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합니다. 출근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면 밖은 어둑합니다. 지금도 날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잿빛추위가 거리에 내리면 마음도 춥습니다. 한동안 한식위주로 먹었으니 오늘은 양식이 먹고싶습니다. 양식 중 따뜻한 것은 많지만 오늘은 가성비도, 맛도 좋은 파스타가 먹고 싶습니다.
사실 양식을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굳이 사랑한다면 디저트쪽이랄까요. 스프는 희멀게서 싫고, 소스는 이게 뭘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어서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좀 먹다 보면 느끼합니다. 중학교때 양식 만들기 체험으로 계대에 가서 실습한 적이 있는데, 그때 선생님이(교수거나 주방장임이 분명합니다. 말투가 딱 그렇습니다.) “레스토랑 가서 '어우 느끼해'하는 사람은 촌스러운 사람입니다”라고 했었습니다. 네, 저는 촌스러운 사람이니 느끼하지 않은 파스타, 아라비아따를 먹을겁니다.
조리도구가 전자레인지밖에 허용되지 않는 기숙사생은 파스타를 먹기 위해 총 10분의 시간을 투자합니다. 10분의 시간은 8분, 1분, 여분의 1분으로 나눠집니다. 유튜버 하루한끼 님의 '역대급 초간단 파스타' 레시피입니다.
8분
다용도 그릇으로 쓰는 작은 양푼이에 파스타면을 반으로 부러뜨려 넣습니다. 학교 앞 마트에서 500g에 990원으로 산 오뚜기 파스타면입니다. 면의 종류나 상태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저로서는 매우 가성비 좋은 면이죠. 면을 집을 때는 항상 고민됩니다. 이게 1인분인가. 아니면 너무 많나. 분명 딱 쥐었을 때 100원 동전이 1인분이랬는데, 100원이 언제 이렇게 작았나 싶습니다. 이정도면 옛날 10원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더 집어보면 또 500원같습니다. 좀만 더 하면 엽전크기같고 좀만 덜면 우리 엄마 어렸을 때 쓴 버스 토큰 크기만하고. 포기하고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잡습니다. 그거 더 먹었다고 살찌고 빠질거였으면 왜 수많은 다이어터들이 존재하겠습니까.
뜨거운 물을 면이 잠길만큼 받습니다. 그리고 전자레인지에 넣고 8분을 돌립니다. 물론 7분정도만 해도 충분하지만 다 된 줄 알고 소스까지 비비고 다시 돌려 따뜻하게 한 입 앙, 하고 베어물었는데 속이 딱딱하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다시 돌리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고요. 꼬들한 것 보다 완전히 익은 게 좋은 저는 충분히 돌립니다.
그럼 8분동안 무얼 하느냐. 때에 따라 다릅니다. 빨래를 갤 수도 있고, 책을 읽을 수도 있죠. 아니면 밀린 드라마를 보거나 급한 일을 마무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왕 파스타를 야매로 만들기 시작한 거 파스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파스타, 스파게티. 파스타는 어딘가 레스토랑가서 먹는 느낌이고 스파게티는 피자집에서 사이드로 나오는 느낌입니다. 둘이 뭐가 다를까요. 검색해보니 스파게티는 이탈리아 요리 '파스타'의 한 종류라고 합니다. 그럼 파스타가 상위개념이겠군요. 스파게티는 롱 파스타의 일종으로, 원래는 '면'의 종류를 지칭하며 특정 요리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파스타는 뭐냐?
이탈리아어로 '반죽'을 의미하며 팽창시킨 밀가루 반죽에 물, 계란을 섞어 다양한 모양으로 만든 뒤 끓이거나 구워먹는 음식이라고 합니다. 이탈리아의 주식으로 건면과 생면으로 나뉘고......
이쯤 알면 되었습니다. 어디가서 구분하는 유식한 척은 할 수 있겠군요. 더 알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다양한 파스타의 모양과 맛을 상상하다보면 어느새 8분은 훌쩍 가 있을테니까요.
