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평소처럼, 온 힘을 다해 고요하게
충청도로 내려와서 살게 된 후 추석이나 설 명절에 양가를 방문하지 않은 지도 어느덧 몇 해가 흘렀다. 처음 몇 번은 부모님들께 양해의 말씀을 드려야 했다.
-저희는 북적이는 때는 이동하고 싶지 않아요, 차도 없고요, 아이가 힘들어하기도 하고요. 대신 평소에 시간 내서 언제든 찾아갈게요
명절마다 차례며 성묘며 꼬박꼬박 챙기는 집안의 장남인 남편으로서는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그렇지만 여
기까지 내려와서 살기로 한 것부터가 이제부턴 우리가 진정 원하는 인생을 만들어 나가기 위함이었기에, 명절을 챙기지 않기로 한 것도 그 자연스러운 과정 중 하나였다.
부모님들은 당연히 서운해했다. 다만 자식들이 그렇게 하겠다니 어쩔 수 없이 노릇일 뿐.
우리는 애써 담담하게 모른체한다.
동갑내기인 우리 부부는 명절을 비슷한 냄새와 소음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집안 가득 퍼졌던 지글지글 전 부치는 기름 냄새, 차례상에 피워지던 향 냄새, 말린 생선찜 냄새(왜 굳이 생선을 말렸다가 다시 찌는 건지 알 수 없던 그때), 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 서 있던 차 냄새, 교통방송 라디오에서 나오던 정체 구간 안내, 휴게소의 트로트 음악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때 라디오에서 김범룡의 <바람, 바람, 바람>이 나왔어. 지금도 그 노래를 생각하니까 차 안의 답답한 공기랑 기름 냄새까지 한꺼번에 떠올라서 멀미가 난다니까.
-그래? 우리 집은 아바나 카펜터즈, 비틀즈, 뭐 그런 올드팝들투성이었지. 6~7시간 반복해서 들으니 영어를 못해도 외울 정도였다니깐.
-그땐 고속도로에서 차가 한참이나 멈춘 바람에 답답해서 내려서 걷다가, 차들이 출발하기 시작하면 막 뛰어서 올라탔잖아. 그때 길 한가운데 상인들이 서서 오징어도 팔고, 뻥튀기도 팔고 그랬지.
-맞아, 우리 오빠는 장이 안 좋아서 길에서 도중에 몇 번이나 멈췄는지 모르겠다. 아, 휴게소 자율식당 알아? 이것저것 반찬들 가져다가 접시당 계산해서 먹는 거. 우리는 4인 가족이니까 종류별로 사다 나눠먹었는데, 엄청 붐비고 시끄럽고 정신은 몽롱하고…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허겁지겁 먹었네.
-털보아저씨 냉동만두도 기억나? 맛은 정말 없었지만 그나마 먹을만한 게 그거라서 먹었어. 그러다가 꼬불꼬불 대관령을 오르다가 대관령 꼭대기에 있는 휴게소에 도착하면, 차에서 튀어 나가자마자 바로 화장실에 가서 다 토해내는 거야. 왜, 그 엄청나게 커다란 파란색 쓰레기통 있잖아, 거기에다가….
-맞아, 그랬지, 그랬어, 진짜 고생 많았네, 우리.
남편과 나는 마주 보며 씁쓸하게 웃는다.
추석날 아침, 어느 집에선가 소고기무국 끓이는 냄새가 퍼져나온다. 내가 "맛있겠다!" 하며 군침을 흘리자 남편이 말한다.
"저 냄새, 나는 이제 싫어. 명절마다 우리 할머니가 손주 좋아한다고, 우리 엄마가 아들 좋아한다고 엄청 많이 퍼주시던 소고기국. 이제는 싫어. 내가 너무나 좋아하던 냄새였기 때문에..."
남편이 도중에 말끝을 흐린다.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에 이젠 싫다는 그 말. 나도 알 것 같다.
우리는 평소와 같은 메뉴로 아침을 먹고 아이와 함께 길을 걷는다. 오늘따라 유난히 고요한 길을 천천히 걸어가며 잠자리도 쫓다가, 사마귀도 잡다가, 줄장지뱀도 잡는다. 쪼그려 앉아 동네 강아지랑 인사도 했다가, 누군가 풀밭에 놓고 간 비행기도 날려본다. 태풍에 쓰러진 나무를 본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보니 아직도 개울 물이 불어서 징검다리가 끊겨 있다. 다시 왔던 길을 멀리 멀리 돌아서 간다.
"엄마 아빠, 우리 집에 언제 도착해?"
"응, 언젠간 도착할 거야. 우리 오늘 컨셉은 헤매기거든! 어때?"
"어;;; 재밌어. 개울은 못 건너게 됐고, 편의점도 문을 닫아서 생수도 못 사 먹고. 다시하라고 하면 못 할 거 같은데, 재밌어!"
멀리 멀리 돌아서 걸으며 가을 햇볕에 얼굴이 까맣게 그을려도, 우리 셋은 찡그린 표정 하나 없이 활짝 웃는다. 그러다 하늘이 온갖 환상적인 색으로 물들어가면, 우리는 돈 한푼도 내지 않고 고개를 들어 특급 쇼를 감상한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길 위에서 우리와 함께한다.
이렇게 또 한 번의 평온한 명절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