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복귀_45회(최종)
휴가 복귀하는 날
1989. 2. 9. 목
휴가 복귀하는 날
이제 몇 시간 후면 복귀한다. 이곳은 시나브로 측면은 스피커가 있고 전면은 광부의 판화상이 있다. 굴곡 있는 근육질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좋다. 음악은 내용도 알 수 없는 단어들로 배열되고 있다.
조용한 오후임을 분위기로 알 수 있다.
군데군데에는 손님들이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얘기 나누고 있다. 거의 매일 만나 나누는 얘기지만 만날 때마다 계속 얘기할 수 있는 소재가 있음이 신기하다.
바깥은 잿빛하늘로서 가끔씩 가는 비를 날리고 있다. 메뉴판의 활자들은 서로 자기의 얼굴을 뽐내며 자기를 불러주기를 원하고 있는 것 같다.
흑백의 음영만으로 표출하는 판화상은 화려한 칼라그림보다 많은 얘기를 숨기고 있어 좋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광부의 얼굴이라 더욱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무식한 것도 죄란 말인가? 누구는 높은 자리 많은 재화 모으고 싶지 않으랴! 우린 헬멧에서 빛나는 전등의 슬픔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 전구는 카페에서 반짝이는 화려한 네온사인과는 동류의 것이 아닌 것이다.
삶이 무엇인가
곧 전역을 하게 될 것이다. 4개월의 시간은 긴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광부의 판화상을 찬찬히 뚤어보며 담배 연기를 날려 보낸다.
권금성 소회
혼탁한 머리를 비우고 싶다. 설악 글자 그대로 눈 덮인 바위산이다. 목탁소리가 은은하게 바위 속을 파고든다. 무슨 원한이 무슨 애환이 그리 많은지 염불의 소리가 뼈를 후벼 파는 아픔을 준다.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 풍성하고 장엄한 자연 앞에 서면 나의 모습은 발가벗은 썩은 고기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 움츠려든다. 혼탁한 머리, 온갖 잡사로 가득한 머리를 비우고 순백의 눈과 같은 고결하고 순수한 머리, 진정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머리로 전환시켜야겠다.
오늘 저녁부터 면 또 일정한 틀속에 박히게 된다. 일정한 규율 속에서 가만히 있다가는 시간은 가버리고 영원히 다시 오지 않는다.
이 아름다운 자연도 처음 생성 될 때는 아마 힘겨운 산모의 고통을 겪었으리라 생각된다. 흰 눈 속에 듬성듬성 나있는 소나무, 독야청청하면서 살아온 세월을 보여주고 있다. 온갖 시련에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세상을 지켜온 표상이 아닐까
이젠 소나무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아마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소중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마음을 열지 않는 것이 아닐까?
또한, 높은 산속의 산새들의 울음소리도 잊을 수 없다. 산새의 울음소리 산새는 자신을 과시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확한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산새는 사람들이 자기를 봐주기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남이 봐주던지 관계치 않고 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식 없이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좋다.
눈에 미끄려져 웃는 웃음소리, 자연 그대로의 웃음소리인 것이다. 누구나 산속에 오면 자신의 실체를 조금은 더 가까이서 보는 것 같다. 싸늘한 공기가 귓가를 매만지고 있다. 싸늘한 감촉이 좋다. 겨울의 특성은 이처럼 극단적인 것이 아닐까 치우침이 있는 삶 이것은 다음의 준비 단계인 것이다. 추움이 있으면 곧 더움을 준비하니까 말이다.
목탁소리가 영원히 울려 퍼지듯 새해에는 바라는 이들의 소원이 모두 이루어지길 기대하자. 그래 새해에는 획기적 전환이 있길 기대하자. 설악동에서 휴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