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의 선고와 버티는 용기

by 조은희



병원 대기실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낮게 깔려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의 소리는 바닥으로 무겁게 계속 내려앉고 그 위에 나만 혼자 유령처럼 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 속에 있지만 새카만 우주 한가운데에 혼자 던져진 것 같았다.

내가 왜 이곳에 앉아 있는지 믿어지지 않았다.


상담사는 약을 먹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권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울었다.

그 순간에는 내가 더 이상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선고이자 진짜 '환자'가 되었다는 낙인처럼 느껴졌다.

상담실을 나와 상담사가 권하는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

간호사가 주는 긴 설문지를 작성하고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한 시간을 기다려 내 순서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나의 설문지를 무미건조하게 훑었다. 나는 상담센터의 권유로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뒤로는 또 두서없이 울면서 나의 사연을 얘기했다. 의사는 약을 먹는 게 좋겠다며 약을 처방해 주었다.


'내가 정말 미쳐가고 있는 건가?'

처방전을 받아 가지고 나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여전히 현실 감 없이 붕 떠있는 기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약을 먹고 기분이 나아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속절없이 파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처방받은 약을 먹었지만 기대했던 효과는 없었다. 진료를 볼 때마다 약봉지는 두꺼워졌고,

약이 늘어갈수록 마음은 더 불편해져 갔다. 정말로 내게 문제가 생긴 것 같이 느껴졌고 괴로웠다.


상담을 시작할 때 나는 상담을 받으면 좋아질 것이라고 믿었다.
상담을 받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 괜찮아질 거라는 순진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약’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상담은 갑자기 다른 세계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때의 나는 상담사의 말을 정말 잘 지킬 때라 권하는 대로 병원도 가고 약도 먹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결국 나의 모든 최선을 다해 나를 지워가고 있었다. 내가 느끼는 불합리함과 고통을 꾹 눌러 참고 견디며,

'남들도 모두 다 그렇게 산다'는 말에 억지로 나를 끼워 맞추고 있었다.


약도 상담도 인생의 문제를 없애주지는 않았다. 그것들은 그저 내가 오늘의 고통을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었을 뿐이었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홀로 견디고, 누군가는 상담실을 찾으며, 누군가는 약을 먹는다.


그것은 결코 틀린 일이 아니다.

견딜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버티려고 한다. 그리고 버티기 위해 각자 덜 아픈 무언가를 선택을 한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그 무력한 순간조차, 당신이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머뭇거림이었을지도 모른다.


정신과 약을 먹는 선택은 하늘이 무너지는 큰일이 아니다.

당신이 먹는 약이 우울증 약이든, 수면제이든 정신과 약을 먹는 것을 괴로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상담을 받고 좋아지면 다행이지만 때로는 약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저 오늘을 무사히 살아남기 위한, 조금이라도 덜 괴로운 쪽을 향한 나와 당신의 용기 있는 선택일 뿐이다.


나는 그때의 나에게, 그리고 지금의 당신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그저 살아남는

덜 괴로운 선택을 하는 것뿐이라고.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