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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고양이 Nov 11. 2021

나 인턴, 호떡 먹고싶다

이것은 필사적으로 잠에서 깨기 위한 새끼 인턴의 과몰입8

배가 고픕니다.

오늘은 호떡이 먹고싶습니다.

 







갑자기 단 것이 생각나는 이유는(언제는 생각 안 났냐만은) 오늘이 11월 11일, 빼빼로데이라서 입니다. 정말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챙기지 않았는데 팀장님이 우리팀에 포키를 돌렸습니다. 앗싸.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은 착한 사람입니다. 오늘도 상사에게 충성을 다짐합니다. 소고기 사주는 상사는 의심해야 하지만 간식을 잘 베푸는 상사는 천사입니다. 동기도 빼빼로를 돌립니다. 뭔가 나도 돌려야 할 것 같지만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아 불안한 마음을 안고 빼빼로를 먹습니다. 


달콤한 빼빼로를 보니 단 것이 먹고 싶고, 겨울날의 단 것 하면 호떡 아니겠습니까. 붕어빵도 있지만 오늘은 기름진 것이 먹고 싶으니 호떡을 생각합니다. 날이 확 추워지면서 이제 가슴 속에 누구나 현금 천원씩은 품고 다녀야하는 계절이 왔습니다. 전자금융수단을 애용하는 애송이들은 살아남을 수 없는 계절이죠. 





  호떡은 왜 호떡일까

영화를 보면 호떡의 어원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장면순서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우리말을 연구하는 윤계상은 오랑캐가 먹는 떡을 두고 오랑캐 호(胡) 와 떡을 합쳐 호떡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말을 듣던 유해진은 특유의 '한층유해진눈빛' 으로 호떡은 '호호 불어먹는 떡'이라 호떡이라고 반박합니다. 들은 척도 않던 윤계상은 나중에 귀여운 애기가 호떡을 먹을 때 호떡이라는 이름은 '호호 불어먹어서'라고 설명합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위키백과를 뒤져봅니다. 9세기 에 '호병'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송나라 역사서 에도 등장한다고 합니다. 입당구법 어쩌고가 무슨 책인지는 모르겠으나 순례행기인 걸 보아 오늘날의 여행에세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호병을 기록했다니 꽤나 인상적이었나보군요.


중국에서도 호떡은 호떡(호병)입니다. 여기서 '호'자는 중국 입장에서의 오랑캐인 돌궐족, 선비족을 칭합니다. 그래서 중국의 호떡은 우리나라처럼 겉에 기름기가 없습니다. 빵에 가까운, 마트에서 10개입으로 파는 호떡과 비슷합니다. 


중국드라마에 보면 몽골 출신인 유귀인이 임신 중 호떡을 찾는 모습이 나옵니다. 고향의 맛이라며 여주인공에게도 권하고, 매 끼니 구운호떡을 챙겨먹습니다. 이때 호떡의 모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기름에 지지듯이 구운 호떡이 아닙니다. 물론 달고, 뜨거운 것은 똑같으나 꾸덕한 빵 같은 질감이죠. 이참에 연희공략 한번 보세요. 재밌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도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보지 않겠죠? 그래요, 호떡 이야기나 해봅시다.



 한국 호떡

우리나라의 자장면은 중국요리가 아니라 우리나라 요리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혹자는 그러던데, 그렇다면 호떡도 우리나라 음식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뭐든지 맛있으면 가져와서 한국패치를 해내고야 마는 한국인은 호떡도 한국패치에 성공시켰는데요, 이제는 거의 소울푸드가 되었죠. 우리나라에 호떡이 들어온 것은 19세기 말이랍니다. 


시장어귀나 버스정류장, 지하철 역 근처에는 늘 호떡집 아니면 붕어빵집이 있습니다. 오늘은 호떡이야기를 하니 호떡집 이야기만 해보겠습니다. 작은 포장마차 안에는 보통 나이 지긋하신 분이 계십니다. 재림고수입니다. 숙련된 기술과 깊은 내공으로 우리의 손에 따뜻한 호떡을 쥐여주실 분이죠. 호떡을 주문하면 반죽을 떼어다 모양을 잡기 시작합니다. 꼭 슬라임 같아서 손으로 눌러보고 싶었던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반죽 중앙에 홈을 만들어 그 안에 설탕을 넣습니다. 정확히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떨때는 견과류도 들어있고, 달달한 계피맛이 납니다.


