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동거
참 감사한 날이다. 내가 이런 호강을 누려도 되나 하는 불안감이 슬쩍 올라온다. 아차 싶었다. 하늘이 주는 복에 의심을 가지면 그 복은 멀어진다고 한다. 신께서 이것이 네가 원하는 거 아니었어? 하는 생각을 복을 주시다가 하게 된다는 거지.
순간 올라오는 불안감을 눈치채고는 큰소리로 "당연하지, 당연하지, 당연하지"를 외쳤다. "나는 이런 복을 누릴 충분한 자격이 있어." 하고는 주먹을 불끈 쥔다.
그동안 수고한 것도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 때문 아니었던가. 그래 수고했어. 너는 충분히 이런 기쁨을 누려도 돼. 지금의 행복감을 온전히 느끼리라.
이상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지난 7월부터 30평 아파트에 메인 룸과 그에 딸린 화장실, 드레스룸은 내가 쓰고 현관 앞에 있는 방 2개는 둘째 딸내미와 그 남자친구가 쓰고 있다. 즉 예비 장모와 예비 사위와 둘째 딸이 한 지붕아래 같이 살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주방과 거실은 공유하고 있다.
원래 같이 살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지난 6개월의 휴직을 끝내면서 국가직과의 교류를 신청했었다. 30년 대구를 위해 일했으니 남은 인생은 다른 곳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마침 이해 당사자도 나타났다. 상대는 본청은 서울에 있으나 대구에 있는 가족 때문에 대구 사무실에 근무하는 나와 동갑인 분으로 서울로 전보되어 가족들과 떨어지는 것을 불편해했었다. 서울 근무를 원하는 나와 그렇게 이해관계가 맞아서 교류가 거의 확실시되던 때였다.
양 기관의 동의만 얻으면 바로 근무를 시작해야 했다. 나는 서울로 가더라도 원룸 오피스텔에서 거주할 생각이라 대구에 있는 짐을 옮겨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큰 집에 사람은 없고 짐만 두는 것도 중앙난방이라 가스나 관리비 등이 낭비였고, 대구 서울을 편하게 이동하기 위해서는 집이 동대구역 근처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사를 결정했다.
그런 상황에 둘째 녀석이 부산에 있는 학교를 마쳤다. 졸업 후 어떻게 살 계획이냐 하고 물으니 대구로 오겠다고 한다. 그리고 사귀던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겠다고 한다.
"동거?, 어디에 집을 구하려고?"
"00이 학교 근처에, "
"00이 부모님한테는 허락 맡았어?"
"부모님한테는 말했는데 아무 말씀 없으시데,,"
"엄마 서울로 갈 것 같아서 동대구역 근처로 이사 갈건대 거기서 살래?"
"그래? 그럼 완전 땡큐지~, 엄마 고마워"
"나도 짐 관리해 줄 사람도 있고 해서 좋지"
이렇게 된 사실이다.
잠시 후 다시 질문을 하는 둘째 녀석이다.
"엄마, 그런데 과년한 딸내미가 결혼도 하기 전에 동거를 한다고 하는데 괜찮아?"
이제야 엄마 생각이 궁금한갑 보다.
"엄마는 네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그런데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한 건지는 네가 찾아야 하는 거야. 네가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는 너만 알 수 있어. 그래서 엄마는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는 것 같아."
".............."
"그리고 동거하는 거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아. 그러면서 서로를 더 잘 알게 되겠지. 동거해 보니까 우리 꽤 잘 맞네 하고 결혼할 수도 있는 거고, 같이 살다가 평소에 몰랐던 안 맞는 부분을 알게 되어서 헤어질 수도 있는 거고. 어는 쪽이든 다 좋은 거 같은데?"
".............."
"그리고 그동안 내가 00을 지켜봐 왔는데 괜찮은 친구 같더라. 둘이 싸우지도 않는다며? 그거 쉽지 않아. 가까운 사이일수록 편하다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서로 존중하고 말도 이쁘게 하는 게 나는 보기 좋더라"
동거를 시작한 지 4개월 차이다. 서울로 갈 거라고 준비했던 것들이 한쪽 기관의 동의를 못 받아서 헛수고가 되었다. 그냥 그렇게 대구에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둘째 녀석과 남자친구한테 눈치가 보인다. 둘이 살 줄 알았을 텐데,,, 망설이다 전입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나야 엄마랑 살면 더 좋지" 한다
그 말에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그래서 둘이 아닌 셋이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좀 불편했다. 평생 남으로 있던 188센티미터에 한 덩치 하는 녀석이 우리 집에 들어와서 사니 말이다. 여름이데 옷 입는 것도 그렇고, 세수도 안한채 머리를 질끈 묶고 방에 누워있는 것도 그렇고, 얼굴에 마스크팩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도 그렇고, 과식을 해서 땀복을 입고 자전거를 1시간 타야겠다 싶은데 거실에서 텔레비전 보며 할려니 188센티미터, 175센티미터인 두 녀석이 왔다 갔다 하는 게 괜히 눈치 보인다. 예비 장모도 175센티미터이다 보니 30평 아파트가 좁다.
