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달글 Mar 21. 2021

[수박] 빨래예찬

나는 빨래를 좋아한다. 생각이 많을 때, 생각이 없을 때, 할 게 없어 심심할 때, 망중한에 빨래를 한다.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그 날의 빨래에 가장 알맞은 세탁코스를 맞춘 후 시작 버튼을 누른다. 위잉-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물이 다 차오르기 전까지 서둘러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채워야 한다. 세제는 고농축이니까 조금만, 샤프란은 빨래를 널었을 때 향기가 코를 찌르지 않고 은은하게 올라올 만큼만.

세탁기에 가득찬 물이 출렁이는 소리를 내며 빨랫감과 이리저리 뒤섞인다. 뒤섞일수록 하얀 거품이 퐁글퐁글 올라온다. 세탁조가 천천히 빙글, 돌아가면 빨래는 위에서 아래로 툭 떨어지고, 젖은 옷과 젖은 옷이 만나 착,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물이 튄다. 세탁기가 바쁘게 돌아가는 소리와 첨벙거리는 물소리를 듣다 보면 나도 비누거품과 함께 씻겨져 내리는 것만 같아 왠지 모르게 경건한 마음이 든다. 그러면 게으른 몸뚱이를 애써 바지런히 움직여본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맞벌이이셨던 탓에 할머니가 집안 살림을 대신 해주셨는데, 할머니는 우리 다섯 식구의 양말부터 속옷, 수건, 셔츠, 청바지까지 온갖 빨랫감을 한꺼번에 넣고 세탁기를 돌렸다. 그 시절 통돌이 세탁기의 회전력은 얼마나 강력했던지 빨래할 때마다 ‘저거 저러다 곧 터지는 거 아니냐’ 할 만큼 바닥을 쿵쿵쿵 울리며 격렬하게 덜컹거렸다. 이러한 통돌이의 위력 덕에 새로 산 수건은 얼마 안 가 말린 북어처럼 빳빳하고 거칠어졌고 아버지의 진청색 청바지는 점점 워싱진이 되어 갔다.

옷이 금방 헤져 버리는 것이 맘에 안들기 시작했던 것도, 옷을 신경써서 입게 된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이었을 테다. 유난히 아끼는 옷은 “이건 꼭 손빨래 해줘야해” 할머니에게 신신당부를 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항상 알겠다고 했지만 손빨래할 옷들은 늘 화장실 문턱에 며칠씩 쌓여있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혹은 물에 옷을 담가놓고 깜빡하시는 바람에 얼룩덜룩 이염이 되거나 옷감이 상하곤 했다. 그 중에서는 세탁소 아주머니의 심혈을 기울인 심폐소생술 끝에 살려낸 아이들도 있지만, 끝내 헌옷수거함으로 보내야만 했던 아픈 이별을 겪으면서 나는 좋아하는 옷을 오래오래 위해 빨래에 열성을 다하게 되었다.

아무튼, 그런 마음에 빨래를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빨래라는 행위 자체가 즐겁다. 얼룩지고 눅눅하고 곰팡이가 폈던 천 조각들도 빨래를 하고 나면 깨끗하고 산뜻하고 바삭바삭해지지 않나.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더렵혀진 무언가가 다시 깨끗하게 태어나고 재생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평범한 이들에게 허락된, 허구한 날들의 구원.

세탁기에 만고의 진리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만은 어쨌든 빨래를 하면서 종종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마주하곤 한다.


1.

동창 A는 교복 와이셔츠를 세탁기에 넣다가 소매 안쪽에 거뭇거뭇 때가 타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걸 그대로 빨아야 하나, 뒤집어서 빨아야 하나 고민했다. 뒤집지 않고 그대로 빤다면 소매 안 쪽 때는 덜 지워지겠지만 어차피 안쪽은 티가 안 나 겉으로는 멀끔해 보인다. 반면 뒤집어서 빨면 목깃과 소매 안 쪽은 말끔해지겠지만 겉에 묻은 얼룩은 제대로 안 지워질 것이다. 결국 A는 셔츠를 뒤집어서 빨았다. 그는 다음날 나에게 그 얘기를 하면서 덧붙였다.