홈을 나머지 반죽으로 메우고 모양을 공처럼 잡고 나면 조심스럽게 기름판 위에 올려놓습니다. 치익, 자글자글 소리가 일며 귀를 따뜻하게 해줍니다. 만드는 과정부터 공감각적 심상을 느끼게 해주니 이 얼마나 문학적인 간식입니까. 조금 시간이 지난 뒤 반죽을 뒤집고 뒤집개로 꾹 눌러줍니다. 동그랗던 호떡은 납작하게 변합니다. 이제 노릇해질 때까지 뒤집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보수적인 저로서는 이런 호떡만이 호떡이다-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맛있으면 장땡이나 무슨 뚱뚱한 빵을 튀겨놓고는 가위로 반을 가르고 그 안에 씨앗이 든 설탕을 슥 뿌려주고, 종이컵에 넣어 씨앗호떡입니다 하며 파는 것을 보았을 때 기함했습니다. 당연히 납작한 호떡에다 안에 든 흑설탕에 씨앗이나 견과류가 잔뜩 들었는 줄 알고 기대했었는데 말이죠. 30분 줄 서서 먹었다가 엄청 실망했었습니다. 이럴거면 그냥 고로케를 먹었지... 그냥 도넛을 먹었지... 호떡은 빵이 아닌데...



 종이컵

누군지 몰라도 종이컵에 호떡 담아 줄 생각한 사람은 사랑해줘야합니다. 에어컨 창시자처럼 대대손손 구전되어 떠받들어져야합니다. 이렇게 외관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편한 것을 생각해내다니. 분명 팔을 한껏 들어올려 엄마 손을 잡아야했을 나이에는 마분지같은 종이로 호떡을 감싸고 먹었는데 말이죠. 


손이나 옷에 묻을 걱정도 없고, 안의 뜨거운 흑설탕이 터져나와 고이면 맨 마지막 조각은 극강의 단맛으로 절여진 상태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속이 뜨거워지는 따뜻함이라니. 이 얼마나 좋습니까. 코로나때문에 길거리에서 핫뜨핫뜨하면서 먹지도 못하고, 야속하기만 합니다. 









 외할아버지는 MBTI가 분명 E로 시작하고 F일 게 분명합니다. 여행다니시길 좋아하고, 멋내는 것 좋아하시고, 감정도 섬세하고 가끔 아니 사실 잘 삐지기도 하셨고 손주들 손이나 입에 뭐라도 더 사다주고 싶어하셨습니다. 우리 집에 자주 오셨는데, 집에 가만히 티비만 보고 있는게 아니라 심심하면 밖으로 활발하게 돌아다니셨습니다. 풍이 오기 전만 해도 외갓집가면 자전거를 태워주셨죠. 누군가 업어주거나 어디에 얻어타는 걸 좋아했던지라 마을 한 바퀴를 돌 때면 신이 났습니다. 


손주들보면 지갑을 못 열어서 안달이라(출처 : 우리 엄마) 맨날 우리 집에 온 저녁이면 '너 뭐 안먹을래', '닭튀김 안 먹고 싶나', '피자 안 먹고 싶나', '하드 사줄까, 콘 사줄까' 하며 물어보셨죠. 지극히 유교적 어른공경교육을 받았던지라(사실 지금은 다 까먹어 나몰라라 하지만) 그때마다 '아뇨 괜찮아요' 하고 사양했지만 그럴 때 마다 할아버지는 씨익 웃으며 몇번 더 물어봅니다. 그러면 '치킨(or 피자 or 월드콘) 먹을래요'하며 못 이기는 척 원하는 바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학원 갔다 오면 식탁에 큼지막한 종이 봉투가 한 두개 놓여져 있습니다. 열어보면 서문시장에서(혹은 칠성시장) 사온 호떡입니다. 탑으로 쌓아도 될만큼, 아니 이미 작은 탑이 봉투 안에 담겨 있습니다. 만원어치는 넘게 산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다시 시골로 내려가며 엄마에게 '니 먹지 말고 아 줘라' 하셨답니다. 눅눅해졌지만 여즉 뜨끈뜨끈한 호떡을 저녁 먹기 전 낼름 집어 먹습니다. 달고 고소하고, 입이 번들거려도 즐겁습니다. 이제는 먹을 수 없어 조금 슬픕니다. 이것저것 사달라고 애교도 부리고 조르고 고집도 피워볼 걸. 이제 눅눅한 호떡은 누가 사줄까요. 아니, 눅눅해질만큼 많은 호떡을 누가 그 먼데까지 가서 나에게 사줄까요.





배고파요.

호떡이 먹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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