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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씨 Aug 25. 2022

충청도에 살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 아니고 평생

“올 여름휴가는 충청 내륙지방으로 가볼까… 다들 여름엔 안 가는 곳일 테니 말이야.”


초등학생 때 가족끼리 여름휴가를 계획하다가 부모님 중 한 분이 말씀하셨다. 두 분 중에 누가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서로 의견일치를 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부모님은 동해의 해안마을 출신이었기 때문에 해수욕장이 관광객으로 들끓는 여름휴가 기간에는 고향을 찾는 법이 없었다. 지금은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다양한 장소에서 휴가를 즐기는 시대가 됐지만, 그때만 해도 여름휴가 하면 무조건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동해로 향했던 탓에 해수욕장이 ‘물 반, 사람 반’으로 꽉 찼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여름마다 ‘바다만 아니면 된다’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내륙 지역을 돌곤 했다.


그렇게 그해 여름 우리 가족은 충청 내륙지방으로 여행을 떠났다. 엄마는 목적지와 숙소를 미리 정하지 않는 즉흥 여행을 즐겼기 때문에 이번에도 딱히 정해진 건 없었다. 차를 타고 가다가 맘에 드는 풍경이 있으면 멈춘다, 배가 고프면 근처 식당에 간다(식당이 있다면 말이다), 날이 어둑해지면 잘 곳을 구한다, 이 세 가지뿐이었다. 아빠는 항상 불안해하며 툴툴거리면서도 결국엔 엄마의 결정에 따랐다.


매일 30도를 웃도는 한낮의 폭염을 뚫고 아빠, 엄마, 오빠, 나 네 명은 충청도의 어느 내륙 지방을 드라이브했다. 차창 밖은 뜨거운 태양과 여름 하늘,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루어진 야트막한 산과 초록빛 논밭이 이어졌다. 간간이 볏짚으로 지붕을 엮어 만든, 소풍 때 민속촌에서나 봤던 오래된 흙집들이 나타났다.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내리자 순간 훅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이내 차 안은 불어오는 바람과 도시에선 맡지 못했던 풀과 흙냄새로 채워졌다. 밭에 뿌린 비료라든가 축사에서 풍겨오는 냄새도 나지 않았다. 지나가는 차도, 사람도 없었다. ‘아무도 여름휴가를 오지 않는 곳’이었으니 관광객을 상대로 한 식당이나 숙소도 있을 리 없었다.


덕분에 나는 그때 우리 가족이 뭘 먹고 어디서 잤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강가에 차를 세우고 가스버너를 꺼내 라면을 끓여 먹었던 것도 같지만, 그게 그때였는지 다른 여행이었는지 모르겠다(우리는 곧잘 그랬으므로). 하지만 그때 차창으로 끝없이 이어졌던 풍경만은 절대 잊히지 않는다. 열 살 남짓의 나는 해수욕장이나 계곡 물놀이보다 그 풍경이 좋았다. 아무것도 없기에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는 풍경, 한없이 나른하면서도 평온한 기분이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여름의 한복판, 차창 밖을 말없이 바라보던 어린 내 모습을 떠올려본다. 나는 커다란 뭉게구름들을 바라보며 나만의 모양을 만들어보고 있다. 저건 호랑이야, 저건 토끼야, 저건…그때 뭉게구름 중 하나가 갑자기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 등장하는 지옥사자의 모습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가 어린 내게 이렇게 고지한다.

“너어느으은, 사암십 년 뒤에에…이곳에에…살게에…된다아아아…”

어린 나는 깜짝 놀란다.

“네? 제가요?? 제가 여기에 살 거라고요?!! 대체 왜요?!!!”


그때의 내가 미래의 내 모습을 슬쩍 봤다면 물음표가 백만 개는 떴으리라. 글쎄, 왜였을까. 내가 결혼하고 나서 얼마 뒤 남편과 갓난아이를 데리고 충청도로 이주해서 살게 된 것은 일 때문도, 연고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내가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이곳을 택한 건 그저 몸이 기억하고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충청남도로 내려가서 사는 건 어때? 대전이나 천안 같은 대도시 말고, 조용하고 느긋한 곳  말이야. 아무도 서울에서 여기까지 일부러 와서 살 것 같지 않은 곳으로.”

지금으로부터 8 , 남편과 지도를 들여다보며 어디로 이주할까 의논할  내가 말했다. 그해 여름 부모님이 했던  말과 놀랍도록 닮은 모습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내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던 우리 부부는 사실 평생 서울에서 살 줄만 알았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나서 차츰 우리가 도시 생활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시의 소음보다 고요함을 사랑했던 나는 어릴 때부터 틈만 나면 도시를 벗어날 궁리를 하긴 했지만, 그럴 만한 결정적인 동기와 용기가 부족했다고나 할까. 그러다가 환절기마다 아토피로 고생하는 남편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다, 갓 태어난 아기를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키우고 싶다는 바람이 생기자 드디어 서울을 떠나기로 맘먹었다. 그리고 그해 여름의 따분하리만큼 평화롭던 시골 풍경을 떠올렸다.


그때 이후로 부모님은 두 번 다시 오빠와 나를 데리고 ‘충청 내륙지방 드라이브 여행’ 따위 떠나지 않았지만, 어른이 된 나는 새로운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되돌아왔다.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도시 생활에 젖어 서울을 떠나지 못한 나의 엄마가 “더는 싫고 딱 한 달 정돈 지낼 수 있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간 그곳에서, 나는 남편과 아이와 함께 오래도록 머물기로 결심한다.

내게는 마치 프로방스의 아를 같은 그곳에서, 느리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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