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배경지의 꿈 없는 어른의 여행

유럽여행기 20

by 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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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엔츠 호수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조식을 챙겨 먹고 기차를 타고 근처 호수로 갔다. 기차를 타고 15분 정도를 가면 한적한 브리엔츠 호수에 닿는다. 역 앞 호수를 산책하고 사진 찍고 챙겨 온 과일과 음료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구름 낀 날씨여서 조금 아쉬웠지만, 어느 때보다도 예쁜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한참 돌아가며 사진을 찍는데 가족 일행이 호수 앞에 걸터앉아 과자를 먹는데 백조가 찾아왔다. 과자를 던져주니 잘 받아먹고 나중엔 더 달라며 시비를(?) 걸었다. 그 모습이 신기했던 지나가던 개가 와서 백조 곁으로 다가가자, 백조는 날카로운 이빨을 내보이며 사납게 울고 날개를 퍼덕였다. 호기심에 다가온 개는 백조의 날갯짓을 보자마자 줄행랑을 쳤다. 백조가 이렇게 공격적인 동물이었을 줄이야..? 우리에게도 먹을 것이 있는지 서서히 삥(?)을 뜯기 위해 접근했고 냉큼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이미지로만 무언가를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한정된 정보만으로 사건을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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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백조 소동을 뒤로하고 벤치에 앉아 고요한 시간을 즐겼다. 함께 앉은 언니에게 말했다.

"저는 이렇게 오랫동안 여행을 한 적이 없었는데 여행을 할수록 일상이 소중해지는 것 같아요."

과자를 던져주던 가족일행을 보면서 든 생각이었다. 나에겐 여행이고 찰나의 경험이며 비일상적인 시간이 누군가에겐 일상이고 지속되는 삶이며 비순간적이라는 점에서. 나도 일상으로 돌아가 소중하고 지속적인 관계들을 쌓아 함께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당장에라도 한국에 가고 싶어졌다. 돌아간다고 충족이 되는 영역인지 알 수 없지만 서도 말이다.

일상에서 멀어져 봐야, 나에게 있던 것들이 비로소 빛났음을 깨닫곤 한다. 왜 항상 타인의 것은 더 값져 보일까. 인간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이 오래될수록,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답을 찾지 못해도 답을 찾지 못한 채로 괜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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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하나, 기차역, 호수를 따라 이어진 산책길과 벤치. 애니메이션의 배경지의 등장인물이 되어 꿈 없는 어른이 한갓진 생각을 흩뿌린다.


마지막 여행지인 파리로 향하기 전에 콜마르라는 프랑스의 소도시에 들렀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배경지라는 마을은 여태껏 본 동화마을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시간이 다되어 나오니 찾아가는 식당마다 줄이 길었다. 대게 예약을 하고 오는 듯했다. 배가 고픈 우리는 한참을 헤매다 날이 어둑해지고 나서야 겨우 식당을 하나 찾아 들어갔다.


나는 지금껏 유럽음식이 입에 잘 맞았었다. 탄수화물 중독자인 나에게 매일같이 다양한 종류의 빵의 향연인 조식은 즐거웠고 파스타, 피자, 으깬 감자 등 맛있다기 보단 무난히 먹을 만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만큼은 음식이 맞지 않겠구나를 예감했다. 주문한 것은 염소 치즈 피자와 연어 피자, 에스까르고(달팽이요리)였다. 오,. 염소 치즈 피자에서는 염소가, 연어 피자에서는 연어가 느껴졌다. 살아있는 염소와 연어가 옆에 앉아 있는 듯했다. 동물원과 수산시장 어디쯤이었다. 생소한 음식을 즐기는 언니가 기어이 에스까르고를 발라 앞접시에 덜어주었지만 차마 그 비주얼에 포크를 가져다 대기조차 어려웠다. 심지어 다른 모든 이들이 코에 대거나 씹을 때 미간을 찌푸리고 재빨리 와인으로 헹구어 냈다. 유럽 여행을 돌아보며 다시 한번 느꼈지만, 나는 무난하게 뭐든 잘 먹는 타입이었다. 콜마르의 구석진 식당은 기묘한 동수산물(?) 시장의 방문기였다. 하지만 이 또한 지금 생각하면 웃음 짓게 하는 포인트라는 점이 여행의 묘미 아니겠나.

(이후에 다른 식당에서 도전했던 에스까르고는 그 비주얼에서부터 달랐으며 심지어 맛있었다! 쫄깃쫄깃! 바질소스의 골뱅이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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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펍이라도 가서 맥주나 한잔 하려고 했더니 어두워진 거리에 후두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찾아보니 펍까지는 또 길을 찾아가야 해서 우리는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로비에 앉아 맥주를 주문해 룸메이트 언니와 건배를 했다. 한적하고도 비 내리는 프랑스의 어느 작은 도시에 낯설고도 어두운 밤거리를 내다보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여행에 대해, 아직 모르는 우리에 대해, 짧지만 결코 단출하지 않은 함께 보낸 시간들에 대해 얘기하며 금세 술병이 비워졌다.







마루밑 아리에티에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으로

마무리되는 하루인가.

하늘은 우울했고 하루는 낭만적이지 않았으며,

희망적이지만은 않은 미래를 염려하는 여행객들의 하루였다.

아름다웠던 것은 풍경뿐이었던 하루였는데 시간이 더 지나면 그 시간조차 빛났음을 깨달을까.

있는 곳에서 떨어져 봐야, 비로소 알게 되니 말이다. 여행을 곱씹어 그려 볼수록 새로운 것들을 써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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