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의 차가운 의자
아이를 기다리며

by 조은희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그곳이 어디든지 아이를 들여보내고 홀로 기다리는 경험을 한다.

하지만 수능 시험장보다 더, 그 어떤 대기실보다 더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게 되는 시간이 있다.

바로 상담실 밖에서의 시간이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에서 들리는 작은 숨소리 하나에까지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시계를 보며 초조하게 1분을 견디는 시간.

그 시간은 숨이 막힐 듯 무겁다.

나 역시 그 시간을 지나왔다.

그때 우리는 이혼 소송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왔었다. 아이들도 나도 상처투성이였다. 나의 경우는 아이가 모든 것을 거부해서 더 막막했다. 큰아이는 거식증이 의심될 만큼 식사를 거의 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나는 피가 말라 가고 있었다. 밥을 먹지 않는 아이를 보는 것은 내게는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무언가 해야 했었고, 용기를 내서 아이들을 상담을 받게 했었다.


운 좋게도 내게 그림을 배우시던 상담과 교수님이 집으로 오셔서 큰아이를 만나 주셨다. 상담을 받는 동안 적어도 나는 아이가 조금 나아진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리고 둘째 아이는 내가 예술인 복지재단을 통해 상담을 받을 때 같이 가족 상담을 받았다. 상담 회기가 끝날 즈음 아이가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 그만 받으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때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의 노력을 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후 큰 아이와 다툼이 생겼을 때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마음 편하려고 나에게 상담을 받게 한 거 아니에요?"

솔직히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식사와 병원을 모두 거부하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상담받을 수 있는 교수님을 찾아 아이 앞에 데려다 놓는 것뿐이었다.

내가 한 선택이 옳았는지는 여전히 모른다.

시간이 더 지나고 아이들이 더 자라면 알 수 있을까? 아직도 성장 중인 예민한 아이들과 그때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건 내게는 아직 어렵다.


그 시절을 지나오고 나서 알게 되었다.


아이의 상담은 부모 자신의 상담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부모는 결코 그 상담실 안으로 함께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신학기가 되면 담임선생님이 상담을 권하기도 하고, 중고등학교의 경우 학교에서 말썽을 일으키면 강제적인 상담을 받게 하기도 한다.

초등학교일수록 ADHD가 의심된다며 상담이나 병원 진료를 권하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의 상담이 일상이 되어 가지만, 판단은 여전히 부모의 몫이고 그 책임도 부모의 몫이다.

내가 상담을 받는다면 스스로 느끼고 판단을 할 수도 있지만, 내 아이의 상담이 잘 되어 가고 있는지, 잘못된 상담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늠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상담을 받게 해 줄 수 있을까?


먼저 상담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냉정하게 주변 상담 센터들의 센터장의 전공과 경력을 확인해야 한다. 센터장이 유명한 센터로 간다고 해서 센터장이 직접 아이를 만나는 것이 아니다.

심리검사들을 받을 때에, 임상 심리사가 상주하는지, 없다면 검사받는 날 외부에서 임상 심리사가 오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간단한 DISC나 MBTI 검사로 내 아이를 판단하지도 말고, 그 검사지 결과로 당신의 성향을 판단하려는 상담사의 말에 기죽지 말자.


오래된 검사지 한 장이 당신과 아이의 인생을 정의 내릴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다만, 신중해야 할 것은 아이의 상담사를 바꾸는 경우이다. 아이들이 겨우 적응을 해가고 있는데 상담사를 바꾼다면 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아이의 첫 상담사를 고르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상담사와 치료사는 엄연히 다르다.

대부분의 언어치료사나 미술치료사들은 작업치료자들이다.

심리학이나 상담학을 전공한 '상담사'인지, 국가자격증을 갖춘 '임상심리사'인지 확인하는 것은 아주 필수적인 일이다. 그래야 중간에 아이와 상담센터들을 떠도는 비극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상담 자체를 거부한다면 학교 wee 클래스의 선생님과 가벼운 상담을 시작해 보는 것도 좋다. 상담센터를 찾아본다는 것은 적어도 아이가 최소한의 협조를 해줄 때 시작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의 상처를 위해 받는 상담도 어려운 일이지만,

내 아이의 상처를 지켜보는 것은 가슴을 후벼 파는 일이다.


나는 어쩌면 잘못된 길을 지나왔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당신은 나보다 나은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이의 손을 잡고 그 숨 막히는 긴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