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의 기준에 대하여
폭력 (暴力) [퐁녁] [명사]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에 쓰는, 주먹이나 발 또는 몽둥이 따위의 수단이나 힘. 넓은 뜻으로는 무기로 억누르는 힘을 이르기도 한다.
"폭력"과 매일 마주하며 사는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를 폭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얼마나 다쳐야 경찰에 신고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상황이 되어야 가정폭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피를 줄줄 흘리고 뼈라도 부러져야 폭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모든 폭력은 위험하다.
그중에 가장 위험한 폭력은 "가정폭력"이다.
"가정"이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의 폭력은 어떤 폭력보다 심각한 위협이다.
잘 드러나지도 않으며 우리의 가부장적인 사회 문화 속에서는 가정사로 치부되며
용기를 내어 신고를 했더라도 피해자가 우울증이라고 지나치거나
대부분 눈에 보이는 물리적 상처가 있어도 분리조차 하지 않는다.
출동하는 경찰들도 남자이며 가정폭력의 가해자가 남편이고 아버지인 경우
그들만의, 남자들만의 관습적인 맹목적 유대는 결국 피해자를 두고 돌아서버리고 만다.
(지금은 경찰서에 따로 여성청소년계가 따로 있어서 피해자가 용기를 내어 찾아간다면 신고는 할 수 있다)
가정폭력의 피해자는 여자이며 어머니이다. 그 모든 걸 함께 겪은 아이들은 더 큰 피해자이며
후일 자신이 가정을 가지게 되었을 때 가해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가정폭력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진정 잘못된 것이다.
가정폭력은 '물리적 폭력'과 '언어폭력' '정서적 학대' 세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눈에 보이는 찢어진 상처에 놀라 직접적인 육체적인 상처에 반응하는 만큼
언어적인 폭력이나 정서적 학대에 똑같이 대응하지 않는다.
가해자가 너무나 화가 났으니 그럴 수 있다 또는 술을 핑계로 넘어가 주며
가해자의 언어폭력을, 욕설을 주변에 말을 한다 해도 설마 진심이었겠냐고 용서를 강요당한다.
심각한 외상, 찢어진 피부와 부러진 뼈 그리고 붉은 피와 푸른 멍이 없으면 폭력이 아니라 가정사가, 실수가 되버린다.
이렇게 되면 가해자는 그저 가해자이고 삶에 지친 가장이며
폭력을 당한 피해자만이 모든 책임을 지게 되고 결국 스스로를 탓하며 자책을 하게된다.
이런 경우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가해자도 피해자도 혼란스러우며
가해자가 오히려 피해자를 가해자 취급하거나
가해자가 큰소리치며 내가 언제 그랬냐고 말하거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간다.
차라리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가정폭력 가해자들은 사과를 한다거나 용서해달라고 선물을 사 오기도 하지만,
실제 대부분의 가해자는 폭력도, 폭언도, 피해자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며 아무 일도 없었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잘못한 것 자체를 인지하지 조차 못한다.
두려움과 아이의 보호를 위해 쉼터에 가는 아내와 자녀에게 더 크게 화를 내고 배신감을 느끼며 ‘어떻게 감히 너희가~’라며 분노를 참지 못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제도 하에서 (얼마 전 다시 법이 바뀌었다는 뉴스가 보도되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말이다) 가정 폭력 상황이 벌어져 신고를 하게 되면 아직도 대부분이 가정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고, 미국처럼 즉각적인 가해자와의 분리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결국 아무 소득도 없는 신고로 가해자의 화만 더 돋구어버리는 경찰의 출동은 오히려 피해자를 더욱 극한의 상황으로 몰고 가게 된다.
우리가 가끔 뉴스에서 보는 누군가 죽는 상황말이다.
이런 것들을 미리 인지하고 주위에서 도우며, 극단적인 상황을 막을 수 있다면
적어도 생명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지키면서 살 수 있다.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일 수도 있다.
첫번째 물리적인 폭력은 눈에 보이기 쉽다.
대개 가정폭력의 가해자들은 보이지 않는 부분들만 가격하는 경우가 많으며,
장기적인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들은 계속되는 골절과 멍자국, 상처들을 다 숨기기 어렵다.
