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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Feb 28. 2024

나+세상=?

방정식을 완성해 보세요

82년생 김지영만큼이나 흔하디 흔한 이름을 가지고 80년대 중반에 태어났다. 세상에 태어난 순간 나를 축복하고 반겨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엄마는 더운 여름 에어컨 따위 없는 단칸방에서 더부룩한 몸으로 지내다가 나를 낳아서 좋았다고 한다. 언니를 낳았을 때는 출산과 육아가 처음이라 고되고 힘들고 예쁜지도 모르고 세월이 지나갔다고 한다. 대부분의 여자들처럼 3년 동안 그 아픔과 고통을 망각한 엄마는 나를 낳고서는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움을 느꼈단다. 하지만 아빠는 첫째의 탄생의 기쁨보다는 덜 감동했고, 언니는 나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했고, 할머니는 또 계집아이라는 사실에 실망해 병원에 오지도 않았다고 한다. 다소 소박한 환대 속에서 나는 세상을 만났다.



7남매 중에 막내인 아빠와 6남매 중에 맏딸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친가에서는 사촌들 대부분이 결혼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그랬기에 언니는 집안에서 아주 오랜만에 안아보는 아기였다. 친척들에게 많은 예쁨을 받았다. 외가에서는 맏딸인 엄마가 가장 먼저 시집을 갔기에 역시나 언니는 처음 안아보는 아기였고 역시나 친척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반면 그 사촌들의 자식이 태어날 때 즈음 태어난, 또는 외사촌들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나는 그냥 그저 그런 한 명에 불과했다. 지금보다는 많았던 친척들과의 모임에 갈 때마다 언니에게 다가가는 눈길과 손길을 그저 부러워하며 엄마 뒤에 숨었다. 엄마는 그때도 나를 예뻐해 주었다. 사라지고 싶고 사라질 것 같은 세상에서 엄마는 나를 존재하게 했다.



학생이 되어서 나는 늘 언니보다 문제아, 언니보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였다. 사실 전체 성적으로 보면 언니와 그리 차이 나는 건 아니었는데, 수학성적이 떨어지다 보니 공부 못하는 아이로 낙인찍혔었다. 머리가 나쁜 아이 그래서 국어나 사회는 잘하지만, 이과 계열 과목들은 못하는 아이였다. 나는 진짜 내가 그런 아이라고 생각하고 머리가 나빠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노력했다. 물론 그렇게 깨달은 때가 고3이라는 사실이 참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1년을 열심히 노력했더니 수학과 과학 등급이 제일 잘 나왔었다. 세상은 노력하면 된다는 사실을 몸소 알려주었다. 자만하면 안 된다는 사실도 함께, 가장 믿었던 사회탐구 등급이 내 수능 점수를 모두 깎아 먹었으니. 세상의 혹독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성인이 되어서는 열렬히 사랑을 했다. 독신주의 운운하며 앞서가던 페미니즘 따위는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사랑을 했다. 사람을 만나고 썸을 타고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면서 깨달은 사실은, 정말 키도 공부도 진로도 다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중 으뜸은 단연코 연애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사랑을 하기로 마음먹고 실행에 옮겼다. 이별의 아픔에 술도 퍼 마시고, 자니? 같은 쓰레기 문자도 날려보고, 다음 날 땅을 치며 후회도 해 보았다. 세상에서 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학창 시절에 나는 하고 싶은 게 명확한 아이였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즐겨하는 나는 춤추고 노래하는 끼는 없지만 누군가 앞에서 이야기하는 게 좋았다. 말을 잘한다고 목소리가 좋다고 발표를 잘한다고 나를 표현해 주는 게 좋아서, 앞으로 나서곤 했다. 세상에서 나는 이야기를 하는 직업으로 경제적 활동을 하고 보람을 느끼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다만 그 길이 아나운서 밖에 없는 줄 알았고, 꽤 공부를 잘해야 하고 꽤 외모도 예뻐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고, 나는 지레 겁을 먹고 포기했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이 무서워 도망치고 싶었다. 세상 속에서 나는 갈 길을 잃었다.




그 길 속에서 등불을 기다리고 있던 한 남자를 만났다. 당시에는 내가 세상에 온 이유가 이 사람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연애를 했고 말도 안 되게 모두가 뜯어말리는 사람과 결혼을 했다. 다행히 모두가 우려하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고, 지금도 내 곁에서 환한 등불이 되어 주고, 연료가 되어주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열렬히 사랑한 덕분에 두 아이를 만났다. 두 아이는 세상에 나를 존재하는 이유라고 하기에는 다소 거창하지만, 나를 살게 하는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아이들이 있어 나는 더 잘 살고 싶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가끔 좋은 사람은커녕 미친년 모드로 지나가는 사람의 머리끄덩이라도 잡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를 움직이고, 살게 하고, 그 속의 의미를 찾게 하는 내 세상의 또 다른 축이기도 하다.




아이를 만나고 그림책이라는 인생의 동반자를 만났다. 지금도 묵묵히 곁에서 함께 해주는 그림책들이 나를 버티게 한다. 가끔 너무 오래되고 너무 자주 봐서 별 감흥이 없는 것 같지만, 그럴 때마다 묵직한 한방을 날리는 범상치 않은 그림책이라는 녀석을 보며 세상이 꽤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을 더 잘 살고 싶고 세상 속에서 행복을 누리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한다. 그렇게 그림책 덕분에 이 넓고 위태롭고 위험한 세상 속에서 내 이름으로 우뚝 섰다.




나와 세상이 만나면 어떤 방정식이 나올까 고민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내가 탄생하던 순간까지 돌아가 보았다. 비록 그리 환대받지 못하는 탄생이었지만, 누군가의 사랑으로 나는 세상 속에서 충만한 존재였다. 비록 그리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꿈을 꿀 수 있었고, 사랑할 수 있었고,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와 세상이 만나면 보람, 행복, 평화, 사랑 같은 방정식이 성립되면 좋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 세상이라는 식에는 그냥 '나'가 정답이다. 바로 나, '이 현 정'. 




누군가가 보면 자기애에 취해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고 하는 것처럼,

모두들 자신이 그럭저럭 꽤 괜찮다고 여기며 살지 않는가.

그렇게 사는 것이 세상의 순리가 아닌가.

그렇게 사는 것이 현명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아닌가. 

세상과 내가 만나면 유일한 '나'가 나온다.

흔하디 흔한 이름이지만 유일한 정체성을 가진 그런 '이현정'이 나온다.

나는 그런 내가 좋다.(그렇게 주문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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