이제는 취업이다. 7월 학교를 마친 둘째 녀석은 지역에 본원을 둔 섬유전문기관에서 국비로 추진하는 대학졸업(예정) 자 대상 취업연계 프로그램에 선정이 되었다. 이 사업은 지역출신 학생들을 대상으로 섬유패션분야 일자리 연계하는 사업으로 금년에는 총 10명이 선정되었고 연말까지 모두 취업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구나 생각이 들어 다소 안심이 되었다.
패션을 전공한 둘째 녀석을 제외하고는 전부 섬유공학, 화학공학 출신들이라 대구에 기반을 둔 여러 섬유원단기업에 취업이 쉽게 되었지만 섬유분야를 제외하고 패션은 대구가 기반이 약해서 다른 전공자들에 비해서 연결에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가 00 인터내셔널 해외영업 쪽에 추천해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러나 서울근무이다. 둘째 녀석은 대구에서 근무하고 싶어요 하면서 거절을 했다. 이때까지는 그렇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고는 한 달 즈음이 지나자 다시 연락이 왔다.
"00 씨, 영어 스피킹 하는데 두려움은 없으시죠? 토익성적도 좋은데?"
"네?"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이태리에서 유치한 모기업이 서울에 한국본사를 내고 대구에 분소를 오픈한다고 하는데 거기서 근무할 사람을 찾고 있거든요. 00 씨 이 자리 어때요? 서울 본사에서 6개월 인턴 과정을 마치고 대구에서 근무하는 거니까 00 씨가 찾고 있는 조건과도 맞는 거 같아요"
"언제까지 답변드리면 될까요?"
"내일 오전까지 생각하고 알려주세요"
"네."
둘째 녀석이 전화 통화를 마치고는 나한테 문자를 보내 어떤지 의사를 묻는다. 나는 그 기업을 잘 알고 있다. 왜냐면 재작년 내가 밀라노까지 가서 해당기업 투어도 하였고 대구유치를 위해서 홍보에도 참가했기 때문이다.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었다.
"수영아, 엄마 이 회사 잘 알아. 정말 괜찮은 회사야. 나는 네가 신청을 꼭 했으면 좋겠어"
"엄마 그런데 해외마케팅에서 일해야 한다. 나, 뭐 파는 거 자신 없는데?, "
"기업은 제품개발과 마케팅이 전부야. 그중 해외마케팅이 핵심이고. 해외마케팅은 국내마케팅과 달리 전시회 참여하고 해외바이어 관리하고 하는 거라 일이 괜찮아. 재밌을 거야"
"생각해 볼게"
"그래 잘 생각해 봐"
그런데 이 녀석이 안 하겠다고 연구원 담당자에게 답을 했단다. 그 얘기를 듣고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아이한테는 화를 못 내고 혼자 속상해했다. 그렇게 또 여러 날이 지났다. 혼자 방에서 맨날 뚝딱뚝딱 뭐를 만드는 것 같은데 뭐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요새 방에서 뭐 만드는 거야?"
"포트폴리오 만들어"
"뭐에 쓸려고?"
"취업해야지"
"아~ 그렇구나"
그러나다 어느 날 나한테 정장을 빌려달란다. 둘 다 키가 175센티미터라 몸무게도 비슷하고 해서 가끔 옷을 바꿔 입는다. 그래라 하고는 출근을 했다.
인터뷰를 하고 그다음 주 화요일이다. 점심 식사 중인데 둘째 녀석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엄마, 나 합격했어~"
"오~ 그래?"
"어머니, 수영이 합격했어요~"
"오~ 맛있는 거 먹어야겠는데? "
"네 어머니 오늘 저녁에 파티해요"
"아니냐 오늘은 둘이 나가서 맛있는 거 먹고 오고 셋이 하는 거는 다음에 하자. 오늘은 운동하고 갈게"
그러면서 저녁 먹으라고 이십만 원을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어머니, 수영이 진짜 대단하죠?"
남자친구가 하는 말이다.
"뭐든지 첫 번째에 다 돼요, 일러스트레이터도 한 번만에 붙었지 포토샵도 한 번만에 되었지 토익도 한 번만에 팔백 넘었지 취업도 한 번만에 되지, "
그러고 보니 최근 네 달 동안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준비해 왔다.
"그렇네, 수영아 정말 대단한데?"
"
"최근에 떨어진 줄 알고 신경이 날카로웠는데 붙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 그랬으면 저 큰일 날 뻔했어요."
이렇게 말하고는 기쁘면서도 안도했다는 믹스된 감정을 번갈아 얼굴에 보이면서 가슴을 쓸어내린다.
녀석도 걱정이 많이 되기는 했는가 보다.
지난 8월이었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에서 섬유패션 관련분야에 취업을 알선하는 사업인 '대학졸업예정자 대상 취업연계프로그램'에 패션전공으로는 유일하게 붙은 둘째 녀석이었다. 그리고는 국내 최고라는 섬유패션기업과 구찌, 버버리등 글로벌 럭셔리 패션기업에 원단을 납품하는 이탈리아의 리00 대구지점에 취업의사를 물었었다. 그러나 수영이가 싫다고 한다. 국내 최고 섬유패션기업은 서울 근무라서 싫다 하더라고, 리00 같은 경우는 한국섬유개발연구원 10층 근무에 내가 대구 유치를 위해 이탈리아까지 갔던 업체인지라 둘째가 싫다고 할 때는 많이 서운했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자식을 키워본 부모는 알겠지만 자식 농사는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닌 것을.
