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을 때
한창 마음이 힘들 때 자살에 대해서 나는 정말 다방면에서 생각해 보았다. 하필 몸도 안 좋아지는 바람에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는 생각에 내 온 마음과 몸, 심지어 손가락 끝 얇디얇은 혈관과 머리카락까지도 모두 시커멓게 물들어있는 기분이었다.
맨 처음에는 침실 천장에 있는 환풍구에 목을 매달까 생각해 보았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환풍구는 나를 지탱하기에는 너무 여려 보여서 포기했다. 우리 집 베란다로 나가서 여기서 떨어지면 어떨지도 상상해 보았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다리나 팔을 못쓰게 될 수는 있겠지만 죽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그다음에는 요새 유행하는 마약으로 만들어진 패치를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50장도 넘게 붙이고도 자살에 실패한 어떤 할머니의 뉴스를 읽고 포기했다. (어떻게 구할지도 사실 몰랐다.) 그 이후에는 스위스에서 자살을 도와주는 단체에 대해 검색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단체는 자살을 도와주기 위해 요구하는 서류가 굉장히 많았다. 의학적으로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내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놓였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아마 당시의 나처럼 삶을 끝낼지 고민하는 사람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 존재하리라 생각이 든다. 그가 나의 글을 읽어줄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모를 누군가를 위해 또 미래에 언젠가 다시 그 상태로 회귀할 나를 위해 남겨두는 오늘의 주제. 죽고 싶을 때 어떻게 하지?이다.
먼저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나와의 대화를 나누어보자. 나를 영희라고 지칭헀다. 실제로 해보는 분들은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해보시길 부탁드린다.
왜 죽고 싶어?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
너무 고통스러워서 죽고 싶어
왜 고통스러워?
나는 계속 열심히 했는데 바뀌는 게 하나도 없잖아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영희가 정말 힘들었구나. 얼마나 힘들었으면 죽고 싶은 생각을 했을까.
응 정말 너무 힘들어
영희가 진짜 힘들만해. 나라도 포기하고 싶었을 거 같아. 지금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대단해. 울고 싶은 만큼 우리 오늘은 맘껏 울자
저번 편에서 이야기한 셀프컴패션에서 감정을 완전히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것과 같다. 죽고 싶은 내 마음을 이해해 주자. 불쌍한 나를 안아주자. 자살을 생각할 정도의 감정이라면 절대 하루 만에 해소가 되지 않지만 그래도 지쳐서 눈물이 나지 않을 때까지 엉엉 울어보자.
우리는 매일 수많은 생각을 한다. 생각이 드는 것을 막을 순 없다. 하지만 꼭 우리가 그 생각대로 하진 않아도 된다. 그 생각에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 나의 생각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하여 쓴 글을 참고로 붙인다.
오늘은 우리 마음껏 아파하자. 그동안 고통받아온 나에게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진심으로 아파할 권리가 있다. 죽는 것에 대해서는 오늘 하루만 생각을 미루고 오늘은 아팠던 나의 마음에 집중하자. 죽을 때 죽더라도 그동안 꾹 참아왔던 나에게는 아파할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마음껏 쓰자 일단. 그리고 죽는 건 하루만 있다 다시 생각하자.
감정을 일단 해소해야 그다음이 보인다. 죽으려는 사람에게 그 힘으로 살 방법을 찾으라는 것은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마라톤으로 지구 전체를 돌라는 것과 같은 잔인한 말이다. 폭우가 멈춰야 뛰든 걷든 할 수 있다. 내 마음의 비가 다 내릴 때까지 잠시만 나를 기다려주자. 아직 어떤 행동도 하지 말고 잠시만 비가 내리는 잠시만 나를 기다려주자.
그리고 어느 정도 비가 멈췄다면 나에게 물어보자.
고통을 멈추는 것과 죽는 것은 동의어가 아니야
내가 날 도와주려면 뭘 해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