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닮녀 Apr 03. 2024

봄바람 친구

보고 싶다 친구야

커다란 운동장. 따스한 봄바람이 쓸쓸한 바람이 되어 마음을 아린다. 스피커 아래 벤치 의자에 나란히 앉은 소녀들. 스피커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들썩이는 어깨가 파도를 타듯 전염된다. 말없이 울던 소녀들은 꺼이꺼이 눈물바다를 이룬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좋아하고 좋아하고 또 좋아하던 나의 오빠들 젝스키스의 해체가 발표되고 나는 세상을 잃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슬퍼할 일은 아니었는데, 그 당시에 나의 세상은 젝키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슬프고 아팠다. 그래서 완전히 붕괴되었다. 그런 심정으로 가출 아닌 외박까지 감행하여 부산에서 서울로 드림콘서트에 다녀왔었다. 그 일화는 두고두고 명절 안줏거리로 등장하고 있다는. 



드림콘서트에서 정말 정말 먼발치에서 -사실 티브이에서 보는 게 훨씬 더 잘 보였을 거리에서- 오빠들을 바라봤지만, 노란 물결 속에서 내가 함께 노래 부르고 함께 슬퍼할 수 있다는 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사실은 오빠들의 마지막 무대라는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이 앞으로 살아갈 날의 힘이 되었다. 콘서트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급식을 먹지 않고 친구와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여전히 슬픔을 나누곤 했다. 서로가 버틸 수 있도록 옆에 있어주고 함께 울어주고 같이 슬퍼해주었다. 



생각해 보면 5월의 바람은 그리 차갑지 않은데, 그때 우리에게 바람은 차갑다 못해 시렸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시린 바람을 맞다 보니 점점 무뎌졌다. 슬픔을 느끼는 방법을 함께 나누며 단단해졌다. 당시에는 하염없이 불어오던 부산 바닷바람이 참 야속했다. 이제 돌이켜보니 뺨을 타르고 흐르던 눈물을 얼른 날려 보내주려고 그렇게 무섭게 불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슬픔의 봄이 지나가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2016년 봄, 우리의 오빠들이 다시 돌아왔다. 비록 완전체는 아니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다는 건 정말 꿈만 같았다. 중학교 시절 나와 아픔을 함께 나누던 친구와는 성인이 되고 부산을 떠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는데, 오빠들의 재결합으로 다시 연락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함께 재결합 콘서트에 가자고 약속도 했다. 비록 피 터지는 티켓팅으로 나만 입장권을 구하게 되어 결국 홀로 가게 되었고, 또 그렇게 만나지 못한 친구는 애 키우느라, 살림하느라, 일하느라 다시 소원해졌지만 봄바람이 부는 계절이 되면 그때 그 시간들이 더욱 떠오른다.



벤치에 앉아 운동장으로 울려 퍼지는 오빠들의 노래를 함께 들어주던 그 친구. 같이 어깨를 들썩여주던 그 친구. 차가운 봄바람을 함께 맞아주던, 따스한 봄바람으로 만들어 주던 그 친구. 

그 친구가 보고 싶다. 윤아. 잘 지내니?




매거진의 이전글 벚꽃 마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