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길고 긴 대기 줄 인파를 보여주었던 핫 하디 핫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인연이 되었다. 책을 쓴 작가가 자신의 책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팔러 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쓴 글을 읽어주기를 바라며. 내가 쓴 책을 사서 읽고 그림책과 사랑에 빠지고 글쓰기에 녹아들기를 바라며 책을 팔러 갔다. 생각보다 많은 인파와 또 보기보다 지갑을 잘 열어주는 엠지세대들 덕분에 가져간 책을 오전에 다 팔아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이 가져오는 건데. 아쉬워할 틈이 어디 있겠냐 싶어 창고에 있는 책을 퀵으로 받았다. 오후가 한참 지나 마칠 시간이 다 되어 가는 와중에 책이 도착했다. 뒤늦게 받은 이 책들을 모두 팔고 퇴근하리라 의지를 불태웠다.
가수는 노래제목 따라가고. 작가는 책 제목을 따라간다고, 그냥 좋아서 사주는 독자들 덕분에 책은 생각보다 잘 팔렸고 추가로 받은 책도 거의 소진되었다. 하지만 마의 구간이었는지, 판매 의욕이 떨어졌던 건지, 단 한 권을 남기고 책은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기만 할 뿐 주인을 찾아가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 책장을 스치는 손길을 발견하고는 퇴근을 좀 시켜달라고 농담을 빙자한 진담을 건넸더니 마음 약한 한 분이 선뜻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덕분에 뿌듯한 마음으로 도서전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직접 내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는지 설명할 수 있어 행복한 하루였다. 꿈같은 하루가 막을 내리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그날의 소중한 독자들을 잊어버리고 그냥 그렇게 지내왔다.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 개인메시지 창에 1이 표시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잘 모르는 누군가가 내 책을 읽고 나에게 편지를 썼다며 주소를 알 수 있을지 물었다. 너무 반가웠고 너무 기뻤고 너무 감동적이어서 주소를 알려주고 싶었지만, 세상이 세상인지라 선뜻 나의 집주소를 알려줄 수는 없었다.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는 건 언제나 중요한 일이니까, 아쉬운 마음을 듬뿍 담아 메일주소를 알려주었다. 메일 주소를 알려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일이 도착했다.
손 편지를 써놓고 어떻게 보낼지 고민했는데, 다시 또 이렇게 메일로 쓰니 새로운 편지를 쓰는 것 마냥 설렌다는 인사와 함께 자신이 도서전에서 나를 퇴근시켜 준 아주 귀한 독자라는 사실을 밝혔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의 상황이 떠올랐다. 책을 달라고 하며 번지던 그 미소, '사인해 드릴까요?'라는 질문에 사인 때문에 구매했다며 책을 내밀던 손길, 선한 눈빛을 나누며 돌아서던 뒷모습이 떠올랐다. 아 그분이구나.
정말 오랜만에 받은 개인적인 편지였다. 메일함에는 언제나 업무메일과 광고메일이 가득 차 있을 뿐 이런 사적인 편지를 받아본 게 얼마만인지 하마터면 스팸메일인 줄 알고 휴지통으로 갈 뻔했다. 직업의 특성상 좋은 책이란 무엇인지, 좋은 독서란 무엇인지 고민은 많이 했는데, 이 부질없는 고민의 답을 나의 글을 읽고 찾았다는 말에 마음의 파도가 나의 모래를 부서트리며 하얗게 피어나는 듯 속이 시원해졌다. 좋은 책과 좋은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기보다는 마음 가는 것을 마음 가는 대로 마음을 쓰며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아, 나는 그 소중한 독자- 나에게 팬레터 같은 정성스러운 레터를 보내 준- 덕분에 다시 글을 쓸 수 있었다. 한 동안 개인적인 일로 글을 쓰고 싶은 마음마저도 일지 않았다. 나 스스로 글을 쓰지 않으니 누군가에게 쓰자고 말하기도 괜히 낯부끄러웠다. 막상 오늘 글을 쓰려니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까라는 고민이 나를 옥죄었다. 그런 나에게 턱 하니 해결책을 알려주었다. 잘 쓰려고 어떤 고민을 하기보다는 마음 가는 대로 마음을 쓰며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글쓰기 초심에 가졌던 내 마음에 다시 스위치를 켰다. 그래, 글쓰기란 그냥 그런 거지. 무작정 오늘도 내일도 아무 말이나 해보는 거지. 그러다 보면 어느새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고 성장하는 나의 글력을 발견하게 되는 거니까.
마음을 다해 글을 썼더니 책을 내게 되었고, 책을 내었더니 독자에게 레터도 받게 되었다. 이 황홀한 경험은 그림책을 향한 나의 진짜 마음. 글쓰기를 향한 진짜 나의 마음이 준 선물이 아닐까. 혹시 이 글을 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자신이 아는 누군가에게 편지글을 써보면 어떨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마음을 담아 마음 가는 대로 써보면 어떨까. 그냥 쓴 편지지만 누군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글이 될 테니까. 그 마음이 다시 답장을, 글을 쓰게 만들 테니까.
*진부하고도 진부한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사랑을 담은 저의 글을 읽어주시기를, 그리고 혹시 나는 편지를 쓸 대상이 없다면 이 글을 읽고 레터를 제게 보내주시기를 바랍니다. 얼마든지 또 답장을 해드릴게요. 그렇게 쓰는 사이가 되어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