잘 쑤어져서 밥알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물만 벙벙해. 산 입에 거미줄을 치지는 않으니 그나마 다행.     


 건강을 생각해서 대부분은 일을 많이 하지 않다가 몇 달 동안은 몸이 피곤하게 일을 하기도 하고, 그래서 기본으로 지출하는 생활비보다 조금 더 벌기도 하고 그런 생활을 해 오고 있다. 하지만 일이 많지 않다. 그렇게 예전처럼 의욕이 생기지도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수입과 이어지지 않고 결실을 보이지 않으니 사기가 계속 저하된다.     




 한 달에 한 번 월급일 이외에 직장인이 부러워지는 시기가 또 있다. 그건 바로 명절 때.     

 

 명절을 앞두고 며칠 전부터 전철이나 버스, 길거리에서는 사람들 손에 무언가가 하나씩 들려있다. 보통은 누가 봐도 딱 알 수 있을 정도의 선물 세트다. 크기는 각양각색이고 종류도 다양할 거다. 회사에 다닐 때, 어느 회사에서도 보너스를 넉넉하게 받아본 적은 없지만 명절이나 어떤 때가 되면 선물 세트는 하나씩 받아오곤 했다. 외국인이 많았던 직전 회사에서는 스팸이나 참치가 들어있는 선물 세트가 인기가 좋았다. 나는 샴푸 같은 생활용품이 들어있는 세트도 나쁘지 않았고, 엄마가 요리할 때 사용하시는 여러 올리브유나 참기름 같은 세트도 괜찮았다. 간혹 과일을 선물 받을 때는 무겁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집으로 가져가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프리랜서로 일하면 명절 때 선물 세트를 받는 일이 거의 없다. 때가 되어 작은 선물이라도 챙겨주는 사람도 거의 없다. 굳이 신경을 쓸 필요가 없을 테니까.


 혼자 사니까 스팸이나 참치가 그렇게 귀한 식량이 아닐 수 없다. 마트에 가서 막상 돈을 주고 사려고 하면 은근히 비싼 가격에 차마 손이 가지 않는다. 몇 번을 망설이다 그냥 놓고 오기도 부지기수다. 명절에 선물 세트로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직장인이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한다.     



 아버지는 퇴직 직원들 모임이 있어서 명절 때 종종 단정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선물이 들어온다. 올해는 버섯 선물 세트가 왔는데 박스를 열자마자 너무 좋은 향이 나서 내가 집으로 가지고 오고 싶었다. 그 모임에서도 선물을 받지만, 퇴직 후 가입한 아파트 경로당에서도 명절마다 김 선물 세트를 준비해 문 앞에 놓고 간다. 아버지가 퇴직 후 심심한 마음에 옆집 할아버지를 따라 아파트 경로당에 갔는데 다들 너무 연세가 많으셔서 아버지가 막내뻘이라고 했다. 그래서 재미 없어진 아버지는 경로당에 자주 나가지 않으셨다. 그것도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는 아버지가 중간 정도의 나이는 되지 않을까 싶다.     


 엄마는 주부로 오빠와 나를 키우셨지만, 봉사활동을 포함한 다른 활동도 활발하게 하셨다. 그 덕분인지 엄마가 그간 신경 쓰고 베푼 게 많아서인지 명절 때마다 여전히 집으로 선물이 온다. 엄마가 받는 선물은 좀 다양한 편이다. 핸드크림이나 화장품이 올 때면 나도 덩달아 잘 쓰게 되어 기쁘다. 오빠와 새언니도 회사에서 선물을 받아온다. 보너스도 받겠지. 오빠는 발이 넓어 이곳저곳에 선물을 많이 보내기도 하고 또 많이 받아오기도 한다. 명절은 선물 세트 전달의 기간이기도 하다.      


 나만 아무것도 없다.

 

 물론 온 가족이 선물을 받아오니까 나에게도 콩고물이 떨어진다. 스팸이나 참치가 눈에 보이면 한두 개 슬쩍 챙겨 오기도 하고, 필요한 거 있으면 가져가라는 말과 동시에 떨어져 가는 생필품을 얼른 집어 들기도 한다.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기회를 노리며 흘끔흘끔 쳐다보기도 하고.     


 오빠가 지인들에게 이번 추석 명절 선물로 가볍게 먹을 수 있는 홍삼을 준비했다고 하면서 나에게도 한 박스 주었다. 감기도 호되게 앓고 여름 내내 더위에 지쳐 몸에 힘이 없었는데 열심히 챙겨 먹어야겠다고 다짐하며 그날 바로 한 봉지를 먹었다. 홍삼 함량이 낮아서인지 쓰지 않고 달달한 맛이 났다. 유일하게 받은 명절 선물이 핏줄에게서여서 씁쓸할 뻔했는데, 마침 달아서 마음이 조금 놓였다.     




 주어진 일은 열심히 하는 편이다.


 무엇이든 주로 즐기면서 재미있게 집중해서 하려고 노력한다. 약간 미련할 정도로 해서 늘 문제가 된다. 회사 생활도 그러다 보니 몸을 신경 쓰지 않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나는 좀 느리고 게으르고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하는 일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인데 회사에서는 어쩔 수 없어서 더 애쓰고 노력한 게 아닐까 싶다. 지금보다 생활이 더 힘들어지면 다수를 상대해야 할 거고, 고정적인 수입이 들어오는 일도 시작해야 할 거다. 프리랜서로의 삶을 원하지만 산 입에 거미줄을 치지 않는다고 삶이 영위되는 건 아니니까.      


 프리랜서의 슬픔 기간을 맞이하여 선물 세트를 되돌아보았고, 이전의 회사 생활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요즘은 취업이 어려워서 내가 원한다고 직장인이 다시 되지는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의 프리랜서로서 삶을 즐기며 또다시 열심히 살아가는 수밖에 없겠다.     




+ 덧,


‘나도 프리랜서 하고 싶다.’ ‘낮에 카페에 가다니 부럽다.’ ‘프리랜서니까 네가 시간 좀 맞춰죠.’ ...     


- 프리랜서가 평일이나 낮시간을 활용하는 데 있어 직장인에 비해 조금 더 자유로울 뿐이지 언제든지 시간을 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프리랜서도 일하는 시간은 대부분 정해져 있다. 또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공휴일과 쉬는 날을 좋아한다. 일을 하지 않으면 수입이 전혀 없다. 일을 더 하거나 야근을 해도 수당이 따로 나오지 않고 억울할 때도 많다.     


+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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