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에 빠진 표정과 격한 신음 소리를 이미 머릿속에 그리면서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잤어? 라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상대방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새근새근 숨소리를 들으며
무장 해제된 잠꼬대를 들으며
침 냄새를 맡으며
코고는 소리, 이가는 소리를 들으며, 머리 냄새를 맡으며
그 사람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밤을 보냈냐는 사적인, 시적인 질문인거지
그 사람과 자고 난 이후엔
혼자 자면서도 그 사람과 함께하는 꿈을 꾸게 돼
그래서 혼자 잔다고 할 수 없을 거야
때로 악몽을 꾸더라도
그 사람을 생각하며 배개를 꼭 끌어안을 수 있으니까
게다가 끔찍한 꿈을 꾸다가 그 사람이 구해주는 장면에서 다행이다 싶어 눈을 떴는데,실제로 그 사람이 옆에서 코골고 자고 있으면 노랫 소리처럼 들린다는게지.
‘네가 있어 다행이야’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팔배개를 해줄 수도 있지. (배개 끌어안고 잔다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배개를 팔배개 해준다는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어. 팔배개는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을 해주는거야)
부부의 정이 무서운 것은 한 평생을 같이 잔다는 거야.
별거 또는 각방을 하지 않는 이상 하루에 8시간, 하루의 1/3을 등을 기대던 끌어안던 멀리서 체온만 느끼던 함께 한다는 거야. 그래서 부부 싸움을 해도 별거나 각방을 해선 안 된다는 거야. 아무 말 안하고 같이 자기만 해도 몸은 안정감을 느낀다는거야. 다음 날 쉽게 사과의 손을 내미는 것도, 푹 자서 기분이 풀려서 그런 것도 있지만 몸으로 이미 화해를 해왔던거야. 무려 8시간 동안 말이지.
따라서 그 사람과 잤어? 라는 말은
그 사람과 부부가 됐어? 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잤냐, 라는 질문에 ‘잤어’라고 대답했다는 것은
그 사람과의 잠이 나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 같이 자고 싶다는 뜻이니까.
왜 ‘자다’가 동사겠어.
우린 자는 행동을 의식을 잃고 무기력한 밤의 포로가 되는거라고 생각하지만실제로는 무언가를 계속 하고 있는거야
인생의 1/3이란 시간이 그냥 흘러가는 건 아니란 말이지
그래서 침대가 좋아야 하고, 1박에 몇 십 만원짜리 호캉스도 우리는 아까워하지 않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