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울한 로보트 Sep 18. 2023

1. 최선을 다했지만 불행했다

다시 새롭게 내딛는 첫 발걸음

회사를 다니던 시절,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마다 "ㅇㅇ과 ㅇㅇ의 인터페이스에 있는 사람이라는 구절을 종종 사용했다. 잘난 척을 한 문장으로 그럴듯하게 요약하고 싶었던 어린 마음에서 만들어낸 말이었다. 


글로벌 Top 3 대학 졸업,  ㅇㅇㅇ 장학금 수상, 국내 #1 대기업 ㅇㅇㅇ 직속 리더 등 밖에서 보기에 하나하나 참 가치 있는 경력이지만 정작 그 안을 헤쳐 나가던 나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참 고통스러웠다. 1%도 행복한 순간이 없었다면 거짓이겠지만 그 1%의 시간 외에 99%는 불행했다.

 

1분의 휴식도 없이 오전부터 오후까지 9시간 연속으로 이어지는 미팅 속에 화장실에 갈 시간이 없어서 궁여지책으로 저녁 7시까지 물도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바싹 마른오징어처럼 일했다. 매일 첫 끼가 저녁 8-9시를 넘는 건 예사였지만 해야 할 업무가 너무 많아서 배고픔을 느끼지 조차 못했고 물어뜯은 열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온 피로 인해 노트가 얼룩지는 것은 예사였다. 


금요일 주간 보고를 앞두고 월요일은 오전 5시, 화요일은 6시, 수요일은 7시, 목요일은 8시 퇴근을 하며 5일 간 채 10시간도 자지 못한 상태로 16주를 버티며 머리가 와장창 빠지기도 했다. 


이를 악물다가 이가 다 빠져버렸다


불행이라는 불길에 휩싸인 불사조가 자신을 태우듯 나는 매일 자살 충동과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결국 삼십 대 중반의 나이에 심각한 중증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자발적/비자발적 백수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감염에 밥을 씹기는커녕 혀가 입천장에 닿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핸드폰 타자로 의사소통을 하며 모든 음식을 갈아먹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갈 길을 잃은 나는 몸도 마음도 부서져버린 상황이었다. 정신과 상담 첫날 의사는 나의 지인들에게 나의 아픔을 나누라고 조언했다. 나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나는 이 조언이 참 어려웠다. 


아픈 기억들을 꺼내어 묘사하는 단어를 하나씩 읊는 것은 내 손으로 칼을 들어 내 마음에 한 글자 한 글자 난도질로 글쓰기를 하는 것이다. 기껏 용기 내 칼을 뽑아 들어 나의 아픔을 줄줄이 공유하더라도 무표정 또는 마음에 와닿지도 않는 알맹이 없는 조언으로 나를 가르치려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예사였다. 난도질 난 상처에 사포를 문지르는 기분이랄까. 또 어느 누군가는 내 아픔을 도구로 삼아 자신을 위로하는데 사용했다. 안부를 묻는다는 미명하에 친구라는 가면을 쓰고 내 아픔을 꼬치꼬치 물어댄다. (덕분에 그런 친구들에 대한 내 마음을 모두 잘라냈다.) 용기 내 마음의 상처를 애써 꺼내고 싶지도 또 미지의 확률 속에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는 그 누군가의 반응에 아프고도 싶지 않다.


 나 혼자 스스로 나아질 방법은 없을까?

그런 나에게 답을 주고자 시도해 본 많은 치료 과정 중 나를 살렸던 조언들을 하나씩 담아 보았다. 나의 경력/학위와 전문성이 겹치는 영역은 아니지만 자살의 절벽에 놓여있던 환자의 입장에서 나를 구해낸 여러 운동과 말들을 담아보았다. 이 분야를 전혀 모르던 나 스스로가 이해할 수 있게 전문적인 용어들도 단순화하여 작성했다. 나도 여전히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 놓여있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나를 끌어올려준 다수의 심리치료와 책 들 중 가장 큰 효과를 준 내용만을 담아보았다. 꼭 나만큼 힘들었던 이가 아니더라도 마음속에 비가 내리고 있는 그 누구에게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나의 부족함과 무지로 혹 여나 온전히 담지 못한 내용이 있진 않을까 노파심에 여러 번 읽고 또 읽었지만 여전히 실수가 있더라도 너그럽게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봐주시길 조심스럽게 부탁드린다. 

 

마음이 아픈 그 누군가에게 한 문장으로라도 손을 내밀 수 있다면,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잘 부탁드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