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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씨 Sep 05. 2022

충청도에선 ‘저기’ 한 걸로 다 통한다

브런치에 쓰기는 참 저기하지만…

“엄마가 ‘저기’하지 말라고 했는데
네가 자꾸 ‘저기’하니까
엄마가 ‘저기’한 거 아니여~!”


동네 마트에서 마주친 아주머니는 핸드폰을 귀에 대고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아마도 자식이 뭔가 아주머니의 말을 듣지 않아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던 듯하다. 그런데 대체 ‘저기’한 게 뭘까?

대전 교보문고의 '저기한' 매장 디스플레이


충청 스파이들의 특급 암호 ‘저기하다’

충청도로 이사 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땐 여기저기서 갑툭튀하는 ‘저기하다’는 말에 귀가 쫑긋거렸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데다 경상도 출신 부모님의 직설적인 의사표현방식에 익숙했던 나는 ‘저기하다’의 속뜻을 해석하지 못해 답답해했다. 이웃이 하는 말도 한 템포 느리게 해석하는데, 하물며 지나가며 스치는 대화 속에서 이 ‘저기’가 등장하면 간파하기가 더욱더 어렵다. 이것은 마치 스파이들의 암호 같기도 하고, 앞뒤 맥락 없이 들으면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 같기도 하다.


‘저기하다’는 충청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사투리 중 하나다. 뭔가 할 말이 빨리 생각나지 않을 때, 하고 싶은 말은 있지만 에둘러 표현하고 싶을 때 특히 자주 사용된다. 이 지역 출신 지인은 이에 대해 재미난 에피소드를 들려준 적이 있는데, 여고생 시절 친구들과 하굣길에 얘기를 하며 걷다가 불현듯 다 같이 빵 터진 적이 있단다. 누군가 ‘저기하다’라는 말을 계속 쓰고 있었는데도 모두가 당연하게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들었기 때문이라고.


‘저기하다’를 알아듣는다면 당신은 이미 충청인

‘저기하다’는 말의 구체적인 예를 좀 더 들어보겠다. 평소 상대방에게 직언을 잘하지 못하는 충청도 사람들은 뭔가 맘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그니께 사람이 저기하면 못 써”라고 혀를 끌끌 차곤 한다. 또 수도권이나 대도시에 비해 급한 일이 별로 없고 느긋하게 살아가기에 해야 할 말이 잘 생각이 나지 않을 땐 “그, 뭐, 저..기 있잖여, 그…”라며 말끝을 흐리고 마는 일도 다반사다. 이때 상대방이 그것을 캐치하고 ‘아, 그거?’라고 대꾸하면 충청도민 인증이다. 그러나 이때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대체 뭔 말을 하고 싶은데요? 왜 그러는 거요?”라고 물으면 타지역 사람일 확률이 높다.


아니, 그…왜 그랬대?

‘저기하다’라며 핵심을 피하는 충청도식 어법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니 한 가지 또 생각나는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이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 놓지 않았다고 가정해보자. 그랬을 때 충청도에서는 “아무개야, 이건 여기다 갖다 놔야지.”라고 정확히 지적하는 대신, 상대방을 쳐다보지 않은 채(약간 먼 산을 바라보듯이) “아니 이걸 왜 여기다 갖다 놨대?”라고 한다. 그런데 재밌는 건 타지역 사람들에겐 이것이 지적이 아닌 순수한 질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걸 질문이라고 여겼을 경우 “아하! 제가 이걸 왜 여기다 갖다 놨냐면요, 이러쿵저러쿵…”하며 답변을 늘어놓기 일쑤인데, 그랬다가는 ‘저 사람 참 눈치 없다’고 평가받기 쉽다.


요즘 유행어 중에 ‘알잘딱깔센’이라는 게 있다.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라는 말인데, 맺고 끊는 것 없이 어영부영 잘 넘어가는 충청도 사람들에겐 어울리지 않는 말 같지만, 실은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알잘딱깔센’들이다. 잔잔한 호숫가에 우아하게 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무한 발길질로 맹렬하게 헤엄치고 있는 백조 같다고나 할까. 이것이 충청도 사람들이 느리고 답답하다고만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렇지만 ‘알잘딱깔센’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나는 오늘도 충청도에서 눈치 없이 편하게 살아간다. 눈치 없이 살아도 눈치 없다는 비난을 면전에서 대놓고 들을 일은 없는 데다, 눈치 없다는 뉘앙스를 은근히 준다 한들 나는 눈치채지 못할 것이기에. 그것이 이곳에서 사는 묘한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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