반면 물리적인 폭력의 피해자들은 더 폭력에 길들여지기 쉽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한다는 의미도 되기 때문이다.
폭력에 길들여지면 피해자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그것을 벗어 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첫째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경우는 혼자 삶을 꾸려 갈 자신이 없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감수를 한다.
두 번째는 자책감이다. 가해자들은 늘 말을 한다. "너 때문이다, 네 잘못이다."라고 말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맞아온 피해자는 스스로를 탓하기 때문에 기해자가 잘못이 있는 게 아니라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나 가해자의 말대로 자신이 우울하거나 망상에 빠져서 맞는 거라고 믿기도 한다.
두 번째 언어 폭력은 스스로가 "폭력을 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자신이 당하고 있는 것들이 일 년에 한두 번 우발적인 것이라고 가해자가 너무 화가 나서 그런 것이고 그것은 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물리적 폭력이 없는 경우 피해자는 자신이 당하고 있는 상황들을 고스란히 참아내 버리게 된다.
피해자의 머릿속에서는 어쩌다 한번 당하는 그 일을 신고해야 할 상황으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폭력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번째 정서적 학대이다.
이것은 더욱 구분이 힘들고 피해자도 가해자도 어느 정도가 폭력인지, 누구의 잘못인지, 서로 인정하기가 어렵다. 당신이 만약 폭력을 당하고 있는지조차 판단이 되지 않는다면 가해자와의 일상 상황이나 다툼의 상황들을 쉽게 스마트폰으로 녹음해서 들어볼 수 있다.
녹음된 상황을 본다면 당신은 아마 알게 될 것이다.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인정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말이다.
그러면 어느 정도를 정서적 학대라고 말해야 하는지 정당할까?
영화에서는 욕이 대사이고 너무나 쉽게 사람을 죽이고 폭력을 쓰며, 스마트폰 게임에서는 더 많이 죽여야 높은 점수를 올릴 수 있는데 말이다.
상대방이 입을 열 때마다 당신 스스로가 모멸감을 느끼다면, 수치스럽다면 그것은 정서적 학대이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가정의 경우 남편이 일을 하고 생계를 책임지고 아내가 아이를 키우며 가정을 돌볼 경우로 말해보겠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드마라의 대사처럼 '네가 집에서 하는 게 뭐가 있어? 식충이라던가, 돈도 못 번다, 무능하다는 말들이 이어진다면 이것도 정서적 학대라고 할 수 있다. 서로 일과 육아의 책임을 합의했다면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주지 말아야 하며, 워킹맘의 경우 육아의 독박을 쓰고 일도 해야 한다면 이것 또한 잘못된 것이다. 서로에게 존재의 필요가 없다면 사랑이 없어지고 난 후에 의리조차 남지 않게 된다.
남보다도 못한 이런 관계는 서로에게 모멸감과 환멸을, 그리고 피해자 자신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
또한 경제권이 가해자에게 있을 때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돈으로 압박할수도 있고, 네가 설마 애를 두고 뭘 어쩌겠어라고 생각하며 피해자를 가해자처럼 만들어가며 피해자를, 아이들을 그늘로, 그늘로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절망속에 살게 만든다.
어떤 폭력이 더 나쁘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다. 대부분 세가지가 다 해당되는 경우도 있으며, 피해자 본인이 스스로 인지하기 제일 쉬운 것은 물리적 폭력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가해자를 법적으로 처벌받게 하기 위해서는 고소장을 써야 하고 육하원칙에 의해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를 날짜와 장소 또한 정확히 기억해야 하고 그나마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면 기소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증명할 수 있는 자료란 경찰이 사건을 성립시키고 가해자를 법적으로 정말 작은 불편이라도, 즉 조사를 받기 위해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에 출석이라도 하게 하고 싶다면 적어도 증명할 수 있는 녹음파일이나, 문자, 카톡, 사진이 있어야만 사건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문제이다. 사건이 성립된다는 의미 말이다.
성립이 되고 피의자 출석 조사가 이루어질 뿐이지 가해자가 처벌을 받으려면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었다.
폭력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많이 선택하는 것은 이혼이다.
