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_44회
새벽이 오는 소리
1989. 1. 30. 월
쓰고 싶다. 텅 빈 머리에서 한약을 짜내듯 무엇이든 끄집어내고 싶다. 그리고 전하고 싶다. 비록 그것이 공허한 메아리로 그칠지라도.
상황실 문을 열고 미꾸라지가 빠지듯 몸을 밖으로 빼내면 찬 공기가 찬물을 끼얹듯 온몸을 감싼다. 이 찬 공기가 좋다. 해서 이제 간혈적으로 찬 공기를 쐬는 버릇이 생겼다. 찬공기와 바로 눈앞의 바다. 그리고 그 바다를 지키는 반월이 좋다. 이 순간이 영원히 그대로 정지되었으면 좋겠다.
불규칙하게 들려오는 파도소리가 좋다. 애잔한 이야기를 그 속에 간직한 것 같아 한편으로 슬픈 생각이 든다. 이젠 벗어나고 싶다. 나를 감싸고 있는 온갖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혼자라도 좋으니 멀리로 벗어나고 싶다. 비록 그 세계가 혼돈의 세계일지라도.
세상모르고 잠자는 전우의 숨소리가 좋다. 이 숨소리가 아마 평화의 속삭임이 아닐까 천사들의 노랫소리도 아마 이처럼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이다.
또 하루가 흘렸다. 새벽이 오는 소리는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좋다. 가만히 귀 기울여 마음이 착한 이에게 만 들릴 수 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