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은 새 책 나름대로, 헌 책은 헌 책 나름대로 읽는 재미가 있다. 갓 찍어낸 종이 냄새를 맡으며 구겨질세라 책장을 조심조심 넘기노라면, 아무도 밟지 않은 채 소복히 쌓인 눈밭 위를 걷는 기분이고 갓 구운 따끈따끈하고 향기로운 빵을 손에 쥔 기분이다. 만년필로 천천히 밑줄을 그을 때도 잉크의 양이며 줄의 두께며 속삭이듯 적는 메모며 정갈하기가 이를 데 없다.
헌 책의 기쁨은, 그러한 새 책의 경이로움을 이미 경험한 이의 증폭된 감정을 마주한다는 점이다. 조금 전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책을 헌책방(알라딘 문고)에서 구입해서 읽었는데, 보일 듯 말듯 희미하게 연필로 그은 밑줄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꼈다.
부러 그러진 않았겠지만, 전 주인이 아주 얇게 그엇기때문에, 이 책에 숨겨진 여러 개의 연필 밑줄은, 사막의 국경에서 검문검색 하는 까칠한 군인같은 알라딘 점원의 책 검사를 통과할 수 있었으리라. 조금만 손에 힘이들어가 밑줄이 0.01미리만 굵었어도 점원의 매서운 눈에 걸렸을테고, 그는 판매자앞에 던지듯이 이 책을 내려놨으리라.
책을 읽으며 감동한 어떤 문장을, 이미 누가 먼저 감동해서 밑줄 그어놨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감동이다. 그는 남자일까 여자일까. 학생일까 노인일까. 분명한 것은 그는 나를 알지 못한다. 나라고 그의 신상을 아는 건 아니지만 나는 최소한 그가 존재하고(했고), 나와 똑같은(때론 다른) 부분에 감동받아 밑줄 그은 사실을 알며, 그 밑줄을 보며 그의 숨소리를 느낀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 밑줄긋고있는 그를 보지만 그는 나를 보지못하는 타임슬립 영화같기도 하다. 그가 창조하고 있는 세계를 미래에서 찾아온 내가 바꾸어놓고 싶지 않아서, 그의 밑줄에 겹줄을 치지 않고, 그 옆에 작은 별표만을 친다. 이제 책을 읽는 그와 그 뒤에서 둘을 읽는 내가 병존하는 세상이 된다.
하물며 헌 책 하나에도 이렇게 수 개의 세상이 병존할진대, 작가가 쓴 책에 내가 밑줄을 긋는 행위와, 그 책을 읽은 다른 사람과 소감을 나누며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 건 또 얼마나 넓고 깊은 우주의 교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