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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기의 단상 Feb 27. 2024

취향에 대한 고찰

존중이 강요되는 시대

'취향 존중'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입에서 오가게 된 유래는 오타쿠를 존중해 달라는 문화에서 출발했다. 당시만 해도 그들은 정말 희귀한 사람들이었고, 주변에 있다고 해도 꽁꽁 숨어있었기 때문에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다 수면 위로 조금씩 떠오르면서 취향이라 말했고 존중받기를 원했다. 그 말은 즉 초기에는 존중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나 문제가 전혀 되지 않는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게 말이다.


사실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이다. 자기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수단일 뿐 아니라,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필요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점은 서로의 취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이다. 독특한 그 사람의 취향이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시선을 불편하 만드는 건 취향을 발산하는 쪽이 아니라 그렇게 느끼는 쪽이니까.


그런데 이런 문화가 왜곡되면서 속으로 존중하지는 않아도 쿨하게 리스팩을 날려야 하는 상황이 왔다. 그렇지 않으면 꼰대가 되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슬리퍼와 반바지를 입고 출근을 하는 건 취향이 아니다. 회사라는 공동체에서 추구하는 목적은 이윤과 발전인데, 누군가의 눈에 거슬려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면 지양해야 한다. 반면에 거리에서 바지 위에 팬티를 입고 다니는 건 취향이다. 거리라는 공동체에서 우리의 목적은 안전한 이동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처럼 취향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잘 가려가며 존중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의 자기애는 우리의 견해가 비난받을 때보다도 우리의 취향이 비난받을 때 못 견디게 괴로워한다.

프랑수아 드 라 로슈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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