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님 때문에 어긋나 버린 일정
뉴스에서 이번 태풍 링링은 그 영향력이 다른 태풍에 비해 강하다며 종일 보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신랑과 함께 추석 전 제주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기로 예정을 했었다.
일기예보에서는 우리가 출발하기로 한 날 새벽 6시에 태풍 링링이 제주를 지나간다고 예측을 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예약한 비행기는 오전 10시 40분이 었기 때문에 나는 살짝 안심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늘 걱정이 많은 시부모님은 신랑에게 전화를 하셔서,
“일기예보에서 아주 강한 태풍이 온다고 하니 무리해서 오지 말아라” 라며 우리의 제주행을 원하지 않으셨다.
그런 부모님의 성향을 잘 아는 신랑은 나에게 “부모님이 저렇게 걱정하는데, 걱정을 끼치면서 가는 건 아닌 것 같아.. ” 라며
“우리 제주도는 다음에 다시 가자”라고 나를 설득했다.
주말이면 여행 가이드로 돈을 벌러 가는 나는 어렵게 주말을 빼고 계획한 일정이라 원래 일정대로 강행하고 싶었다.
이번에 못 가면 또 다른 주말을 포기하고 시댁을 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돈벌이를 포기하고 다시 시댁에 와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 일정을 강행하고 싶었던 또 다른 이유는 이종조카와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러 조카에게 나의 제주 일정을 얘기해주고, 나와 함께 제주여행을 하자고 계획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조카는 태풍이 오기 3일 전 이미 제주에 와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제주를 와야 했기에 강행하자며 신랑을 설득했지만, 효자인 신랑은 결국은 시부모님의 뜻대로 원래의 일정을 포기했다.
(에잇. 못 먹어도 고! 를 해어야 했는데..)
그래서 신랑과 함께 제주에 계신 시부모님과의 만남은 결국 다음으로 미루기로 결정을 했다.
대신 나는 무조건 제주도에 가야 하기에, 태풍이 지난 다음날 떠나기로 했다.
일정이 틀어져버린 우리는 마일리지 항공권으로 제주행 비행기를 예매했기 때문에, 우리는 태풍으로 인해 결항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래야 취소수수료 없이 환불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 홈페이지의 스케줄 조회를 검색했다.
"우리 비행기 결항인지 확인해봐"라며 신랑은 거의 십 분 단위로 계속 나에게 물어봤다.
"아직도 결항이라고 안 뜨네.."
"이렇게 태풍 때문에 난리인데, 설마 이륙한다는 거야?"
"저가항공사는 거의 다 결항인데, 대한항공만 이륙 준비를 한다니 진짜 대단하다.."
그렇게 우리는 한 시간 같은 십 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 머피의 법칙은 우리에게 보란 듯이 미소 지으며 반갑게 손을 흔들며 찾아왔다.
아....(깊은 한숨이 나왔다)
우리가 예정대로 출발하기로 한 10시 40분 비행기 바로 직전 항공 편부터 지연 출발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모든 항공편이 결항이었는데, 그런데 하필 우리의 비행시간 전후 총 다섯 대의 비행기는 제주를 향해 이륙했다.
그리고 다시 또 결항되었다. 우리의 꿈은 산산조각 유리처럼 부서지는 것 같았다..
아까운 취소수수료로 마음이 아파왔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마일리지였는데, 취소로 인해 마일리지 차감이 된다는 사실은 정말 피하고 싶었다.
원래 우리가 예약한 비행기는 지연이 되었을 뿐 이륙을 준비하고, 수속을 밟는다는 걸 확인하고
우리는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 항공사 고객센터에 일정 취소를 알리기 위해 전화를 했다.
그런 우리의 마음을 하늘이 조금은 이해해줘서일까..
