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을 조금 다르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1.아! 그 곳 하면 우리는 보통 유명한 관광지나 출생 인물을 이야기 하곤 합니다. 관련 검색어를 돌려보면서 그 지역을 이미지화하는 작업을 거치죠. '옥천 뭐 볼 거 있나?' 라고 하는데 국보급 문화재도 없고, 솔직히 말하면 여러날 묵으면서 볼 수 있는 관광지도 많지 않습니다. 역설적으로 그런 관광지가 없어서 좋습니다. 커다란 산업단지가 없어서 좋습니다. 가끔 들렸다 가는 사람들한테 회자되는 도시가 아니라 '사는 사람들의 고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와서 소비하고 가는 도시가 아니라 뿌리 내리고 살아서 좋은 마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많은 지자체장들이 출렁다리를 놓고 집라인을 설치하며 여기저기 복제품을 양산하며 '여기로 오라'고 하는 손짓을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줄테니까 와' 이런 삐끼같은 정책사업은 안 했으면 합니다. 사통팔달이라면서 차도 안 다니는 도로를 뻥뻥 뚫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면서 그냥 그대로 있어 좋은 자연을 훼손하고 거대한 산업단지를 만들었지만, 결국 도시에서 출퇴근하는 그런 사업들에 '피땀눈물' 같은 세금을 그만 낭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그 막대한 예산을 아직 오지도 않을,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사람들한테, 엄한 토건 개발에 투자하는 것보다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더랬지요. 세력화를 해서 집권을 하자는 큰 플랜도 중요하지만, 그런 운동들이 결국 사람을 키우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 아닌 의심도 해봤지요. 주인 된 주민으로서 삶을 일궈나갈 수는 없는 것인가? 모든 운동이 그렇게 제도권 정치로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가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누군가는 변방에서 이런 의문 하나 갖고 옹송그리고 있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지요. 제가 18년 동안 보고 느낀 옥천은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이 특별하지 않은 방식으로 스스로의 삶을 일궈왔습니다. 확 눈에 띄고 툭 볼개져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잔잔'하게 있는 듯 없는 듯 수면 아래에서 바지런히 첨벙대었던 것 같습니다. 옥천은 어떻게 보면 비운의 고을입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대여서 맨날 자잘한 싸움부터 큰 싸움에 사람들이 동원되었으니 얼마나 불안했을까요? 고려시대에는 망이망소이의 봉기 때 같이 봉기했으며,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는 중봉 조헌선생, 영규대사와 함께 수천여명의 의승병이 함께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했지요. 또 동학농민혁명 당시 청산면 한곡리에 은거했던 최시형 선생이 기포령을 내린 곳이기도 했습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모여 살았지만, '의'로 분연히 일어섰던 곳이기도 하지요. 한 지역에는 수많은 역사가 차고 넘치게 흐르지만, 어떤 것을 선택하여 되새길 것인가에 따라 그 지역이 지니는 의미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옥천은 정지용 시인과 육영수 여사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 둘이 옥천을 대표한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옥천의 주인은 과거에도 현재, 미래에도 터잡고 살고 있는 보통의 옥천 사람들입니다.
#2.옥천은 개발과 성장의 희생량이 되기도 했습니다. 경부고속도로가 옥천땅을 즈려밟고 지나갔으며 대전 등 충청권 도시의 성장을 위해 공업용수와 생활용수가 필요하다보니 금강 물줄기를 막아 커다란 호수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금강 상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옥천 땅의 상당부분이 수몰되어 뜻하지 않게 고향을 잃은 실향민이 발생했습니다.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고 힘없는 농촌은 내어주기만 했습니다. 땅도 내어주고, 물도 내어주고, 사람도 내어주었습니다. 80%이상이 대청호 상수원으로 인해 개발규제로 묶여 있으며 지금도 금강유역환경청은 옥천땅을 야금야금 사들이고 있습니다. 환경을 보전한다는 명목으로 지역 공동화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지요.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물을 보전하기 위해 농촌 지역 사람들을 '오염원'으로 보는 저열한 시각들이 이런 곳에 담겨 있죠. 