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띠띠띠띠띠, 현관문 비밀 번호를 누른다. 뽀로로로, 틀렸다고 현관문이 요란하게 반응한다. 손에 들린 세탁물과 택배 상자 때문에 잘못 눌러졌나 싶어 천천히 또박또박 다시 눌러본다. 띠띠띠띠띠띠, 뽀로로로! 그럼에도 또 틀렸다. 왈칵 짜증이 올라온다. 어디선가 읽은 기억으로 길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스린다. 그래, 기껏해야 여섯 자리 숫자 아닌가. 기껏해야 우리 집 아닌가. 띠띠띠띠띠띠, 뽀로로로~! 띠띠띠띠띠띠, 뽀로로로~~!! 연거푸 네 번을 틀리자 눌러뒀던 짜증을 뜀틀 삼아 자학이 뛰어 올라왔다. 너란 인간은 대체 어디다 정신을 팔고 다녀서 7년째 사는 네 소유의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택배 상자를 바닥에 내팽개친 것으로 부족해 내 머리를 때리려다가 문득!
‘아! 나 여자친구 생겼지.’
얼마 전 여자친구가 생겨서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꿨던 것을 깜빡한 것이다. 여친과 첫 데이트를 가진 연월일 6개의 숫자를 비번으로 설정하는 건 언제부터인가 이어져 온 전통 아닌 전통이었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했는데, 해보고 나니 몇 가지 유용한 점이 있었다. 늘어놓자면…
1) 집에 들어갈 때마다 상기 날짜를 누르며, 그녀를 만난 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매일같이 점검할 수 있다. 등산이나 트래킹을 할 때 중간 중간 시간과 거리를 체크하며 올바른 속도로 가고 있는지 따져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2) 그녀와 둘만이 아는 숫자로 현관문 비밀 번호를 공유하는 로맨틱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
3) 여친과 헤어졌을 때도, 여전히 그녀를 기다릴 수 있는 명분을 준다. 우리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한 그녀는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기에 (누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든 간에 말이다). 헤어지고 나서 집 안에 있을 땐 밖에서 띠띠띠띠띠,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환청을 듣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문 밖에서 비밀 번호를 누룰 땐, 이 문이 열리면 집 안에 ‘나를 못 잊는’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앉아있지 않을까 하는 터무니 없는 기대에 잠시 설레기도 한다.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냐 하면, 이번 경우처럼, 분명히 맞는 번호들을 눌렀는데도 문이 열리지 않으면, 혹시 그녀가 나 몰래 우리 집에 들어와 현관문 비밀 번호를 바꿔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기대?)까지 한다는 것이다. 자기 집도 아닌 남의 집 비밀 번호를 바꿨다는 것은 그만큼 화가 나 있다는 뜻일 터인데, 그래도 그 분노를 찾아와서까지 표출한다는 것은 최소한 단절이나 차단은 거둔다는 뜻이기에 마음이 더워지며 빙그레 웃기까지 하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그러한 일이 벌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4) 마지막 효용은 이번 경우처럼, 새 여자친구가 생겨서 비밀 번호를 바꿨을 때, 전 여자친구와 몇 달 정도 사귀었는지, 헤어지고 얼마 만에 다시 연애를 시작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새 비밀 번호를 누르는 손가락 끝의 감각이 낯설다. 바뀐 숫자들을 보니 전 여친과 시작했던 날로부터 8개월이 지나있다. 두 달 전쯤 헤어졌으니, 전 여친과는 6개월 정도 만났던 것이다. 우리는 무엇에 빠져 홀린 듯 사랑을 나누다가, 이처럼 숫자 여섯 개를 공유하지 못하는 사이로 다시 전락한 것인가. 잠깐 생각하고 있는데 최근 새 여자친구와의 즐거운 (현재진행형) 기억이 밀물처럼 밀려 들어와서 떠밀리듯 집에 들어간다.
“문 좀 닫아주고 가지그래?”
그녀가 문틈으로 고개를 삐죽 내밀며 이야기한다.
“아, 그래야지”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문을 닫는다. 이 행동이 벌써 세 번째다. 왜 나는 그녀의 집을 나오며 문을 닫지 않는 걸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생각해보니 우리 집 현관문과 종류가 달라서였다. 우리 집 현관문은 스프링 구조로 일부러 닫지 않고 나와도 등 뒤에서 저절로 쾅 닫힌다. 말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내려올 수 있다. 반면 그녀의 집은 포핸드 드라이브를 하듯 꽤 긴 시간 힘주어 밀어야하고 쾅 닫히는 것까지 눈으로 확인해야했다. 잠에서 갓 깨어난 그녀는 출근하는 나를 현관문까지 배웅 나오곤 했는데, 내가 적절한 힘과 속도로 문을 닫는 결코 짧지 않는 시간 동안, 잠에서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그녀의 눈은 초승달 모양으로 꺽어져 나를 응시한다. 우리 집처럼 스프링 현관문이었다면 우린 짧은 입맞춤으로 헤어졌을 것이다. 그녀의 불친절한 문 덕분에 우린 긴 눈맞춤으로 헤어졌고 그 여운이 길게 길게 남아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을 내려가는 동안, 차 문을 열고 시동을 거는 동안, 운전을 하는 동안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차에서 듣는 아침 라디오에서 산울림의 ‘문 좀 열어줘’ 가 나온다. 초기 노래로서 사실상의 데뷔곡이다. 데뷔당시 산울림은 꼬마야~나 부르는 동요 밴드가 아니었다. 한국의 핑크플로이드라 불리며 당시에 보기 드문 프로그레시브한 기타 사운드와 김창완의 샤우팅 창법으로 센세이셔날한 화제를 불러일으켰었다. 그 대표곡이 바로 이 노래 ‘문 좀 열어줘’. 아니나다를까 바로 금지곡이 되었다. 공식 사유는 ‘창법 불량’이었는데 많은 이들이 유신 정권에 대한 젊은이들의 분노를 ‘문 좀 열어달라’고 대변했기 때문에 금지곡이 됐을 거라고 여겼다. 나도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최근에 그 노래를 다시 들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스물 댓살 정도의 젊은 김창완은 정부(政府)가 아닌 정부(情婦)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내가 있잖아. 문 좀 열어줘! 활짝 웃어줘! 밤이 새겠네.”
