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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여자 Sep 08. 2015

사랑과 밥의 상관관계

   '밥상'이 남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시대가 있었다. 물론 그 시대는 아직도 우리 부모님 세대와 그 윗 세대에서는 계속되고 있는지 모른다. 아직도 친정 엄마는 당신도 차려주지 않던 아침밥을 시집 간 딸이 남편에게는 차려줘야 한다고 생각하신다. (참 나- 생각해보니까 억울하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장 다행스러웠던 점은 남편이 결혼 전에도 아침밥을 먹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의 생각을 우리 세대의 견해라고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밥상을 받느냐 못 받느냐, 어떤 밥상을 받느냐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밥상은 귀찮아도 꼭 해야만 하는 숙제 같은 기분이었다가, 또 어느 날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오늘은 그 귀찮은 숙제 같은 밥상 때문에 느낀 것들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이직을 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  직장을 구하는 과정에서 몇 개월 준비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동안은 남편이 90% 이상 집안일을 도맡았었다. 따지고 보면 결혼하고 남편이 출근했던 날이 훨씬 더 많은데도 그 짧았던 몇 개월에 금세 익숙해져서 다시 출근하기 시작한 남편과 집안일을  나누어하려니 다시 엄마 집으로, 내가 안 해도 살림을 해 줄 사람이 있는 그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였다. 그렇게 일주일을 퇴근하고 부랴부랴 장보고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간단하지만 아침을 챙겨서 남편을 출근시키고 출근하는 생활을 했다. 주중에는 그럭저럭 나도 출근을 하니까 괜찮았는데, 주말에는 모든 살림에서 손을 떼고 불편한 마음으로 만화책 10권! 낮잠! 읽고 있던 스티븐 킹 소설 다 읽어해 치웠다. 


  다시 돌아온 월요일. 최대한 업무시간에 모든 것을 마치고 안 되겠다 싶은 서류는 가방에 넣어서 퇴근하고 장을 보고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오늘은 집 앞에 시장에서 산 야채들과 냉동실에 있던 국거리로 국을 끓이면 되지만 내일 정도엔 마트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요리하는 동안에는 이게 다 남편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먹을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나는 원래도 요리를 좋아하니까, 이런 생각들을 했다. 퇴근 후 돌아온 남편은 밥이 되길 기다리며 청소기를 돌렸고 주말의 그 불편했던 마음도 깨끗해진 집과 함께 깨끗해졌다. 


   오늘 오전에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내가 밥을 할 동안 남편이 한 일들에 대해 비로소 생각했다. 내가 밥을 하는 동안 남편은 집안 청소를 했고, 빨래를 했고, 또 어느 날은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품 분리수거를 해 주었다. 질이 떨어질지언정(?) 종류로 따지자면 남편은 나보다 우리 살림에 더 많은 부분을  도맡아하고 있었다. 새삼스레 미안하기도 했고, 결혼 전에는 그렇게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던 마음은 다 어디로 갔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들은 어디 도망간 게 아니고 내가 잠시 잊어버린 것이겠지. 날이면 날마다 먹는 밥때문에 다시금 사랑을 생각한다. 물론, 이것도 우리가 신혼이라 이런 특별한 감흥 같은 것이 있는 거고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면 어느 날 무엇을 먹었는지는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일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남편이 결혼 전 내가 누누이 얘기했던 '집안일을 돕는 남자'가 되지 않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안일을 돕는 남자가 되지 않게 노력한다는 게 무슨 말이냐고? '도와주다'라는 것은 남을 위해 애써준다는 의미이다. 우리 중 자신의 일을 돕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집안일을 여자의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부부 공동의 업무라고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에야 누가 어떤 일을 더 많이, 더 적게 하느냐를 두 사람이 정하면 되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달콤한 말과 멋진 선물도 좋지만, 매일매일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겐 내가 미처 버리지 못한 쓰레기 분리수거를 한 번 더 해주는 것도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 이 사소한 하루하루가 모여서 두 사람의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닐까?




대부분 조촐하고 가끔 특별한 밥상이지만 우리가 가족이 되어 같이 먹는 밥은 언제나 특별하다.

특별한 것이 일상이 된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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