인근 거점도시의 경실련과 환경운동연합이 옥천에 지부 성격으로 시민사회단체를 만들려고 했지만, 옥천 사람들은 지부를 받아들이지 않았죠. 주민들의 권익, 환경보호 양 극단에서 어느 도시 시민단체의 하부조직으로 남기보다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대청호 주민연대라는 것도 새로이 만들었습니다. 주민들의 권익과 환경보호가 서로 상충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3.87년 6월 항쟁 이후, 88년에는 한겨례신문이 국민주로 창간을 했고 89년에는 옥천신문이 군민주로 창간을 했습니다. 95년 지방자치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주민이 주인인,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신문이 88년부터 전국에 들불처럼 창간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우리나라 풀뿌리 민주주의의 귀중한 역사일 것입니다. 사람들의 자치의 아우성이 제도보다 훨씬 앞서서 진행이 되었으니까요? 그렇게 항쟁은 전국 방방골골 자치의 물결로 변이되어 넘실되었습니다. 자치의 토양이 열악한 이 나라에서 자치제를 실시하는 것은 권력과 금력을 어찌보면 도매금으로 지역 토호들에 넘기는 것과 다름 없었지요. 그런데 주민들이 만든 지역 신문이 있는 곳에는 결코 함부로 할 수 없는 큰 제동장치가 생긴 셈이지요. 건강한 지역신문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초석이자, 마지막 보루라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권력을 일상적으로 감시, 견제, 비판하며 생활민주주의를 구현했고,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지역사회를 만들었습니다.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서울과 거점 도시에 예속되지 않고 비교적 지역 현안과 관련 생산적인 논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말이 물처럼 모아지는 '말의 우물'이 그렇게 만들어졌고, 언제든 쓰여진 글들을 양식처럼 꺼내먹을 수 있는 '글의 곳간'이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배고프면 글밥을 먹고, 목이 마르면 말물로 목을 축였습니다. 주민들의 의미있는 움직임들은 빠짐없이 기록하려고 했고 그 기록으로 인해 지역사회 변화가 촉발되기도 했습니다. 지역사회의 근육을 키워내고 성장하는 데 미약하나마 일조하려고 했지요. 지역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마음으로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고 이를 보는 주민들이 있기에 신문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말과 글은 돈과 힘에 의해 왜곡되어지면 안 됩니다. 돈없고 힘없는 사람들의 마지막으로 남은 무기인데 이를 지키는 것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4역사사를 풀어보면 누군가 그러던군요. 사람인에 입구자가 걸쳐 있다고. 해석하자면 사람이 입으로 하는 것을 스스로 제어하는 것이 진정한 역사라고 생각하는데. 입은 말하고 먹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죠. 말하는 것은 바로 사회화를 의미하는 것이고 또 다른 의미의 정치입니다. 먹는 것은 경제입니다. 사람은 말하고 먹어야 살지요. 어떤 말을 하고 어떤 것을 먹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를 스스로 제어하고 일궈나갈 수 있느냐도 매우 중요한 덕목이지요. 1990년 옥천군 농민회가 만들어졌는데 이는 앞으로 펼쳐진 옥천의 자급운동의 역사상 매우 중요한 거점 진지 역할을 합니다. 각기의 운동성을 가진 농민회원들이 각 분야에서 자발적으로 공동체성을 일구고, 먹을거리의 공공성을 지키는 데 함께 하기 시작한 것이죠. 서울에 올라가서 아스팔트 농사와 투쟁을 하는 것 외에 지역 싸움도 같이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죠. 지역에서 어쩌면 더 치열하게 싸웠는지도 모릅니다. 쌀수입반대 투쟁부터 FTA반대 투쟁도 하면서 지역의 자급운동, 자치 운동에 대해 심각하고 고민하고 실천적인 운동을 하나씩 해나갔지요. 대표적안 것이 옥천군 농업발전위원회입니다. 이는 사실상 지금 정부에서 하려고 하는 농업회의소보다 훨씬 진화된 형태로 실질적인 결과물들을 내어놓고 있었지요. 농민들을 농업정책예산을 설립하는 테이블 위에 과반이상 참여시켜 달라는 것이 이들의 요구였고, 이는 5년 여의 투쟁끝에 결국 받아들여졌고 조례로 만들어졌습니다. 농민들은 출무수당을 모아 공부했고 견학도 갔습니다. 회의가 열리기 전에 미리 모여 의제를 관철시켰으며 하나둘 지역 자급농정을 실현해 나갔습니다. 그런 토대 위에 학교급식 조례도 시민사회의 힘으로 만들어졌고 옥천살림 협동조합이라는 조직도 그 맥락 속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농촌은 단지 농산물을 생산하는 기지가 아니다. 도시에 농산물을 공급하는 곳이 농촌이 아니다. 스스로 삶의 먹을거리를 일구는 것부터 시작한다. 우리 아이들부터 지역 친환경농산물 먹을거리를 먹이자. 그리고 공공급식으로 가자. 옥천푸드로 향하는 여정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옥천로컬푸드직매장이 만들어지고 로컬카페가 만들어졌으며 수많은 생산자 조직과 가공센터, 유통센터가 만들어졌습니다.
