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지금의 나를 만든 이화와 작별인사를 하며, 지난 5년 한 해 한 해를 주욱 돌이켜보았다.
이 부분은 나혼자 대학생활을 추억하는 부분이니, 독일 회사생활이 궁금하다면 바로 밑 문단으로 건너뛰길 바란다.
2018년, 입학과 동시에 하버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고, 영어에 욕심이 불타오르던 여름과 처음으로 외국인 친구들도 사귄 그 해. 참 열심히 놀러다녔는데 역설적이게도 첫핫기는 학점도 최고점이었다.
2019년, 첫사랑도 경험해보고 첫 인턴과 첫 클럽(왜냐면 빠른이라 드디어 미자가 풀렸었다) 도 경험해보고. 취미인 노래부르고 녹음하는 소소한 재미도 기억에 남고. 과로와 스트레스로 병원에 실려갈만큼 열심히했던 하반기도 기억에 남는다. 더불어 만나게 된 많은 인연들까지.
2020년, 시작과 함께 코로나가 터지고. 처음으로 LG라는 대기업에서 근무도 해보고 새로운 복수전공과 빅데이터를 공부했고 덕분에 카카오에도 들어갈 수 있었고. 참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준 경험들을 거쳤다.
2021년, 그동안 안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필드를 선택했다. 21년은 투자분석학회, 하나금융 등 금융으로 꽉찬 해였다.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지고 좋은 기억으로 남는 해는 아니다만, 지금의 나를 만든 가장 중요한 해였던 것같다.
2022년, 힘들었던 지난 해에 대해 나에게 보상한다는 느낌으로 무작정 떠난 뮌헨으로의 교환학기. 참 여러 러나라도 여행하고 돈도 많이 쓰고 많이 먹고 마시고 좋은 친구들을 참 많이 만났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지금의 남자친구가 참 나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보통 교환학생들은 잘 보지 못할 독일의 내부나 사회 이면까지도 속속들이 보게 해주는 길을 터준 것 같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참 운이 좋게도 딜로이트 M&A 부서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기까지 너무나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
독일에 와서 가장 많이 고민한 것은, 아무래도 "왜 독일을 선택했는가"라는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한 성찰이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선택하게 된 타지생활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볼수록 참 장점이 많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이 정도로 좋은 오퍼가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고려하지도 않았을 선택지였다.
독일의 장단점은 참 극명하다.
장점은 유럽에서도 가장 많은 인종이 살며 경제 대국으로서 다양한 기회가 널려있고 영어 가능자가 많기 때문에 사는 데에 크게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잘만하면 독일의 저렴하고 수준높은 교육 시스템을 이용해서 커리어를 쌓을 수도 있다.
단점은 언제까지나 너는 외국인이고 이방인이며 매우매우 귀찮은 행정절차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큰 문화차이로 인해 독일인들 사이에서 완전히 융화기 매우 어렵다는 것또한 타지생활의 숙명적인 단점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노출되었던 다른 환경, 말장난, 음식, 문화 등. 그 몇 십년의 세월을, 그들이든 나든, 한 순간에 바꿔버릴 수 없는 노릇이니까.
정말 다행히도 그런 나에게 이런 단점을 어느 정도는 커버해줄 딜로이트가 나타났다. 첫 날 welcoming 인사로 ceo가 이런 말을 했다 - 자신이 생각하는 딜로이트의 (다른 회사와의) 차별점은 "colorful" "diversiy"라는 두 키워드로 정의할 수 있다고.
오늘로서 딜로이트에 몸 담근지 3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정말 피부에 와닿게 게매일매일 체감하고 있다.
내가 있는 뒤셀의 오피스는 독일 딜로이트 내에서도 두 번째로 큰 오피스이다. 따라서 welcoming day 때 각 도시의 오피스에서 교육을 받으러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세르비아, 알바니아, 인도, 중국, 미국, 일본 등... 이렇게 전세계의 인재들이 한 곳에 모인 것을 내가 살면서 본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나 다양한 나라에서 왔다 보니 졸업한 대학교의 랭킹 이런 것보다는, 당신의 지난 경험들과 가진 잠재력, 그리고 이 조직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할수 있는 인재인지 아닌지를 우선적으로 보는 것같다.
우리나라는 정말 우리나라 안에만 갇혀있다. 가령 우리나라 대학들 서열을 매기는 구호(?)까지도 있잖은가. 솔직히... 당장 옆나라 일본으로만 가도 아무도 몰라주는데. 우리들 내에서 그리 피터지게 급나누기 게임을 하고, 그게 인생을 결정짓는 요소라는게 웃기다.
특히나 해외에 나와보니 더더 그렇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들은 해외랭킹이 정말 볼품없다. 내가 혼자 생각해본 그 이유는, 우리나라는 우리나라 안에서만 인정받으면 되니 굳이 해외랭킹의 기준치에 부합하려 노력하지 않은 것 아닐지.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잘 잘굴러간다.(? 아닌거 같기도...) 사회 이면의 문제들은 많지만, 그럼에도 경제와 문화 대국으로 인정받고 있는 나라이기는 하다. 어디 디가서 한국사람이라고 해서 절대 손해보진 않는다.
아무리 많은 문제가 있고, 내가 싫증이 나서 떠나왔다고 해도. 사실 그건 우리나라의 일부이자 문화이고, 국민 대부분이 그걸 받아들이고 살아가기 때문에 그럭저럭 나라가 잘 굴러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독일과 딜로이트는 나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어렸을 적 내가 상상하던 나의 모습과 가까워지고 있는 것같다. 영어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토론하며 같이 일하는 일상. 그리고 한국이었으면 나서기 망설여지는 상황들(예를들면 남초라던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만 모여있다거나)에서도 당당하게 내 의견을 이야기하고 질문하고 토의하는 일상.
여기서는 기본적으로 한국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내가 신입이라, 어려서, 혹은 나 혼자 여자이기 때문에 등의 이유로 너의 의견을 이야기하지 않거나 적극적으로 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오히려 일 못하고 잠재력 부족한 자로 낙인찍힌다. 그건 나대는게 게아니라 모두가 당연하게 거치는 성장 과정인 것이고, 개개인의 성장은 곧 회사의 성장이므로 답을 주 기보다는 내가 스스로 생각할 환경을 제공한다.
가령 오늘 하루종일 한 게 좋은 예가 되겠다. 오늘 배운 것은 기업 업가치평가 과정에 있어 어떤 프레임 안에서 어떻게 financial fact book을 짜야하는지에 대해 배웠다. 총 소요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며 교육을 진행하고, 알려준 준것을 토대로 처음부터 다시 내가 스스로 그림을 그려보도록 한다.
그저 상사가 "A보다는 B를 써"가 아니라, 왜 A가 B보다 효율적인지, 어떤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지 이해하고, 끊임없이 why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내가 스스로 생각하게끔 만든다.
지금은 실습하는 첫 두 주를 보내고 있는 중인데, 실무에 투입될 그 다음 주가 훨씬 더 기대가 된다.
독일어도 영어도, 직무 공부도 뭐하나 느슨해져도 되는 것은 없지만, 기분 좋은 바쁨이고 뿌듯한 성취감과 자신감이 따라붙어서 만족중이다.
독일에서의나의 계획은 6년짜리다. 그 뒤에는 한국으로 돌아갈지 독일에 계속 그냥 정착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서 꼭 성취하고 싶은 것이 생겼고, 이루고자하는 어떤 목표가 생긴 것은 오랜만이라 조금 설레기도 한다.
새로운 출발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어려움 보다는 즐기는 여유가 생기길 바란다. (나포함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