1분
물을 버린 뒤 아라비아따 소스병을 따 줍니다. 이때 간혹 병이 잘 열리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냉장고에 너무 오래 있던 까닭입니다. 혹은 저처럼 손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일수도 있습니다. 언제 한번 면은 다 되었는데 소스병이 안 열려서 5분동안 울먹인 적 있습니다. 실제로 울진 않았습니다. 전 어른이니까요. 경상도 장녀에게 이것은 위기도 아닙니다. 하지만 서럽긴 서러웠습니다. 왜 이 나이 먹고 병 하나 못 따나...
그러면 숟가락을 이용해줍니다. 맥주병 따는 원리로 소스병 뚜껑사이 숟가락을 밀어넣고 움직여줍니다. 그렇게 틈을 벌려 압력을 빼주면 돌렸을 때 뿅! 하고 열립니다. 이 방법으로 남의 도시락 뚜껑도 열어준 적이 있습니다. 아주 유용하죠. 역시 밥 먹는 숟가락, 한국사람 힘의 원천은 밥입니다.
소스를 4숟가락정도 내어 비빕니다. 아라비아따는 매콤한 토마토소스입니다. 이거 먹다보면 그냥 토마토소스 못 먹어요. 어딘가 심심합니다. 잘 비볐으면 1분 전자레인지에 돌려줍니다. 면이 뜨끈하다고 하나 차가운 소스와 만나면 미적지근하게 식어버립니다. 그건 참을 수 없어요. 소스가 묻은 숟가락을 입에 넣고 자리를 정리하며 1분을 기다려줍니다.
여분의 1분
이 여분의 1분은 크게 두 방향으로 나뉩니다. 하나는 그래도 미적지근한, 혹은 덜 익은 것 같은 파스타를 구제하기 위해 전자레인지에 돌리기. 다른 하나는 룰루랄라 호실로 가져가서 먹기 입니다. 알맞게 익었는데 아직 10분 중 1분이 남았다고요? 당신은 축복받았습니다. 드세요.
파스타는 사실 고급음식이 아니라 서민적인 음식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고급 이미지가 잡힌 것인데, 우리나라만큼 파스타 가격이 비싼 곳이 없다고 합니다. 거의 분위기, 자리 비용이라고 할 정도로 너무 비싸요. 부담스럽습니다. 뭐 하나 시킬려고 하면 서울 강남쪽에는 기본이 18,000에서 시작하니 이거야 원, 집에 있으면 그 돈으로 몇번 을 해먹겠는데. 이렇게 또 가성비만 찾는 인간이 되어갑니다. 어쩔 수 없어요. 밖에 나가는 순간 숨 쉬는 것 부터 다 돈입니다.
그래도 집에서 만들어먹는 파스타는 꽤 가성비가 넘칩니다. 게다가 파스타는 외외로 영양이 많은 음식입니다. 토마토 베이스의 파스타를 생각해보세요. 온갖 야채와 향신료가 갈려진 토마토소스, 듀럼밀이 재료인 파스타면. 듀럼밀은 단백질과 글루텐함량이 상당히 높습니다. 단백질이 부족한 기숙사 혹은 자취생에게 아주 좋은 탄수화물이죠. 굳이 토마토소스가 들어가지 않은 파스타라고 해도 흔히 해먹는 알리오올리오를 생각해보세요. 웅녀의 자손답게 마늘을 한 바가지씩 넣어 먹는 우리의 모습을. 마늘은 또 얼마나 몸에 좋습니까? 항산과, 항균 등등의 효과가 있어 마늘밭에는 해충도 없다고 그러죠.
밥 먹기도 귀찮고 라면이나 배달으식도 질리면 파스타,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돌리고 물버리고 섞고 다시 돌리기만 하면 끝이잖아요. 반찬 이것저것 낼 것 없이 그릇하나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