전에 이혼 후의 추적 조사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불행히도 제목을 잊었지만, 저자는 미국인이었고, 오랜 기간 동안 가정 불화를 겪는 가정을 추적 조사해서 그 자녀의 성장과 결혼 과정까지 담고 있었다. 먼저 말하자면 이 책은 가정 폭력에 관한 책이 아니며, 문제를 가진 부부들 중 이혼이라는 선택을 한 가정의 자녀들과 문제가 있더라도 결국 이혼을 하지 않고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지킨 가정의 자녀들을 비교 분석했고 실제 인터뷰 내용도 실려 있었다.
당신이 지금 불행하다면 머릿속 한구석에서 이혼을 생각한다면 정말 궁금할 거 같다.
이 책의 결론이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 나의 주관적인 느낌과 생각은 결국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다른 존재이고 다른 문제와 다른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혼을 해서 서로 새로운 배우자를 만나 자신이 행복하더라도 그것이 아이들의 행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새로운 배우자를 만나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을 이미 불행과 파괴와 해체를 경험했으며, 아무것도 겪지 않았던 때로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그리고 이혼을 하지 않고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지켰더라도 결국 그 아이들에게 가정은 전쟁터였고 그들은 생존자인 것이다.
어느 누가 더 낫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이혼해서 새로운 가정들을 꾸리고 아이들에게 부모가 네 명이 생긴다고 해도,
끝날 것 같지 않은 불행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해도 둘 다 완전할 수는 없다.
어느 쪽을 선택하던지 그것은 당신의 문제이고 당신의 자유이며 당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아이들은 결국 언젠가 당신의 품에서 떠날 독립적인 인격체이니까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만약 어려운 상황에 있다면 이 말이 위안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어떤 가정이라도 100% 행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어려운 시기가 있고 자기만의 짐을 지고 있으며 무게가 다를 뿐이다.
겉으로 절대 아무 문제도 없이 행복해 보이고 화려해 보인다고 해도, 그들이 보이는 것만큼 행복할 것이라고 확신하지 말기를 바란다. 설사 진짜 그들이 100% 행복하다고 해도 그들의 아이들도 똑같이 사춘기를 겪고 성장을 하고 우리처럼 똑같이 사고를 당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보이는 만큼 모두가 행복하다면 2집 중에 1집이 가정폭력의 경험이 있다는 조사결과가 절대 나올 수는 없다.
이혼은 오직 당신의 선택이다.
그리고 법적인 절차일 뿐이다.
어떠한 이혼이든 서류에 도장만 찍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숙려기간과 교육을 이수해야 하고 아이들이 있는 경우 양육권과 양육비 지급에 합의했다 하더라도 이혼하는데는 적어도 6개월은 걸린다.
중요한 것은 먼저 신고가 이루어지고 폭력이 멈추어지지 않는다면 치유와 회복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 가정이 이혼이라는 절차를 밟던 안 밟던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미 가정이 아니라 지옥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던
당신은 당신 자신을 지켜야 하고 살아남아야 한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만이 생존자가 아니다.
인신매매나 종교적인 박해에서 살아남아야 생존자로 추앙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 그 폭력의 상황에서 벗어날 생각을 시작하는 것이 생존의 시작이고
당신이 제일 소중한 생존자이다.
<그런 가족은 필요 없다>
가정폭력 없는 세상을 위한 전국 여성의 전화의 7가지 요구
1. '가정 보호'에서 '피해자의 안전과 인권' 중심으로! 국회는 가정폭력 처벌법을 즉각 개정하라
2. 가정폭력은 범죄다! 가정보호사건이 아닌 형사사건 처리를 원칙으로 수립하라
3. 가해자는 안방이 아닌, 경찰서로! 신고받은 경찰은 피해자로부터 가해자를 격리 조치하라
4. 피해자에게 처벌의사 묻지 말고, 범죄 수사와 처벌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다하라
5. 가정폭력 피해자 이혼 사건 처리에서 부부상담명령, 면접교섭 사전처분 금지하라
6. 피해자의 권리에 입각한 조건 없는 포괄적 지원으로 피해자의 일상을 복구하라
7. 가정폭력범죄의 실태와 사법처리 현황을 통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성인지 통계를 마련하라
'비난하거나, 통제하거나, 차별하거나, 구타하는, 그런 가족은 필요 없다'는 메시지가 더 널리 퍼지도록 같이 외치고 함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