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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렁색시 Dec 18. 2021

제주도 일주일 살기 - 첫째날

비오는 날 알몸으로 비를 맞아본 적이 있으신가요?

'비를 맞아본 적이 있으신가요?' 라는 질문에 '네'라고 대답할 사람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알몸으로 비를 맞아본 적이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에 '네'라고 대답할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것 같다.


나는 오늘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채 비를 맞고 있다. 귀에 꽃을 꼽지도 않았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고 있었고, 내 몸은 따뜻한 노천해수탕안에 있었다.


한때는 제주도 도민이었던 내가 제주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자, 가장 마음이 편한 곳을 물어본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제주도 노천해수탕이 있는 목욕탕이라고 말하고 싶다. 평소에 서울에서도 다니지 않는 대중목욕탕을 내가 제주에 와서 찾아가는 이유는 바로 제주 바다가 보이는 노천탕이 있는 대중목욕탕이기 때문이다.


여기 제주도 노천온천이 있는 해수탕은 동네 목욕탕 같은 곳이다. 외지인들보다는 제주도 현지 주민들이 사랑방처럼 자주 왔다 가는 곳. 그들은 일터러 가기전 아침 일찍 해수탕에 와서 몸을 씻고, 땀을 빼고 일터로 간다. 그들이 일하러 가는걸 알 수 있는건, 그들의 대화로 알 수 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다 동네 사람들이어서 서로의 근황을 잘 알고 매일 아침이면 만나서 하루의 일상의 시작을 함께 한다. 참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나는 이곳이 참 좋다. 아주 작은 노천해수탕은 마치 일본의 료칸에서 프라이빗한 온천에 온것같은 기분마져 들게 해준다.


내가 좋아하는 이 해수탕에서 노천탕을 좋아하는 이유는 물의 온도가 가장 나에게 적절해서이다. 실내에 있는 해수탕은 너무 뜨거운 고온의 탕이어서 내가 오래 몸을 담그고 있을 수가 없다. 즉, 현지인들은 실내에 있는 고온인 탕을 더 좋아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노천탕은 따뜻한 물정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덕분에 노천탕에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다.


게다가 부슬비처럼 비까지 내리니 노천탕은 오롯이 내 차지가 되었다.


혼자 노천탕에 앉아 건식 사우나에서 몸을 뜨겁게 달군 사람들이 밖으로 잠깐 나온다. 그들의 몸에서는 하얀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들은 모두 같은 행동의 패턴을 보이는데, 노천탕으로 나와서 작은 바가지에 냉탕의 물을 한바가지 담아 몸에 뿌리고, 다시 냉탕으로 들어간다. 내가 절대로 하지 못하는 행동중에 하나가 바로 냉탕에 들어가 아무렇지 않게 앉아있는 것이다. 추위도 잘 타고 더위도 잘 타는 나로써는 너무 뜨거운 온탕도, 너무 차가운 온탕도 나에겐 너무 힘든 도전이다.


그들은 그렇게 잠깐 냉탕에 있다가 온탕에 들어오지도 않고 바로 실내로 들어간다. 그러면 노천탕은 다시 고요하고 조용한 내 공간이 된다.


가만히 노천탕에 앉아 팅팅 불어 할머니 손이 되어가면서도 난 행복한 물멍 바다멍 하늘멍을 한다. 바다는 하늘의 거울이다. 하늘이 흐리면 바다도 흐리고, 하늘이 맑으면 바다도 맑다. 그들은 커플처럼 항상 세트로 다닌다. 오늘의 바다는 여튼 회색빛의 색이고, 하늘 역시 거의 흰색에 가까운 회색빛 하늘이다. 저 멀리 수평선에 반짝 거리는 빛으로 저기에 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잡다한 생각 없이 바다멍을 즐기기 참 좋은 곳이다.


예전에 싱가포르에 혼자 여행을 갔었을때, 비가 부슬부슬 내릴 때 수영장에서 놀았던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 좋아 나는 가끔 비가 내리는 날 물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빗방울이 물에 닿을때 동그란 원을 그리며 톡톡 튀어오르는 모습이 너무 예쁘기 때문이다. 마치 동그란 원을 만들어내는 움직이는 설치 예술 작품을 보는것처럼 너무 아름답다. 분명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는데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보이는 모습은 마치 물이 튀어오르는것처럼 보인다. 마치 아래에 있는 물이 빗방울을 반갑게 맞이하러 나가려고 점프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렇게 또 한참을 물멍을 즐겼다.


노천탕에 앉아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때 족히 10명은 뜨거운 실내에서 노천탕에 나왔다가 들어갔다. 나는 그들처럼 일터에 가지 않아도 되니 여유롭게 노천탕에서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이젠 제법 몸이 노곤노곤해져서 잠들기 좋은 상태가 되었다. 사실은 제주에 오기 위해 목포까지 서울에서 운전을 해서 내려왔고, 딱딱한 배에 몸을 눕히고 잤다. 그래서 내 몸은 피곤함이 가득 배어있었다. 그 피곤함이 아마도 노천탕에 다 녹아 흘러나온것 같았다.


이젠 노천탕에서 나가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실내로 들어와 실내에 있는 해수탕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여전히 나에겐 너무 뜨거워서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실내에 마련된 비치체어에 잠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쉬기로 했다. 비록 탕 안은 아니어도, 목욕탕의 실내 공기는 따뜻한 수증기로 가득했으니 내 몸은 여전히 따뜻했다. 잠깐 앉아서 바다멍을 하며 쉬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목욕탕 매점 아주머니가 다른 분과 착각을 해서 나를 깨운 순간 내가 잠이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바다가 보이는 여기 목욕탕은 최신식의 시설이 아니다. 예전의 아날로그 시대의 감성을 더 담고 있다. 그래서 외지인들이 여기에 왔을때 실망할 지도 모른다. 아니 대부분 실망을 한다. 서울에서 같은 금액으로도 더 최신식의 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난 그런 옛스런 분위기가 좋다. 동전을 넣어야 사용할 수 있는 헤어드라이기가 있어 반드시 현금이 있어야 한다. 현금이 없어 선풍기 앞에 머리를 한참을 말려도 다 안말려질 수 있으니 반드시 동전을 준비해야 한다.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가끔 까먹고 그냥 갔다가 낭패를 본 적도 있다.


그렇게 나의 제주도 여행의 시작은 바로 현지 목욕탕에서부터 출발한다. 배를 타고 목포에서 제주도에 도착한 순간 떠오르는 곳은 바로 여기 제주 바다가 보이는 현지 목욕탕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제주도 여행을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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