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고양이 Dec 07. 2021

나 인턴, 치킨 먹고싶다

이것은 정신적 허기를 달래기 위한 새끼인턴의 먹부림1

배가 고픕니다.

오늘은 치킨이 먹고싶습니다.










기분이 저기압일때는 고기 앞으로 가라했습니다. 삶이 팍팍하면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라도 호화로워야죠. 여기 가난한 자들을 위한 호화로운 음식이 있습니다. 전 세계로 나가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고, 다양한 변화를 거치면서 원조가 보존되는 것은 물론 단어의 뒤에 '느님'이 붙어 신격화된 음식. 그 이름하야 '치킨'입니다. 


요 몇 주 기운이 없었습니다. 별 먹고 싶은 생각도 없었습니다. 직장인이 회사에 갔다오면 기운이 빠지는 것은 당연지사, 집에서 휴식을 취하면 되겠죠. 하지만 충전기가 고장났는데 암만 코드를 연결한다고 충전이 될까요. 충전기가 고장난 상태로 몇 주를 방전 상태로 살다 갑자기 입에서 군침이 돌기 시작합니다. 턱이 찡- 하고 마치 새콤한 것을 먹었을 때 처럼 통증이 생기면서 침이 잔뜩 고입니다. 네, 배가 고픈겁니다. 그리고 오늘은 치킨이 먹고 싶은 거죠.




치킨 삼대장

어렸을 때는 간장만 주구장창 먹었습니다. 사실 첫 치킨 상호명은 기억도 안납니다. 그때 동네 치킨은 다 간장, 후라이드, 양념 요 세가지가 전부 였습니다. 브랜드고 뭐고 할 것이 없고 그냥 쿠폰을 많이 주는 곳, 콜라 서비스 되는 곳, 가까운 곳에서 시켰죠. 


어렸을 때 후라이드는 부어치킨 후라이드만 좋아했습니다. 껍데기가 매콤했거든요. 아마도 후추 같은 향신료가 들어간 까닭이겠죠. 다른 집 껍데기는 이런 매콤함과 바삭함이 없어서 부어치킨 시키자고 외쳤는데 우리 동네 부어치킨이 망한 뒤로는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어쨌든 이 후라이드라는 녀석은 우리 집에서 사랑받지는 못했습니다. 아빠만 좋아했죠. 그래서 의리로  시키는 녀석입니다. 


간장은 호불호가 갈리지 않고 다 잘 먹는 메뉴였습니다. 짭쪼롬하고 달짝지근한데 누가 거부할까요. 양념처럼 손에 다 묻는 것도 아닙니다. 바사함을 유지하면서도 튀김껍데기에 양념이 잘 밴 간장치킨은 우리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했죠. 동생이 태어난 뒤로 우리 집은 늘 간장 한마리 후라이드 한마리를 시켰습니다. 그게 제일 베이직한 조합이기도 하거니와 우리 가족 모두를 만족 시키는 조합이거든요. 브랜드는 늘 호식이입니다. 호식이. 제일 싸요. 한창 자라는 사내애를 먹이는 데 고기가 얼마나 드는 줄 아십니까? 

많이 들어요. 무진장.


양념치킨이라 하면 빨간 고추장 베이스의 양념을 말하죠. 사실 양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싫어한다에 더 가깝군요. 맛이 싫은 건 아니지만 입가와 손에 덕지덕지 묻는 감촉이 썩 유쾌하지 않습니다. 젓가락을 들고 뜯는다고 해도 입가에 묻고 젓가락으로 먹다보면 한계가 있습니다. 왜 치킨광고를 손에 들고 찍겠어요. 다 이유가 있다고요.


하지만 양념은 무조건 싫어! 하며 빗장을 닫았던 마음을 와장창 부시고 들어온 역사적 사건이 있었습니다.





오븐 전성기 훌랄라

한창 <패밀리가 떴다>가 유행할 때였나요, 김종국과 김수로가 훌랄라 광고를 했었습니다. 오븐에 구워 기름이 빠졌고 매콤한 양념을 덧바른 영상이 tv 광고로 나왔죠. 엄마아빠는 저녁에 저를 재우고 오붓하게 술안주로 훌랄라를 종종 시켜먹었습니다. 늦은 밤에 자극적인 양념을 바른 치킨은 좋지 않다는 것이 엄마의 생각이었죠. 저는 제가 잘 때 엄마아빠가 종종 맛있는 걸 시켜먹는단 걸 안 뒤로 잠에 쉬이 들지 않았습니다. 