#5.혹자는 여전히 권력을 쟁취하여 집권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려면 나라를 바꾸려면 그래야 한다고.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것 만이 능사라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한 사람의 열걸음이 큰 족적을 남기고 사회를 진일보 시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열사람의 한걸음이 더 가치가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시민운동의 역사 속에서 왜 정치를 바꾸지 못했느냐고 물으면 별로 할 말은 없습니다만, 모든 것이 그렇든 정확하게 넣은 인풋만큼 아웃풋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서서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짧고 굵게 가는 방법이 아니라 가늘고 길게 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들은 4년마다, 5년마다 바뀌거나 생명 연장을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뼈를 묻고 산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것처럼 누가 군수가 되든, 군의원이 되든 우리는 우리 식대로 길을 갈 것이다는 그런 기류들이 딱 무엇이다 말하기 힘들지만, 있는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정치와 지역사회의 힘이 물론 따로 놀 수는 없고 좋은 정치인이 만들어지고 선출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주민이 만드는 지역사회의 주도권은 놓치고 가면 안 된다. 모든 것이 제도권 정치로 수렴되면 우리는 결국 신민화 식민화 될 것이다. 시민사회의 진영이 있다면 거점과 진지가 있다면 누군가는 가장 약한 주민으로서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어줘야 한다고. 많은 지자체의 운동사례를 봅니다. 어떤 지자체는 지자체장이 바뀌고 공무원이 바뀌면서 그동안 해놓았던 것들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사례도 많이 봐왔습니다. 빨리 간다고 빨리 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지요. 천천히 다지면서 가는 길도 좋은 길일 수 있습니다. 조급증을 버리고 천천히 가다보면 길이 생기고 같이 가는 사람도 늘어나겠지요.
#6.귀농 귀촌을 하는데 여러가지를 고민하고 쟤 보지요. 풍경이 좋은가 교통이 편리한가 사람들은 어떠한가 문화편의시설은 어떤가. 삶을 전환하는 이주인데 어찌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새로운 삶과 조우하는 것인데요. 아름다운 풍광도, 좋은 땅도, 저렴한 집도 건강한 지역사회와 접속을 하지 못하면 다 무용지물이 될 수 있습니다. 멀리 보면 아름다워보이지만, 가까이서 접한 것은 일상이 지옥일 수도 있지요. 공동체를 느끼러 어울렁 더울렁 살러 왔는데 자연경관과 함께 평안하게 살려고 왔는데 지역 주민간의 갈등으로 정말 가까운 이웃인데도 법원의 내용증명으로 대화하는 것을 숱하게 봐왔습니다. 악다구니로 쌈박질을 하다보면 사는 곳이 지옥 같을 것입니다. 이끼같은 마을들도 여럿 있지요. 온갖 부조리와 부패는 작다고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작은 마을의 부패와 부조리, 독재가 사람의 일상을 숨막히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라는 멀리 있지만, 마을은 바로 생활입니다. 그래서 지역의 공공성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나마 옥천은 뛰어난 사람도 없고 유명한 관광지도 없고 별로 볼 만한게 없지만서도 보이지 않게 흐르는 어떤 숨결과 무늬정도는 있다. 사람들이 얼키설키 이어져 만들고 그려낸 그런 무늬말입니다.
#7.인구의 숫자에 매몰되지 않으려 합니다. 숫자가 아니라 삶을 보려 합니다. 절대적인 숫자보다 읍면별 균형을, 세대별 균형을 생각합니다. 옥천 인구 5만명 이하로 떨어져도 나쁘지 않습니다. 있는 사람들끼리 행복하게 살면 언제든 찾아들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읍면별 균형과 세대별 균형은 사회적 큰 문제니까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겠지요. 물만 보지 말고 사람의 삶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환경에만 매몰되면 사람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상하류간의 갈등도 다 거기서 비롯됩니다. 도시 사람들은 상류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괜히 걸립니다. 자기가 먹는 물 오염시키지 않을까. 그런 것들은 대부분 도시 언론들이 조장을 합니다. 갈등을 부추기고 대립을 시키게 하죠. 상하류가 공존하는 그런 지역을 꿈꿉니다. 그리고 궁극에는 각자의 도시들이 사람없다고 인근 농촌을 희생시켜가며 물과 에너지, 먹을거리를 싼값에 공급받으려 하지 말고 스스로의 자급과 자치에 대해 고민하는 길로 전환되었으면 합니다.
귀농귀촌한다고 돈을 주는 것보다 살 수 있는 인프라와 일자리를 만드는 게 급선무일 것입니다. 물을 나눠주는 것보다 샘을 파는 것처럼 말이에요. 사람이 작다고 눈코입이 없는 것은 아닌 것처럼 농촌의 가장 기초생활단위인 면 지역에 기본 인프라가 구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도서관, 목욕탕, 약국, 공공어린이집 등 자본이 철수하고 시장이 망가진 것에 공공인프라마저 구축이 안 되어 내핍상태인지 오래되었습니다. 또, 모두가 농촌인 사회는 어려울까요? 귀농 귀촌이라는 말이 없어졌으면 합니다. 스스로 먹는 것은 스스로의 도시에서 해결하고, 전기나 물도 각자의 도시에서 해결하는 방향으로 말이지요. 각 도시별 자치와 자급 지수를 평가하는 기준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저리 주저리 말이 길었습니다만, 옥천에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산다는 것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옥천과 접속을 하면 좋겠다 하는 마음에 이런 말씀 드립니다. 여러가지 사례들은 지금도 진행형이고 차고 넘치지만, 어떤 맥락과 흐름 속에서 교차하면서 지역사회의 거미줄망을 하나둘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활정치, 일상의 민주화, 삶의 경제를 읆조려 봅니다. 자치와 자급의 지역사회, 협동과 연대의 지역사회, 순환과 공생의 지역사회를 그렇게 함께 만들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