현관문까지 따라 나와 초승달 눈웃음으로 나를 쓰다듬듯 바라보던 그녀도, 그녀의 충실한 현관문도 언젠가 나를 차갑게 외면하는 날이 오겠지. 그때 나는 소리치겠지. “(당신이 그토록 사랑한다고 말하던) 내가 있잖아! 문 좀 열어줘!” 가까스로 문이 빼꼼 열려도 그녀는 생전 본 적 없는 싸늘한 표정으로 나를 벌레보듯 바라보겠지 “(언제나 문 앞에서 내게 지었던 그 눈웃음으로) 활짝 웃어줘!” 문이라도 빼꼼 열어주면 다행이지 열려라 참깨에도 반응없는 바위문처럼 굳게 닫혀있겠지. “밤이 새겠네”. 그 때 초승달은 그녀의 눈이 아니라 아파트 복도 창 밖, 먼 하늘에 걸려있겠지.
그래. 헤어질 땐 그녀의 집이 아니라 우리 집에서 헤어졌으면 좋겠다. 내가 그녀의 집 문을 길게 밀어 닫으며 그녀의 눈과 오래 마주치는 고통스러운 시간 대신에 그녀가 우리 집 문을 쾅 하고 문을 박차고 나가 뒤도 안 돌아보고 내려가고, 쫓아가려는 나를 스프링 철문이 쾅 하고 막아주었으면 좋겠다.
3
거의 매일 아침 5시 45분이면 나는 김포 장릉 공원 철문 앞에 서 있다. 스트레칭을 하면서 철문이 반으로 갈라지길 기다린다. 조선 14대 추존왕 원종과 그의 아내는 아침 6시까지 숙면을 취하는 모양이다. 그들의 기상 시간에 맞춰 두꺼운 철문이 열리면 나는 살기를 품에 숨긴 자객처럼 달린다. 아무도 밟지 않아 아직 서리로 축축한 흙길을 디디면 대지의 찬 기운이 발바닥을 통해 머리끝까지 올라온다.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어둠 속에서 흐느적거리는 키 큰 나무들을 지나, 왕과 왕비가 누워있는 쌍릉까지 단숨에 뛰어 올라간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왕과 왕비에게 인사한다. 잘 잤어요? 서로를 챙기느라 바쁜지 그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나는 살아있고, 당신들은 죽었어요. 자랑스럽게 그들을 바라보며 뜨거운 땀을 닦지만, 그들은 나를 부러워하지 않는 눈치다. 우리는 하나고 너는 혼자다,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리는 죽어서도 하나고 너는 살아서도 혼자다, 라는 음성이 육성으로 들릴때면 내가 너무 자학하고 있다는 기분도 든다. 치명상을 입은 자객처럼 나는 도망친다. 물고기를 잡아먹으려고 부리를 물안개 가득한 연못에 낚싯대처럼 늘여놓던 청둥오리들이 내 발자국 소리에 놀라 휘둥그래진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래, 니들도 살아보겠다고 이른 아침부터 부단히 애를 쓰는구나. 나 또한 오늘의 먹이를 찾아 달리고 있다. 삶이라는 게 참 고단하구나. 복잡다단한 생각이 장릉 조깅을 마친 부상처럼 따라온다. 왕릉의 신성한 기운을 들숨으로 들이마시고, 조잡하고 조악한 생각과 감정을 날숨으로 내쉰다. 이마의 땀방울이 팔뚝 위로 떨어진다. 나만의 의례를 마친 기분이다.
그 날도 나는 장릉의 철문 앞에 서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6시가 되어도 6시 1분이 되어도, 6시 2분, 3분, 4분, 5분이 되어도 철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뒷골이 싸늘해져 매표소 위의 안내문을 눈으로 더드었다. 매 주 월요일은 휴장일이었고, 그 날은 월요일이었다. 24시간을 여기서 기다리지 않는 한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산울림의 노래를 크게 불렀다. “내가 있잖아. 여기 있잖아. 문 좀 열어줘. 방긋 웃어줘. 밤이 새겠네”
나는 장릉을 뛰지 못하고 장릉 주차장만 빙글빙글 10바퀴를 돌아. 뛰면서 생각해.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월요일을 원종과 그의 아내는 일주일 내내 기다리겠구나. 나에게 문이 열리지 않는 그 날이, 그들에게는 문이 활짝 열리는 날이구나. 내가 문을 닫고 나왔던 무수한 날들이, 누군가에는 문이 열리는 날일 수도 있겠구나. 그러나 당신, 내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와다오. 다시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내가 문을 틀어잠그고 당신의 두 눈동자를 빤하게 바라보겠어. 오늘도 왕이 잠든 장릉 위로 초승달이 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