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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Feb 29. 2024

Try Again

겨울이 되면 예민해진다. 프리랜서 강사의 삶이라는 게 실로 그렇다. 뭐 그리 많이 버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예민해지는 건지, 시간 대비 능률을 올리고 싶기도 하고, 또 원하는 강의를 원하는 곳에서 하고 싶기도 하다. 그런 원대한 꿈을 안고 있지만, 공공기관 주로 도서관에서 공개집을 통해 합격을 해야만 강의를 할 수 있는 나로서는 외롭고 불안하고 바닥으로 자꾸 곤두박질 칠 치는 시기가 바로 이때다.



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실 올해는 새롭게 해보고 싶은 일이 있어서 무리해서 강의를 잡지 않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배움의 시간도 필요하다는 걸 알아가는 연차다.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애써 나를 다독이고 탈락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합리화를 다. 하지만 막상 강사 모집 공고를 마주하고, 지원서를 쓰면서 언제나 그렇듯 간절해졌다. 일희일비 하지 말자고 다짐해 놓고서는 모니터의 환한 빛 사이로 찾아볼 수 없는 나의 이름 석자를 확인하고는 어둠의 세계로 들어갔다. 실망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곤 했다.



탈락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낯설다. 엄마가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셨는데, 이쯤되면 내가 인간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게 탈락이라는 것이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선택된 잔인한 현실을 마주하고는 나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도대체 왜 나는 안 될까. 이제 경력도 꽤 쌓였는데 도대체 왜 그럴까. 나라는 사람 자체가 문제가 있구나. 나는 쓸모가 없구나. 라는 수순의 단계를 밟으며 지하 78층 정도 내려갔다가 아주 느리게 한 계단씩 한 계단씩 올라온다. 운이 나빴다고, 무언가 스케줄이 안 맞았다고, 스스로 맞지 않아서 포기한 강의도 있지 않냐고.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상반기에 4개의 강의를 진행하고, 내가 계획한 것보다 조금 더 적절하게 강의스케줄을 채웠다. 하지만 2월의 마지막 날 이런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기까지 나는 까칠하고 날카로운 시간을 여러 날 보냈다. 자존감이라고는 상실된 어둡고 끈적끈적한 늪에서 허우적대다, 봄을 맞이하기 위해 축축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끼 낀 돌멩이를 꽉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올라오는 중이다.



꽁꽁 얼어붙어 있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어쨌든 봄은 왔다. 계절의 변화 속에 나의 봄도 시작될 것이다. 간절하게 바라고 바라던 것들이 쉽게 얻어지지는 않지만 도전하고 또 도전하고 또 도전하면 언제든 열린다는 지난하고 진부한 사실을 내 머릿속에 가슴속에 각인시킨다. 무너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궤도 어딘가를 걸어가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믿으니까.



올해 새롭게 하고 싶은 일도 마찬가지다. 소질이 없어서 잘 몰라서 배운 게 없어서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아서 나는 부족하고 모자라다고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 섣불리 시작하지 못하고 계속 미루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길고 긴 겨울방학이 나를 그렇게 만들고 있노라고, 애꿎은 아이들과 사회 시스템에 핑계를 대고 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 외면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며, 좌절하지 않기를 바라며, 실패하지 않기를 바라며 나아가지 못하는 나에게 다가오는 봄밤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https://youtu.be/4LPmBiFkoBk?si=cocXjq4K6053QN0g


잦은 다툼에
몇 번이고 다시 무너져도
중요한 건 우리라고 말했듯
무의미하지 않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거라고
지난날이 말해주고 있는 걸
So whenever you ask me again
how I feel
Please remember
my answer is you
먼 길을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난 여전히 같은 맘일 테니까
We'll be alright
I want to try again

- Try Again(디어, 재현)

-




나의 시간들이 무의미하지 않다고

보이지 않아도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는 거라고.

좌절하고 망설이고 두려워한다 해도

여전히 같은 마음으로 또 할 거라는 걸 알기에

올해 봄, 언제나 그러하듯

try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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