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샤장 Apr 19. 2022

너의 유형은

: MBTI 미신봉자의 소신

나는 MBTI를 잘 믿지 않는 편이다. 재미 삼아 한두 번 해보았던 MBTI의 결과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내게는 매주 월요일마다 참석하는 글쓰기 모임이 있는데, 그 모임의 멤버들 대부분은 이 MBTI를 신봉하는 편에 속한다. 그런 환경에 지속해서 노출되고 있으면서도 나 홀로 대쪽 같이 MBTI 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해왔었다.


그래도 무의식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아무리 저항하려 해도 잠재의식 속에 시나브로 스며든 MBTI 앞에 두손 두발을 들었다. 무심결에 넘긴 인스타 피드에 MBTI 관련 소식이나 뉴스가 언급되면 나도 모르게 정독하게 된 것이다. 정독하진 않더라고 꼭 링크를 이들에게 공유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결국 나는 이 무시무시한 MBTI의 영향권 안을 벗어나지 못했다.


MBTI가 불법적인 것도 아닌데, 무엇이 이토록 나에게 반발심을 갖게 하였는가. 사람들을 특정 유형으로 분류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는가에 대해 고민을 해보았다. 하지만 이전에는 혈액형에 따른 인류를 분류하는 것에 어느 정도 열광했었다. 특히 나는 나의 혈액형인 B형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시크하고, 쿨한 이미지 그리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대변하는 B형의 피를 소유했다는 게 좋았다. 정확히 말하면 B형에 대한 해석이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보는 나 자신과 B형에 대한 해석이 합치했다. 이를 보아 인류를 카테고리화하는 것에 반발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잘 기억은 못하지만, 나의 MBTI 유형에 대한 해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MBTI의 결과는, 인류를 분류하는 툴로써 신뢰성을 잃었다는 판단을 내리게 했을 수도 있다. 결국 나는 지난한 12분을 다시 거치며 내 유형이 무엇이었는지 좇아 보기로 했다. 왜 내가 MBTI를 거부하는지 정말 궁금했으므로.


왠지 ENTP이실 것 같아요.


재검사 실시에 앞서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아는 것 또한 어느 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남들이 느끼는 나 자신도 실체적 ‘나’에 어느 정도 가까울 테니 말이다. 한참 부여받은 업무를 처리 중인 꼬꼬미 신입들을 불러다가 농담으로 내가 어떤 타입으로 보일지 물었다. 그들은 내가 ENTP 같을 거라고 했다. ENTP가 어떤 걸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 남들이 보는 나는 ENTP다. 쉴 새 없이 업무 처리의 경과를 요구하는 나를 욕하지 못해 돌려서 비난하는 것이겠거니. 그저 어렴풋이 그 특성을 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틀렸다 꼬꼬미, 욘석들아. 나는 ENFP-T다. 남들이 보는 나와 검사 결과로 나온 내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이 불합치의 간극이 내게 불신을 주고 만 것이었다. 유형화된 타입이 과연 나를 대변 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ENFP-T다.


누가 봐도 나는 B형이었다. 그러나 MBTI로 논해질 때의 나는, 보는 이마다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장난으로 하는 MBTI를 찐으로 받아들여 미안하다. 하지만 나는 참 ‘나’를 유형화된 무언가로 먼저 보여주고 싶지 않다. 더욱이 그것이 보는 이마다 달라지는 MBTI라면 말이다. 나에 대해 잘못된 선입견이 무서웠나 보다. 나의 MBTI는 ENFP지만 내 유형보다 나 자신이 기억되고 싶다. 고로 오늘 이후로 또다시 내 MBTI 유형을 고의로 잊을 예정이다.


작가의 이전글 SKIT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