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필사적으로 잠에서 깨기 위한 새끼 인턴의 과몰입10
배가 고픕니다.
오늘은 어탕국수가 먹고싶습니다.
얼마 전 본가에 갔다 왔습니다. 막상 가서는 식욕도 돋지 않고 기운이 빠져 뭘 만들어 먹기보다는 조용히 쉬며 요양만 하다 왔습니다. 신기하죠, 회사에서는 식욕이 돋아 잇몸이 근질거리고 속이 후벼파지는 것 마냥 아파죽겠는데 정작 가서는 멀뚱히 있고. 인간사 어떻게 마음대로 되겠습니까. 그러다 딱 하나 먹고 싶다고 생각난 것이 있습니다. 본가는 남쪽이지만 그래도 추웠고, 날이 추우니 또 뜨끈한 국물이 생각하는 한국인이고, 그래서 먹고 싶었던 것은 '어탕국수'입니다.
어탕국수?
어탕국수라는 말이 생소한 사람도 있을겁니다. 없나요? 그럼 저만 생소했나보군요. 어탕국수는 말 그대로 어탕, 물고기탕에 국수가 들어간 음식입니다. 연상을 도와드리자면 추어탕 비슷한 것에다 에다 국수가 추가된 것이라 보면 되겠군요. 어탕수제비라는 이름으로도 존재합니다. 우리 동네에 하나 있고, 시내 동성로쪽에도 하나 있죠.
미꾸라지가 주로 들어가는 추어탕과는 달리 어탕은 사실 잡탕이라고 보면 됩니다. 민물고기를 되는대로 갈아서 넣고 추어탕처럼 여러 야채를 넣고 부글부글 끓이는 겁니다. 그래서 고기가 건더기로 보이지 않고 국물이 걸쭉합니다. 죽은 싫어하지만 걸쭉한 국물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딱 안성맞춤이지요.
어탕국수가 어디어디에 좋고, 이런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좋다고 적힌 효능 읽어보면 거의 만병통치약이거든요. 낙지나 장어집에 적힌 효능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믿지 않으면서도 먹으면 어쩐지 기운이 솟는 느낌입니다. 그러니 기분 좋게 먹습니다.
동성로 어탕수제비
잘 돌아다니지 않는 저와는 달리 엄마는 에너지가 넘칩니다. 전 집에서 휴식을 취하지만 엄마는 가끔 밖에 나가 햇빛도 쬐고 바람도 쐬어야 에너지가 생깁니다. 그래서 시내 곳곳에 숨어있는 맛집을 잘 알고 계십니다. 아주머니들이 인정한 맛집이 진짜 맛집이라는 것 아시죠? 우리 엄마는 아직 아줌마는 아니지만(제 눈에는) 인간 맛집인증마크라고 불러도 됩니다. 맛과 청결, 위생, 편리함과 가성비 다 보장하거든요.
계산성당 근처에는 어탕수제비집이 있습니다. 국수도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늘 수제비만 먹었거든요. 주택을 개조한 식당은 앉아서 먹어야합니다. 허리가 아프면 벽에 기댈 수 있는 자리에 앉으세요.
어탕수제비를 시키면 정갈한 반찬들이 나옵니다. 대여섯가지 정도의 반찬들이 나오는데, 음식이 나올 때 까지 그것들을 집어먹으며 수다를 떱니다. 이야기가 시들해지고 배 고픈데 안 나오나, 생각하면 귀신같이 제 말 하는 거 알아채고 수제비가 나옵니다.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 수제비는 펄펄 끓습니다. 암만 뚝배기에 담겨도 미적지근하면 성에 안 찹니다.
산초가루를 작은 한 스푼 탁! 털어넣고 공깃밥을 말아둡니다. 그러면 더 걸쭉해지고 밥알은 국물을 머금어 따뜻하고 촉촉해집니다. 그리고 조금씩 앞접시에 담아 떠먹습니다. 뜨거운 것도 잘 먹는 제 동생은(어탕을 그닥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뚝배기에 바로 떠먹습니다. 하지만 고양이혀인 저는 앞접시에 담아 후후 불어 먹습니다. 산초의 향이 혀의 중앙에서 느껴집니다. 부들부들한 수제비가 목구멍을 넘어갑니다. 든든하고 맛있는 국물과 말랑한 수제비, 저녁 먹을 때가 되기 전까지 뱃속은 따뜻하죠.
북구 어탕국수
공공기관 근처에는 가성비 맛집이 많습니다. 점심시간만 되면 수많은 인원을 수용함과 동시에 그들을 만족시킬 맛과 가격이 되어야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발달한 것일까요? 그래서인지 북구청 근처에도 맛집이 많습니다. 잔치국수, 쌀국수, 국밥, 해장국, 고깃집 등등 다양합니다. 어탕국수도 이곳에 있습니다.
골목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어탕국수집이 나옵니다(정확히 어느 골목인지는 모릅니다. 그걸 알았으면 제가 서울에서 길을 잘 잃지도 않았겠죠. 저는 오만가지 루트를 계산해서 짠 뒤 길을 잃어버리는 길치라고요.). 여기도 앉아서 먹는 곳입니다. 그래도 밝고 깔끔합니다.
수제비보다 국수를 추천합니다. 국수에는 수제비 몇 개 넣어주거든요. '덤' 같은 느낌이죠. 이 집도 어탕을 잘합니다. 여긴 뚝배기가 아니라 커다란 그릇에 나옵니다. 국수를 양껏 먹다보면 벌써 배가 부릅니다. 밀가루의 위력이지요. 허겁지겁 배를 채워넣었으면 천천히 국물을 음미하며, 이따금 수제비도 씹어주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동성로는 북구청 근처보다 양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뭐랄까요, 들깨 맛이 더 난다고 해야하나. 조금 더 고소한 느낌이 있습니다. 북구청은 양과 산초의 맛으로 승부를 봅니다. 어쨌거나 둘 다 배부르고 맛있습니다.
이때금 해장국은 뼈다귀의 살을 발라내는 것이 귀찮습니다. 어렸을 때는 젓가락질이 서툴러 손아귀가 아팠죠. 국밥도 너무 많이 먹어 물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머릿속에 슥 모습을 드러내며 유혹하는 것이 바로 '어탕국수'입니다. 참 요망한 놈입니다. 입맛 없는데... 하면서도 국물 싹싹 비우게 만드는 아주 극악무도한 놈이죠. 심지어 건더기도 많이 안 보여서 많이 먹지 않았으며 보양식이니 건강식이라는 착각까지 하게 만드는 녀석입니다. 우리나라 국물의 나트륨이 얼마나 들어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미뤄둡시다. 그럴거면 두부만 먹고 살지 뭐하러 국물을 먹겠어요.
요즘 기운이 없었는지 본가에 가서 먹고 싶은걸 생각하는데, 암만 생각해도 딱히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나지 않지 뭡니까. 고기도 별로야, 매콤한 것도, 기름진 것도 자극적이니 별로야. 그냥 밥이나 먹을까 생각하다 딱 떠오른 놈이 요놈입니다. 보양이 하고 싶었나 봐요.
배고파요
걸쭉한 어탕국수 먹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