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세상을 보는 창이라고 하는데 그 세상에는 ‘농업, 농촌’이 잘 보이지 않는다.
농업은 온 국민이 삼시세끼 먹는 먹을거리와 직결되는 중요성을 지녔지만, 경쟁력 없는 열악한 산업의 하나로 취급받는다. 농촌은 사실 농민들이 스스로 ‘등외국민’으로 느낄 만큼 ‘게토화’되어 있다. ‘인구 경쟁력’이 없는 지방 소멸지역으로 낙인찍혀 어쩌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그런 공간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미 언론 지면의 공론장에서조차 오래전에 사라진 농업, 농촌은 우리의 생각에서도 지워지고 있다.
도시의 ‘습’과 ‘제도’는 미디어를 타고 강력한 자장으로 농업, 농촌을 대상화시키고 무력화시킨다. 우리들의 문제가 아니라 ‘너희들’의 문제로 내몰려 ‘연민’과 ‘효율’의 양극단에서 해결책을 잃게 만든다.
농업의 가장 근간인 면 단위 농촌이 붕괴되고 있음을 현장에서 처절하게 느낀다. 매달 느끼는 인구 감소와 매년 달라지는 학령인구 감소는 그것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면 단위 농협은 갈수록 통폐합되기 시작한 지 오래이며 계속 그 압박을 받고 있다. 파출소가 통합되고 우체국이 사라지며, 목욕탕이 없어진다. 그나마 1면 1교를 유지하던 학교의 폐교까지 이어질 것이다.
이대로라면 면 단위 주거는 점차 사라지고 읍에서 출퇴근하는 농민들이 늘어날 것이다. 일과 삶이 중첩됐던 삶의 기반이 사라지면 공동체성은 희박해지고, 개별화된 농민의 목소리는 더 지리멸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미 현재 진행형이다. 아이들은 읍에서 학교를 보내고 부모들은 면에서 일하는 농촌형 기러기 부모들이 벌써 상당수 된다. 아예 인근 도시로 유학을 보내기도 해서 학령인구는 급격하게 줄고 있다. 더구나 폐교 대상 학교로 리스트에 오르면 재정지원이 중단된다. 거의 모든 학교에 있는 강당을 욕심내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미세먼지가 아무리 몰아쳐도 실내에서 체육 할 수 있는 공간을 박탈당하는 것이다. 어차피 폐교될 학교니까 효율성을 빙자로 더 이상 설치하지 않는다. 옥천의 한 중학교가 그렇다.?그런 경제논리를 내면화하는 것은 쉽다. 몇 명 안 되는 학교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할 수 없다는 것.
옥천이 속한 충북도 교육감은 농촌 작은 학교 문제는 도교육청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의제가 아니라고 하고, 옥천군수도 충북지사도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개별적으로 농촌의 작은 학교가 회생한 이야기는 간간이 보도되지만, 그것의 구조적 문제를 입체적으로 다룬 기사를 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정부 정책으로 농촌의 근간인 면 단위를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싶다.
마을 단위, 권역 단위가 아닌 예전에 5일장이 섰던 경제적 자급 공간이자, 5·16 쿠데타 이전에 면장을 직접 선출했던 정치적 자립공간으로서 면 단위 농촌공동체의 복원이 정부 국정과제의 하나가 되길 희망한다. 이미 시장이 퇴각한 그 자리에 작은 공공성으로 어떻게 공동체가 살아날 수 있는지 중요한 실험대가 될 것이다.
누차 이 지면에서 말했듯이 키가 작다고 눈코입이 없는 것이 아니다. 농촌에 산다고 필요와 욕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농촌에 어린이집, 도서관, 영화관, 문화센터, 목욕탕, 의료시설 등 최소한의 삶을 지탱하는 데 필요한 기본 시설들이 설치되고 운영되길 희망한다.
농촌을 안다면, 농민을 참여시키려 한다면 현재 연말에 끝나는 ‘양력형’ 예산구조가 아닌 ‘음력형’ 예산구조가 바람직하다. 농촌의 농한기인 겨울에 농민들을 위한 프로그램 등이 많이 개설되어야 참여가 많아질 텐데 현 실정은 그러하지 못하다. 교육 프로그램과 주민참여위원회 등이 예산 소진을 위해 한창 바쁜 농번기에 열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언론에 제언한다. ‘농업농촌면’을 신설했으면 좋겠다. 일단 매일 지면을 내는 것이 힘들면 매주 한 번이라도 농업면을 꼭 신설했으면 좋겠다. 농업, 농촌이 소외되어 있다고 말로만 떠들면서 우리 일상 공론의 장으로 들여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희롱하고 농락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