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녀석들을 만났다
간밤에 온 업무 메일로 아침부터 마음이 바빠졌다.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난 뒤 어서 작업을 시작해야지 생각했는데, 문득 베란다에 걸린 빨래가 눈에 들어온다. 그래, 후딱 빨래만 걷고 일하면 되겠다 하고 베란다로 나갔더니 햇볕이 따사롭다. 새파란 하늘 위로는 흰색과 회색 구름들이 재빠르게 지나가고, 잎이 풍성한 나무들이 바람에 휘청거린다. 그러고 보니 일요일에 태풍 때문에 비가 많이 온다고 했었지… 아직은 여름날의 초록잎을 힘차게 붙들어 매고 있는 저 나무들도,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금세 빈 가지들을 드러내며 노랗게 변해갈 테다. 아, 오늘이야말로 늦여름의 산책을 즐길 절호의 기회인걸. 나는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일은 뒷전으로 한 채 밖으로 나갔다.
산책길에서 가장 먼저 마주친 것은 녹색과 붉은색 점으로 뒤덮인 뱀, 유혈목이다. 햇볕에 젖은 몸을 말리려고 슬그머니 나왔다가 나를 보자 기겁하고 풀숲으로 도망친다. 너무 빨리 도망가는 바람에 사진은 찍지 못했다. 예전엔 뱀을 보면 소리부터 질러댔는데, 이제는 담담하다. ‘너도 고생이 참 많구나.' 하고. 크기도 작으니 귀엽게 느껴질 정도다. 물론 독이 있으니 늘 조심해야 하지만.
그 다음으로는 톱사슴벌레를 만났다. 여름방학 때 아이와 사슴벌레를 찾아 밤마다 열심히도 돌아다녔는데, 웬일로 한낮에 나와 있다. 이럴 땐 학교에 가 있는 아이를 당장 불러오고 싶다. 사진으로 아무리 찍어봤자 직접 보는 것만 못하다. 아이는 바닥에 기어가는 사슴벌레만 보면 손으로 덥석 집어서 사람들에게 밟히지 말라고 나무 위로 올려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차마 만지진 못하고 ‘와, 대단한데.’ ‘와, 멋진걸’ 하며 아이 옆에서 추임새를 넣는다.
조금 더 걷다 보니 나뭇가지 위에서 쉬고 있는 개구리를 만났다. 서울에서 살 땐 개구리가 논밭에만 서식하는 줄 알았지 청개구리가 나뭇가지 위를 이리도 좋아하는 줄 몰랐다. 봄밤에는 논에서 실컷 울어 재끼다가 여름이 되면 나뭇가지 위로 슬쩍 올라가는 개구리들. 그래서 어느 틈엔가 나는 걷다가 나뭇가지를 살펴보는 일이 습관이 됐다.
얼마쯤 걷다가 보니 자주 찾는 계곡에 도달했다. 비가 많이 와서 흙탕물이 한창 불었다가 거짓말처럼 깨끗해진 계곡물에 손을 씻으며 돌 주변을 자세히 본다. 뭐라도 있을 게 분명하다.
아니나 다를까, 바위틈에서 산개구리 한 마리가 반신욕을 즐기고 있다.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어도 어찌나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지 내게 관심도 없는 듯하다.
돌아가는 길에는 괴상하게 생긴 버섯을 발견했다. 보자마자 ‘아니, 누가 버섯에 사과에 씌우는 망을 덮어놨나…’ 생각했다. 검색해 보니 ‘노란망태버섯’이란다. 어느 인터넷 뉴스에 실린 기사를 보니 우아한 노란 드레스를 입은 ‘버섯의 여왕’이라고 불린다고. 반나절만 펼쳐져 있다가 금세 쪼그라든다고 하니 운 좋게 타이밍이 잘 맞은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내 눈엔 드레스라기보다는 과일망 같은데.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충청도 시골로 내려오고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날씨가 좋은 날엔 아무 때고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에 다닐 땐 점심때만 간신히 햇볕을 쬘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적어도 비타민D가 부족한 일은 없다. 처음 몇 년간은 해야 할 일을 제쳐두고 걷는다는 게 익숙지 않아서 스스로를 게으름뱅이라 자책하기도 했다. 다들 업무에 열중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을 시각에 이 얼마나 한량 같은 짓인가? 그러나 언젠가부터 책상 앞에서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있어도 나올 수 없었던 많은 아이디어가 걸으면서 느닷없이 툭툭 튀어나온다는 것을 알게 됐다.
걷기를 통해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정리했던 소로나 키르케고르 정도는 아니더라도, 자연 속을 걸으며 웬만한 고민거리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걸 느낄 때면 나는 아무래도 걷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역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건 ‘오늘은 생물이랑 마주칠까?’ 하는 기대감. 계절마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온갖 생물들과의 만남이 나를 더욱더 걷게 만든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지내며 나는 비로소 이 세상은 인간들의 것만이 아님을 알게 됐다. 탐조의 즐거움이 생겨버려 때때로 새덕후님에게 DM을 보내 귀찮게 만들게 됐다.
자, 그럼 이제 일을 시작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