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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안 해

by Rana


2023년 5월 생애 첫 바디빌딩 대회를 참여한 이후 그동안의 유지어터로서의 생활을 끝내고 2025년 7월 두 개의 대회를 참가한 이후 드는 생각이다. 55세의 나이이지만 이십 대 못지않은 몸을 만들어 그들과 한 무대에서 경쟁하면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싶었는데 오픈에서 Top3에 들지 못하지 실망감에 이 말이 절로 나온다.

"나, 이제 다시는 NPCA 안 뛸 거야"





매일 거울에 비친 발전 없는 내 모습을 보면 유지어터로의 삶에 실증을 느끼던 올 2월 센터에서 바디프로필을 협력 스튜디오를 통해 무료로 찍게 해 준다는 말에 솔깃해서 촬영일을 4월로 잡고 열심히 식단과 운동을 시작하였다. 오래간만에 목표를 설정하고 운동하니 재미가 나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동하였다.


조금씩 선명해지는 근육에 짜릿함을 느끼면서 이번에는 어떤 콘셉트로 촬영을 할까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며 의상 마련을 위한 과다한 지출을 하며 보내던 중 바디프로필 촬영일이 되었다.


스튜디오에는 낯선 여자 작가님이 있었는데 분위기를 아주 편하게 만들어주어서 별 부담감을 느끼지 않고 금방 촬영을 끝낼 수 있었고 일주일도 안되어 나온 결과물은 매우 흡족스러웠다.


그런데 바디프로필이나 대회를 나가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바디프로필은 그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트리거가 된다. 나도 마찬가지다. 모처럼 선명해지는 근육을 보니 다시 한번 무대 위에서 다른 선수들과 경쟁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렬하게 올라왔고 그렇게 7월 대회를 목표로 강도 높은 웨이트를 계속하게 되었다.


12%까지 체지방을 낮추고 나니 더 이상 내려가지가 않는다. 그러다 대회를 2-3주 앞둔 6월 말부터 다시 낮아지기 시작한다.




"엄마, 나랑 규인이하고 응원하러 갈까?"

그 소리에 잠시 '아무리 우리가 친해졌기로서니 장모님이 손바닥만 한 비키니를 입고 가슴과 엉덩이를 과도할 정도로 꺾어서 대문자 S를 만들어야 하는 현장에 예비사위 규인이가 온다고? 그러면 내가 부담되어서 경기에 집중을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칼로리를 극도로 줄인 식단을 하면서 대회 직전에는 분명 정신도 흐릿해질 것인데 내가 운전해서 대구에서 울산까지 간다는 것은 무리인 것을 안다. 그래서 재차 의사를 물었다.

"거기 가면 엄마가 비키니 차림으로 몸을 이리저리 꼬면서 포즈를 잡아야 하는데 니들 민망하지는 않겠어?"

라고 물으니 수영이 하는 말이

"우리는 괜찮아. 엄마만 괜찮으면!" 한다.

그 말에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그래? 나야 그래주면 좋지"라고 대답했다.


첫 대회인 울산 NPCA.


식단 하느라 힘이 없는 나를 대신해서 규인이가 대회장까지 데려다주고 관객석에서 수영이와 함께 응원하였다. 경기에 집중하느라, 처음 아이들이 응원 오겠다고 했을 때 느꼈던 부담감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고 부대를 비추는 엄청난 조명에 관객석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결과는 마스터즈 1위, 오픈 4위


아쉬웠다. 대구 경기에서는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2주간의 짧은 기간이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하면서 체지방은 6%까지 내려갔다. 몸은 2023년 처음 대회를 준비했을 때보다 좋아진 것 같았다. 그래서 아는 지인들에게 응원하러 오라는 공지도 하였다. 물론 규인이와 수영이도 함께였다.


탄을 바르고 대회 전 펌핑을 하는데 카메라가 나를 집중해서 촬영한다. 상당히 몸을 잘 만들어 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스터스에서 1위를 하고 비키니 오픈에 출전하였다. 결과는 4위. 예상보다 낮은 순위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두 번의 Npca 대회에서 성적이 이런 것을 보면 나는 그들이 원하는 몸이 아닌 것이다. 마스터스 1위는 고령자가 그래도 애썼다는 의미에서 적선하듯 준 것인가?


대회를 마치고 무대 뒤로 내려왔다. 그동안 나를 훈련시켜 준 트레이너가 다가온다.

"수고하셨어요"

그의 말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아~ 기분 나빠. 나, 이제 앞으로 Npca 안 할래요"


"아니 미스코리아 뽑는 것도 아니고 근육도 하나 없는 사람들을 왜 더 높은 성적을 주는 거래?"

응원하러 온 친구와 지인들이 수고했다면서 하는 말이다.

그렇게 55세에 젊은이들과 겨루어서 당당히 좋은 성적을 내고자 의욕적으로 준비했던 대회 도전을 마무리하였다.





나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중년의 나이에 대회를 준비하는 것과 공직이라는 경직된 조직에 근무하면서도 이렇게 도전적인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의미 있는 성적과 함께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것이 나의 이번 대회를 준비하게 된 의도이다.


의미 있는 성적이라는 것은 Top 3안에 드는 것이였는데 비록 우수한 성적을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날 나를 응원하러 온 친구들과 지인들은 나의 모습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하다. 평소에 별로 말도 없고 얌전하던 사람이 비키니만 입고 하이라이터가 쏘아대는 무대에 서서 과감한 동작을 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할 말을 잃었는지 무대를 내려온 나를 보고도 말을 잇지 못한다. 이 분야에 대한 정보가 없고 바디빌딩 대회를 처음 접한 사람들에게 뭐,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글쎄, 나는 인생 후반을 도전하는 삶을 살겠다라고 다짐했다. 도전을 통해 내 한계를 계속 깨고 싶다. 그러다 보면 나의 진짜 모습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진짜 모습을 찾은 나는 분명 자연스러울 것이고 무한의 자유를 지극으로 누릴 것이고 그 순간에 몰입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행복감으로 절정을 느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아름답고 반짝이는 존재로 앞으로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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