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그만두고 싶다면 당신은 언제든 떠날 권리가 있다

by 조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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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망설임 끝에 우리는 이제 진짜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미 풀배터리 검사를 받았고, 산더미 같은 기다란 검사지들을 모두 채워 넣었다.

상담자가 말하는 '라포'라는 것도 아주 조금 형성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상담실 문을 닫고 나올 때마다,

다음 상담 예약일이 다가올 때마다 고민할 수도 있다.

"오늘 괜히 왔다.", "오늘 가지 말까?"라는 마음들이 상담실 의자에 앉기 전까지도,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속에서 요동을 친다.


수없이 했던 고민이었다.

하지만 나를 상담실로 이끌었던 건 고립되어 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나의 특수한 상황이었다. 절망적 이게도 이야기할 사람이 상담사밖에 없었기에 매번 가기 싫은 마음을 누르고 상담실로 꾸역꾸역 나 자신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나는 내 마음이 베어지는 줄도 모르고 상담사의 평가를 받았다.

그 시절의 나에게는 상담사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내가 문제라서, 내가 번아웃이 와서 그런 상황에 처했다는 상담사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었고,

그의 지시를 따르려고 애썼다. 상담사와 비슷한 위치에 있던 나의 보호자, 전남편은 보호자 면담 이후 오히려 상담을 반대했다. 상담사와 전남편은 비슷한 직종의 종사자로서 묘한 유대감을 형성한 것 같아 보였고,

나는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최악의 상황에서 여성의 전화를 통해 쉼터를 가게 된 나는 거기에서 다른 상담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야 내가 잘못된 상담을 받고 있었고, 몇 년간 받아온 상담이 출발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여러 자리에 있는 또 다른 많은 상담사를 만났다.

예술인 복지 재단을 통해 격년으로 상담을 받을 수 있었고, 109나 지역 거점 상담센터의 상담원들,

개인적으로 만난 다른 상담사들, 집단 상담 등..

많은 상담사를 만나며 깨달은 것은,

상담실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상담사가 절대적인 권위를 갖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피한 일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우리 내담자는 상담사에게 주는 '절대적인 믿음'을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정말 상담을 그만두고 싶을 때는 다른 상담사를 만나 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최악의 경우 당신이 나처럼 운이 나빠 잘못된 상담을 받고 있다면 마음이 치유되는 게 아니라

더 처참하게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술이 필요할 때, 의사들을 수소문하고 의사들의 능력과 경력을 확인하는 것처럼,

나의 가장 소중한 마음, 나의 모든 마음의 작은 움직임까지 털어놓을 사람을 고르는 건 신중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3-4회기 이상의 상담을 받았는데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든다면

당당히 당신의 검사 결과지를 요청해서 다른 상담사와 상담을 해볼 수도 있다.


혹은 비용이 부담된다면 각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상담원이나,

1393 또는 109의 상담원들과 얘기를 나누어 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 사람, 저 사람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상담실을 찾게 될 때는 이미 감정적으로 많이 흔들린 상태이기에, 상담이 잘못된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기조차 어려울 때가 많다. 상담센터는 외외로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이므로 자격이 부족하거나 종교에 편향된 가치관을 가진 상담사를 만났을 때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치유를 위해 찾은 상담실에서 더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회복과 치유를 위해 상담이라는 방법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 방법이 우리의 마음을 맡기는 거라면 우린 더 많이 탐색하고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며,

당신이 여러 번 상담사를 바꾼다 해도 어쩌겠는가?


틀렸다고 누가 말하겠는가?



그저 길을 한 번에 못 찾았을 뿐이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조금 더 수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이니까.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