“거기서 그냥 빨았으면 남들은 내 셔츠가 깨끗하다고 생각했겠지. 그치만 나는 이 안 쪽이 더러운 걸 알잖아. 그 때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 것인가’에 관해 생각했어. 외면을 중시할 것인가, 내면을 중시할 것인가. 남들에게 그럴싸해 보이는 사람보다는 나 스스로에게 더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뒤집어서 빨자, 해버렸지.”


2.

기숙사에 살던 어떤 날의 일기.

빨래를 돌리고 잠을 잤다. 초저녁 잠을 푹 자고 일어나 빨래를 찾으러 갔다. 그런데 이게 웬걸? 빨간색 츄리닝에서 물이 빠져 흰 셔츠와 티셔츠가 분홍색으로 물들어버렸다. 하필 흰 색 옷들은 왜 이리 많았는지! 츄리닝은 한 번도 물이 빠진 적 없었는데 기숙사 세제가 문제였던 걸까? (*옮긴이 : 추후 생각해보니 거의 빨아본 적이 없는 바지였다..) 아끼는 옷들이었던 지라 조금 속상하지만 일단 잊어 버릴란다.

생각해보니 이 흰색 티셔츠는 지나가다가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산 5천원짜리 구제 티셔츠인데, 사고 보니 양쪽 어깨가 누렇게 변색되어 있어 몇 번 입다 버리려고 했다. 몇 번 입다 보니 생각보다 눈에 안 띄길래 계속 입게 됐을 뿐. 또 셔츠는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아깝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다행이다. 같은 가게에서 아직 팔고 있을 테니 다시 사면 된다. 오히려 나처럼 옷에 애착 많은 사람에겐 오래 입은 옷을 잃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이 더 크다.

다행히 흰 셔츠는 유용했지만 애착이 크진 않았나보다. 티셔츠도 몇 년 동안 잘 입고 다녔지만, 대체 불가능한 옷도 아니었다. 양말 두 개는 뭐 신발 안 벗는 곳에서 신으면 되지. 그리고 핑크색이면 뭐 어때? 생각해보니 셔츠도 그냥 핑크로 입을 수 있겠다! 아님 말고.


3.

울 코스는 40분, 표준 코스는 1시간 10분, 이불 빨래는 1시간 40분. 세탁물에 따라 그날 그날 세탁 코스와 시간이 달라진다. 그러면 나는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스스로에게 할 일을 준다. 40분 안에 청소기 돌리기, 1시간 10분 안에 장봐오기, 1시간 40분 안에 운동하기. 세탁기가 돌아가는 시간은 곧 그 주에 밀린 숙제를 처리할 시간이다. 워낙에 천성이 게으른지라 이렇게라도 마감이 있어야만 일을 끝마치고, 그것마저 안 지키는 경우도 다반사. 그치만 청소와 설거지와 분리수거까지 완료하고 나서도 아직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반대로 침대에서 빈둥대던 중에 빨래가 끝났다는 알림음이 울리면 자괴감이 밀려든다. 그렇게 경쾌하게 마감시간 알려주지 마. 나 지금 아무 것도 안한지 1시간 10분이나 됐다는 거잖아.

하지만 또 단순한 인간은 빨래를 널면서 생각한다. 음, 그래. 나는 오늘 아무것도 안하지 않았어. 빨래를 했잖아!

이적이 괜히 그런 가사를 지은 게 아니다. 빨래를 해야겠어요. 오후엔 비가 올까요. 그래도 상관은 없어요 괜찮아요.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아요 그러면 나아질까요…

마침 기나긴 장마 중에 지금 잠깐 비가 그쳤다. 오늘은 이불 빨래를 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Parapluie] 귀를 보며 쓴 어떤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