뭔가 그런 느낌이 있잖아요, 오늘 저녁도 맛있게 먹었고, 딱히 뭐 할일은 없고 분위기 좋은 저녁에 꼭 뭔가 이벤트로 더 나올 것 같은 느낌... 저녁에 뭐 배달 시켜서 특별한 날이 될 것 같은...그런 인간의 촉 말입니다. 어릴 때 저는 요런 촉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밖에서 부시럭부시럭소리가 들리고 아빠의 맥주캔이 딸칵, 하고 따지는 소리가 나면 그냥 잠에서 깬 척 슬그머니 밖으로 나갑니다. 이미 식탁에 음식은 펼쳐져있는데 어쩝니까, 제가 그렇게 간절히 쳐다보는데. 식탁에서 달덩이같이(출처 : 아빠) 웃으며 같이 먹는거죠.


한 날은 훌랄라를 시켰어요. 양념에 멈칫거렸지만 그래도 닭인데...치킨인데... 하면서 입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눈 앞에는 별천지가 펼쳐졌죠.


달짝지근하고 매콤한 맛이 혀에 들어옵니다. 아직 어린 입맛에는 매워 눈물이 찔끔 나기 전에 오븐에 구워 기름이 쪽 빠진 닭껍질과 살이 씹힙니다. 기름이 빠졌다고 해도 껍질은 껍질이잖아요, 씹으면 씹을 수록 기름지고 매콤한 맛에 푹 빠집니다. 살은 얼마나 야들야들하고 부들부들했는데요. 그때 한동안은 치킨 먹고 싶으면 무조건 훌랄라 훌랄라 숯불! 이렇게 외쳤습니다. 




시즈닝 전성기 뿌링클

그러다 우리 집은 호식이에 다시 정착했습니다. 앞에서 말했었죠? 자라는 남자애는 많이 먹습니다. 성장기 사내애 먹이려면 농장 하나가 거덜나야합니다. 초원의 집 시리즈 중 5권은 로라의 남편 앨먼조의 어린시절 이야기인데, 앨먼조는 자라나는 아이라 그런지 식탐도 많고 많이 먹으려 합니다. 거기서 앨먼조의 어머니가 자라는 사내애를 먹이는 건 쉽지 않다니까 늬앙스로 말했었죠.


그래서 뿌링클이 전국적으로 유행하여 한철 메뉴가 아니라 주메뉴로 정착될때까지, 서울에 올라갈 때까지 저는 뿌링클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동아리 회의하다가 먹게 되었죠. 그때 느낌은 별천지가 아니라 신세계였습니다. 말 그대로 새로운 세계가 열린거죠.


짠 맛과 약간 새콤한 맛, 달콤한 맛, 어딘가 향신료 맛도 나고 정확히 무엇인지 정의할 수 없지만 '맛있다'라고 인지된 맛이 혀에서 날뜁니다. 뭐 이런게 다 있나 싶어 음미해먹어봅니다. 그 옆의 치즈볼도 한입 먹어봅니다. 치즈가 피자 광고의 치즈처럼 쭉 늘어나지는 않아도 안의 치즈와 그 외피가 적당히 달짝지근하고 쫀득한 것이 입안을 즐겁게 하는 데에 그만입니다. 


저는 그 뒤로 뿌링클, 매운뿌링클, 맛초킹(이건 찹쌀탕수육같은데 이것도 매콤한 것이 술안주나 저녁거리로 딱입니다), 자메이카 어쩌고, 핫후라이드등등 다양한 맛에 도전을 하게 되었죠.










하지만 불행한 소식이 있습니다. 치킨가격이 오른다는거죠. 가격상향이 불가피하다는데, 내 재정상태도 불가피한데 이건 어떻게 안봐줄까요. 매번 배달 어플을 키고 먹고 싶은 것을 누르지만 배달비와 최소주문의 콜라보로 늘 고민하다 어플을 끕니다. 그리고 그냥 집에 있는 밥 데워 먹죠. 집의 밥도 본가의 반찬을 들고온 거라 맛있지만, 왜 그런 날 있잖아요. 그냥 저녁먹기는 싫고, 돈은 써야겠는데 너무 비싼건 부담되고, 적당히 근기있으면서도 내 입을 충족시켜줄 그런 음식이 땡기는 날. 예전에는 다리만 주구장창 먹었지만 이제는 뻑뻑살의 미덕도 알게된 지금, 치킨이 땡기네요.





배가 고파요. 

치킨 먹고 싶어요.

작가의 이전글 돌봄일기#12 - 귀찮음과 덧없음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