정말 감사하게도 지연으로 인한 취소도 환불수수료 없이 환불될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듣었고
우리는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누가 보면 한일전에서 우리나라가 이긴 줄 착각할 정도로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돌아오는 항공편은 결항으로 이용하지 못한다는 운항 통지서를 발급받지 못해 취소수수료 없이 환불받을 수 있는 혜택을 받지 못했다.
(역시 하늘은 공평했다.. 하나는 주고 하나는 주지 않는....)
어찌 보면 일정대로 진행했어도 괜찮은 일정이었다.
운이 좋을뻔한 일정이었지만, 시부모님의 걱정으로 이 모든 일정이 어긋났다.
물론 안전을 위해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가끔은 혹시 모를 사고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만약 사고가 난다고 해도 그건 운명이라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고로 죽는다 하더라도 이승을 떠돌며 억울해서 못 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쿨하게 뒤돌아 인사하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그렇게 지금 이 모든 상황에서 한순간에 벗어나고 싶은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내가 결코 살기 힘들 정도로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삶이 버겁고 무겁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나는 태풍 링링이 지나고 나서 조카와의 제주 일정을 보내기 위해 제주를 와야 했다.
실은 조카를 핑계 삼아 난 제주에 오고 싶었다.
제주에 오는 것이 나에겐 힐링이었다.
누군가는 프리랜서 가이드로 일하는 나는 큰 스트레스가 없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회사라는 틀 안에 갇혀있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삶 자체가 나에겐 버겁고 무거워서 늘 도피를 꿈꾸고 있다.
그래서 한때 제주 도민이 되겠다며 서울을 떠나 온 적도 있다. 물론 약간은 도피성 이주였었다. 제주 로망을 꿈꾸며..
한때는 제주 도민으로 살았던 나에게 제주는 제2의 고향이라 할 정도로 나에게 낯선 곳이 아닌 익숙하고 편한 곳이었다.
제주를 향해 이륙하는 힘찬 비행기 엔진 소리에 나는 이미 안도감을 찾았고, 현실의 삶에서 벗어난듯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제주행 비행기는 비를 뚫고 제주에 도착했다.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곳, 나의 도피처 제주에 왔다.
도착하자마자 조카를 만나 렌터카를 빌린 후 제주 토속 음식으로 배를 든든히 채운 뒤 나는 평소 온라인상에서 알고 지냈던 블로그 이웃과 첫 만남을 가졌다. 그렇게 제주에서 나의 인맥은 또 하나 거미줄처럼 이어졌다.
공항 근처 자주 가던 바다가 보이는 스타벅스에서 간단히 음료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고, 또 나에게 익숙한 공간이자 내가 애정 하는 제주도 LP카페에 갔다. 그곳에서는 커다란 스피커에서 지지직 거리며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랑에게 나는 카카오톡으로 “자기야~ 나 제주도 LP카페 마틸다에 왔어~”라고 얘기하자
신랑이 “그럴 거 같았어^^”라는 답문이 왔다. 그러면서 신랑은 나의 동선을 예측했다며, 마치 내가 자기 손바닥 안인 듯 이야기했다.
대학생 때 잠시 밴드부에서 키보드를 쳤던 나는 커다란 앰프에서 나오는 소리를 좋아한다.
게다가 그 소리가 LP판의 소리여서 더 좋고, 그리고 LP판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내가 좋아하는 재즈와 오래된 팝송이어서 특히나 애정 하는 곳이다.
(이럴 때 보면 내가 노땅, 나이 들어감을 느낀다..)
그렇게 제주에 왔음을 다시 한번 느끼며 내가 좋아하는 숙소로 들어왔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곳을 다시 찾아다니는 습성이 강한 편이다.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아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곳, 나에게 익숙한 곳이 더 좋다.
그렇게 나는 지난번 아주 마음에 들었던 숙소를 이번 제주 일정에도 선택했다.
익숙한 곳에 오게 되면 뭔지 모를 안정감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빗소리와 아직까지 울고 있는 매미소리를 자장가 삼아 들으며 잠에 들었다. 그렇게 나의 제주 일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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