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정 Nov 19. 2024

집 역시 다이어트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

"집 역시 다이어트가 필요합니다"


 다이어트 열풍이 불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만 맞으면 살이 빠진다는 위고비로 떠들썩하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각종 상품과 의약품들이 가득하다. 갸름한 얼굴, 날씬한 몸, 군더더기 없는 몸 등을 사람들은 원한다. 다이어트를 통해 사람들은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려고 한다. 다이어트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살이 조금만 빠져도 몸이 가벼움과 충만함을 느낀다. 미용상 아름다워진 것도 있겠지만,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꼭 필요한 것만 갖추었다는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낸 후의 기쁨은 우리 몸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항상 머무르고 있는 곳, 출퇴근 후의 스트레스를 없애줄 수 있는 곳, 솔직한 내가 되는 곳, 바로 집이다. 집을 둘러보면 수많은 나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유창하게 말하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했던 영어책, 심신의 안정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샀던 캔들, 제 기능을 거의 못하지만 언젠간 쓸 일이 있을 것 같다고 놓아둔 청소기 등. 거기에다가 지금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집안 곳곳에 숨겨진 물건들이 곳곳에 녹아있고 끼어들어있다. 

 

 이런 물건들은 나를 현재에 머무를 수 없게 만든다. 퇴근길 옆자리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지치는 유리멘털인 나에게는 고요한 휴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집에 가만히 있으면 수많은 생각들이 나를 괴롭힌다. '영어 공부는 언제 할 거야? 몇 페이지 정도만 보고 말았잖아', '저 청소기는 당근마켓에 팔아야 하지 않을까?', '캔들은 한 번씩 켜줘야 하는데 언제 켜지?' 등의 생각들이 나를 쉬지 못하게 만든다.


 언젠가 출장으로 한 달간 밖에 나가서 살게 되었다. 침대, 책상, 그리고 케리어 하나 정도의 짐으로 살았다. 필요한 물건은 거기서 사려고 많은 짐을 챙기지 않았다. 한 달 뒤에 나는 어떤 물건도 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필요할 것 같았던 여러 물건들은 필요하지 않았다.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뿐이다. 그곳에서는 오롯이 쉴 수 있었다. 어떠한 것도 내 휴식을 방해하는 것이 없었다. 나는 언제든지 케리어 짐 하나로 떠날 수 있을 만큼 가벼웠다. 


 집 역시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그때부터 가지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버리기 시작하였다. 한 번에 많이 버리기 버거워 계속 시간 날 때마다 버렸다. 버릴수록 불안할 것을 예상하고 시작하였지만, 버릴수록 가벼워졌다. 물건을 사는 만큼이나 버리는 것이 기뻤다. 정리하다 버리기 애매한 것들은 박스에 담아 두었다. 두세 달 뒤에도 찾지 않게 된다면 과감하게 버렸다. 정리하다가 발견한 물건들, 특히 있는지 깜빡하고 있었던 물건들은 모두 버렸다. 혹시 나중에 다시 찾을 것 같은 물건이 있었지만 과감하게 버렸다.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산 물건들은 없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수 있다.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살게 되었다. 불편하고 시간 낭비가 되더라도 기존의 물건들을 최대한 활용해 보았다. 몸이 불편할수록 정신은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외면을 가꾸기 위해 다이어트하듯, 내면을 위해 집 역시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