그렇게 취업연계 프로그램을 통하지 않고 스스로 찾아서 취업한 기업은 대구 동구에 위치한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직원 5명의 요가복을 전문으로 제작 생산하는 대구업체이다. 삶에 있어서 유연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선택지가 많다는 것이고 행복해질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고 하지 않는가. 작은 업체인 만큼 대표 옆에서 회사의 경영시스템과 노하우를 잘 익혀서 향후 창업을 목표로 열심히 일하자고 하니 둘째가 고개를 끄덕인다.
얼마 전 대구시에서 대구 파워풀 SPA 브랜드 개발을 포함한 '대구 섬유패션산업 르네상스 전략'을 발표하였다. 대구정책연구원에서 오랫동안 침체된 대구 섬유산업 살리기를 위해 연구한 결과이다. 이와 연관되어서 기회를 잡을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SPA 브랜드 개발·디지털 전환…대구 섬유패션산업 살릴 전략 나왔다 | 중앙일보
퇴근시간 무렵이다. 번쩍 번쩍하며 문자가 왔다는 것을 알린다. 보니 수영이다.
"응, 수영아~"
"엄마, 언제와?"
"하하, 일찍 오라고?, 저녁 맛있는거 해놓은 거야?"
"응, 그러니까 빨리 와"
"그래~"
퇴근무렵 수영이한테서 오는 전화는 맛있는거 같이 먹게 다른데 가지말고 일찍 들어 오라는 거다. 일전에 둘이서 취업 축하하고 오라고 한 이후 우리 셋이 다같이 축하하는 자리는 만들고 싶었는가 보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테이블 위에 반지르르하게 기름기가 흐르는 방어회가 놓여져있다. 기특한 녀석들이 이렇게 나를 챙긴다. 따로 끓여놓은 된장찌개도 너무 맛있다. 식성이 한창인 아이들 많이 먹으라고 내가 좀 천천히 먹을려하면 예비 사위인 규인이가 얼른 눈치 채고는
"어머니, 이 부위도 한번 드셔보세요"
하면서 기름기가 가득한 배꼽살을 내 앞으로 밀어 놓는다. 무심한듯 하면서도 계속 예비 장모님한테 신경쓰고 있는 규인이가 참 기특하고 고맙다.
"그래, 고마워" 하면서 한 점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속으로는 사위 녀석이 방어맛을 아네 하고 생각했다.
참으로 기특한 둘째이다. 언제부터 수영이가 이렇게 살림을 잘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분명 고등학교 졸업할때 까지만 해도 자기 방을 흔히 말하는 돼지우리로 하고 있었던 아이였었는데.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 가사 도우미를 하러 오시던 분들이 시작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손목이 아파서, 허리가 아파서 등등으로 그만두게 만들었던 장본인이었는데 지금 내 앞에 있는 녀석이 4년 전 그 녀석이 맞는지 내 딸이지만 모르겠다.
한때는 나에게 반항하고 말도 안 하고 해서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부산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에도 그렇게 사이가 개선되지는 않았었다. 이렇게 좋아지게 된 계기는 규인이를 만나면서부터였고 그 무렵 나는 마음공부를 시작했었다. 코칭을 배우고 매주 일요일 마음공부를 하고 Neuro Linguistic Programming(NLP)를 한창 배우며 Practitioner와 Master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직장에서의 근무평정과 승진을 위한 경쟁에 지쳐있던 나는 더 이상 조직의 부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을 돌보기로 마음먹었고 그렇게 보낸 이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나는 많이 변했다. 이전에는 가시가 바싹 돋은 상태였다면 지금은 목소리도, 행동도, 인상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욕심도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에고를 강하게 만들어 헛된 욕망만 키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생의 답은 어렵지 않는데 너무 어렵게 아등바등 살고 있었다. 이 모든 욕심은 내 안의 에고에서 나온다. 남과 비교하고 남보다 우월하고자 하고 끊임없이 물질적인 것에 집착함으로써 나온다.
너희가 할 일은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라고 신은 말한다. 우리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신께서는 감사함을 모르고 어리석은 삶을 계속 반복하며 사는 나, 우리를 보면서 얼마나 안타까워하실까 하는 생각을 한다. Having의 삶을 내려놓으면 세상에 감사할 일이 너무 많다. 매 순간이 감사할 일이고 지금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 이 순간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올라오는 행복감과 함께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보게 된다. 잘 커준 둘째, 서로 사랑하며 존중하는 수영이와 규인이, 나를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봐주는 녀석들, 오늘 맛있게 먹은 저녁,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두 사랑이고 감사이다.
#행복한순간 #감사한순간 #감사 #행복 #이상한동거 #참감사한일 #감사한일상 #행복한나 #내면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