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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Apr 02. 2024

벚꽃 마실

높은 빌딩 숲이 가득한 곳 근처에 자리 잡은 아파트. 그곳에 사는 나는 자주 자연을 만끽하고 싶어 캠핑을 떠나곤 한다. 시야를 가로막는 건물은 하나도 없는 곳. 시야에 파란 하늘과 구름과 나뭇가지가 걸리는 그런 곳. 그리고 계절마다 그 계절을 만끽할 수 있을 때 캠핑을 떠난다. 겨울이면 설국캠핑을 신비로움을, 가을이면 단풍맛집의 청량함을, 여름이면 우중캠핑의 운치를, 봄이면 벚꽃 캠핑의 사랑스러움에 빠져들고 싶어 시기를 맞추고 캠핑장을 검색하곤 한다.



하지만 개화 시기는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어서 우리가 미리 예약한 때에 벚꽃이 이미 다 떨어지거나 아니면 아직 피지 않거나 하는 등 다양한 변수가 생긴다. 그래서 아직까지 벚꽃 캠핑다운 캠핑을 해 본 적이 없다. 살짝은 덜 피어난 채로. 더 피어난 채로 함께하곤 한다. 꽃이 주는 아름다움과 몽글몽글함을 만끽하지는 못한 채로 우리는 캠핑에서 다시 돌아오곤 한다. 교통체증을 이겨내고 아파트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들은 일제히 외친다.


'우~~~ 와~~~~~~~~'


그리 길지는 않은 길이지만 아파트 입구에 양쪽으로 늘어선 벚꽃나무가 흐드러지게 펼쳐져 우리에게 오느라 고생했다고 손을 흔든다. 새끼 고양이의 발바닥처럼 보들보들 새살이 돋는 분홍빛은 우리 차를 향해 핀 조명을 쏘는 것처럼 아름답게 쏟아진다. 여기에 바람이라도 한번 불어오면 휘날리는 꽃잎은 꽃을 보지 못해서 건조했던 우리의 마음을 살랑살랑 적신다. 창문을 내리고 휘날리는 벚꽃 잎을 잡으려고 소심하게 손을 내밀어 본다.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스쳐 지나가는 꽃내음 덕분에 교통체증에 하얗게 질려버렸던 얼굴이 생기가 도는 핑크빛으로 물든다. 나 캠핑 왜 간 거지? 문득 물음표가 생긴다.



예쁘고 아름답고 행복한 것들이 커다랗고 대단하고 멀리 있을 거라고 넘겨짚었다.

하지만 행복한 일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매일매일 있는 것을.

올해는 벚꽃 캠핑 대신에 벚꽃 마실을 나가야지.

발그레한 얼굴로 피어난 벚꽃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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