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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Mar 20. 2024

연두와 만수

요즘 내가 좋아하는 것

가장 좋아하는 색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초록이라고 답한다. 신혼 혼수 이불로 연둣빛 이불을 사 왔는데 백화점에 있는 예쁜 집에서는 빛이 나더니 우리 집에 들여놓으니 그렇게 촌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좋아하는 연두색 이불이지만 장롱에서 나와 빛을 보는 일이 이제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물건을 사면 여전히 초록색에 손길이 간다.



산이 좋은지 바다가 좋은지 물으면 단연코 산이라고 말한다. 광안리 바닷가에서 캔맥과 새우깡을 즐기고, 해운대 바닷가를 거닐며 썸을 탔던 나는 산이 좋다. 초록빛 나뭇잎들이 바스락바스락 서로 부딪히며 내는 소리는 마음을 위로하는 변주곡이 되어준다. 날마다 다른 멜로디로 날마다 다른 합주를 들려준다. 그래서 나는 산이 참 좋다.



초록과 나무와 숲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이번 생은 망했어요'라는 말을 정말이지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이번 생에서는 정말 안 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바로 식물을 키우는 일이다. 결혼하고 집들이를 했을 때 신랑 회사 동료들이 커다란 화분을 들고 왔었다. 그때는 베란다도 있는 집이었는데 얼마 못 가 시들시들 병약해지는 바람에 부랴부랴 시댁으로 보냈었다.



아이를 낳고 아이가 유치원에 가자 원예수업을 받았다며 매달 작은 화분을 가지고 왔다. 다육이도 가져오고 선인장도 가져오고 수경재배하는 식물도 가져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초록과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물도 주고 돌보았지만 며칠을 못 견디고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아이가 1학년이 되자 강낭콩을 학교에서 받아왔다. 관찰일기를 쓰는 게 숙제라 분갈이할 화분도 사고 덩굴이 타고 오를 긴 막대도 구했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죽고 말았다. 햇볕이 잘 드는 자리에 두었더니 타 죽었다. 햇볕이 너무 많으면 안 되는구나를 몸소 경험하고 또다시 호기롭게 큰 맘먹고 화원에 가서 화분을 두 개 들였다. 키우기 쉬운 아이로 골라 달라했고 집으로 데려와 타 죽지 않도록 충분히 물을 주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화분은 곧 시들시들해지더니 축축한 흙속에서 초록잎 대신 버섯이 비죽 올라왔다.



생글생글 생기가 넘치는 연둣빛 초록빛을 좋아했는데 허여멀거 죽죽한 버섯갓이 고개를 내미는 것을 보고는 나는 식집사가 되는 것을 이번생에서 과감히 포기했다. 다시는 어떤 식물도 괜한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는데, 지난주 우리 집에 산소를 내뿜는 새로운 아이가 들어왔다.



오랜만에 만난 R은 나와 함께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했고 차를 태워 나를 데려갔다. 그리 멀지 않은 조금 떨어진 외곽에 위치한 커다란 건물에 들어가니 초록의 세상이 펼쳐졌다. 향긋한 자연향수가 가득한 곳, 한들한들 손짓하는 초록의 귀염둥이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감히 팔 걷고 나서서 곧 사형선고를 받을 아이들을 고를 수 없어 그저 구경만 하는 나에게, 다정한 R은 두 녀석을 선물로 주었다.



괜히 죽여서 식물에게도 R에게도 미안한 감정만 들까 봐 걱정이 앞섰지만, 집에 초록빛 생명체가 숨을 쉰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렜다. 정말 정말 개떡같이 키워도 찰떡같이 살아남는다는 스킨답서스 하나와 파란색 물방울을 머금은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꽃말을 가진 물망초를 겁도 없이 받았다.



집에 오자마자 일러준 대로 물을 듬뿍 주었다. 그러고는 검색에 검색을 하며 두 아이를 공부했다. 또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름을 지어주면 특별한 존재가 되니까. 스킨답서스는 둘째가 연두가 어떠냐고 했다. '두'를 말할 때 입술을 동그랗게 모으면 싱그러운 빛이 뿜어 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연두, 연두. 부르면 부를수록 좋았다.  



아이들은 물망초는 망토라고 부르자고도 하고, 청화(푸른 꽃)라고 부르자고도 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왠지 모르게 시들해 보이는 모습에 무언가 더 건강하고 특별한 이름이 필요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내가 '만수'라고 부르자 했다. 오래도록 살라고. 오래오래 같이 살자고. 꽃이름이 만수가 뭐냐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아이들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에는 쏘옥들었다. 가수는 노래 제목대로 산다고 하고, 영화배우는 작품명처럼 산다고 하니까. 우만수도 자신의 이름처럼 살지 않을까. 그렇게 물망초의 이름은 만수가 되었다.



요즘 나는 하루에 한 번씩 부러 환기를 하며 만수와 연두에게 말을 건다.

'만수야, 오래오래 같이 살자. 연두야 고마워.'라고.

살짝 열린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바람에 흔들 거리는 나뭇잎이 오래오래 같이 있겠다고 자신도 고맙다고 나에게 답을 하는 것 같다. 나는 요즘 그 시간이 좋다. 만수와 연두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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