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감이 깊으시네요, 최근에 원인이 될만한 일을 겪었나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잘 모르겠어요'였다.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몇 가지의 일들이 생각났지만 그 일들이 우울증의 원인 일리 없다고 생각했다.
안경 너머로 나를 지긋이 쳐다보던 의사 선생님이 들고 있던 차트를 책상 위에 내려두고선 입을 열었다.
"해소되지 못한 어떤 것들이 쌓이고 쌓여 있는데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으니 온 몸에서 신호를 보내는 걸 수도 있어요. 왜 병원에 오게 됐나요?"
이 질문엔 쉽게 대답할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어딘가를 가는 것도 귀찮고 힘든 느낌이었다. 어쩌다 한번씩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하고 싶은 말이 없었고, 나의 우울한 감정이 분위기에 방해될까 오히려 더 크게 웃고 더 크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텅 빈 공허함에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다. sns에 올라오는 남들 사는 이야기를 보자니 나는 이렇게나 보잘것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행복하구나 하는 괴로운 마음에 sns를 지워버리고, 누군가 나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냐 물어와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얼버무리고 넘어가곤 했다.
그러다 평소와 똑같이 만원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고 있는 도중이었다. 유독 사람들이 많이 타고 내리는 역에서 몇십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지하철을 탔고 어느 순간 내가 탄 칸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게 됐다.
더운 여름 철 사람들의 체취와 탁한 공기에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어 마스크를 살짝 올렸는데,
순간 가슴 통증이 심하게 오며 지하철 공간이 나를 짓누르는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목을 조르는 것처럼 답답한 느낌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고 정신마저 아득해져 가고 있었다. 이 공간에 더 있으면 그대로 죽어버릴 것 같은 느낌에 인파를 헤치고 다음 역에서 뛰어내렸다.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고 사시나무 떨 듯이 몸이 덜덜 떨려왔다. 겨우 벤치를 찾아 앉아 가쁜 숨을 몰아 쉬니 조금씩 진정됐지만 속이 메쓰꺼워 졌고 헛구역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분명, 뭔가 이상했다.
이런 증상은 일주일에 1~2번 꼴로 갑작스럽게 찾아왔고 주로 출근 시간에 사람들이 많이 밀집되어 있는 지하철, 버스와 같은 곳에서 발현됐다. 증상이 찾아올 때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뛰어내려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진정이 될 때까지 기다린 다음 어느 정도 진정이 된 것 같으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출근해서는 밀려오는 업무 요청을 쳐내면서 심장이 갑갑하고 정신이 멍해지는 느낌을 자주 받았지만 피곤해서 그렇겠지, 하는 생각으로 애써 무시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자주 울었고 무기력했다.
밤에 잠을 잘 때면 악몽을 꾸었고 회사에 출근할 생각을 하면 심장부터 갑갑해져 왔고, 사람들과의 연락을 피하고 만남을 피했다.
8월 15일 광복절 저녁, 연휴가 끝나가고 있던 시간 여느 때처럼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던 중 내일 출근해서 처리해야 할 업무들이 생각났다.
괴로웠다.
깊은 구렁텅이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침대 속으로 푹 꺼지는 듯했다. 끈적한 젤리들이 몸에 붙어 있는 것처럼 몸이 무거웠고 뭔가 엉켜있는 실타래들이 가슴속을 꽉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한참을 울었던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내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