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단 Jul 09. 2024

라디오를 켜봐요

여든이 훌쩍 넘어 아흔에 가까운 김학분 어머님은 꼭 두유와 레몬사탕 그리고 알밤을 투명 비닐봉지에 둘둘 싸서 꼭 나에게 건넨다. 일흔 넘은 윤창숙 어머님은 한번 결석을 안 하신다. 그리고 단정한 옷차림에 늘 정갈한 자세로 진지하게 임한다. 역시 일흔 넘은 조갑만 어르신은 청성면 조천리에서 부러 나오신다. 월요일 오후 1시20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40분 남짓 정도 옥천노인복지관 1층 100호실에 허원혜 피디가 먼저 자리하여 준비를 한다. 윤창숙 어머니는 한번도 빠지지 않고 일요일에 꼭 원고를 카톡으로 보내주신다. 김학분 어머님은 빼어난 글씨체로 매일 일기를 쓴 것을 가져온다. 주로 학창시절 이야기와 먼저 가신 남편을 사모하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약간 기억력이 어두워지셔서 쓰고 낭독한 것을 다시 가져오기도 하시지만, 글씨만큼은 꼿꼿하고 수려하다. 김갑만 어르신은 최근 3-4개월 나오지 않으셨다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나한테 약간 서운한 게 있었다고 고백성사를 하셨지만, 다시 나온 것만도 어디인가. 괘념찮고 오히려 반갑다. 그렇게 옥천FM공동체라디오 은빛수다방 코너를 매주 월요일에 녹음을 한다. 사실 많이 있을 때는 10명 가까이 있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글에 대한 부담으로 말하는 것에 대한 불안으로 여러명이 자연스레 떨어져 나갔고 두어명 남았을 때 그만하면 어떻겠냐는 의사를 내비쳤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완강했다. 매주 이 날만 기다린다고. 계속하면 좋겠다고 강한 의사를 표현해 그냥 하기로 했다. 일정이 가끔 겹쳐 빠질 때도 있지만, 되도록 지키려는 편이다. 내가 인트로를 맡고 각자 한 주간의 써 온 원고를 각자의 목소리로 낭송하는 시간으로 메운다. 준비된 대본 같은 것은 없다. 나도 즉석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각자 마이크 순서가 정해지면 순서대로 이야기 하는 방식이다. 나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어른신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낭송하며 서로간의 원고를 갖고 맛깔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이 코너의 포인트다. 칭찬하고 공감하면서 어르신들에게 한 주간의 살아갈 힘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나에겐 너무나 훌륭한 고정 게스트이다. 나도 덩달아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2시까지 각자의 신청곡을 말하고 끝나면 흩어진다. 나는 김학분 어머니의 사는 곳 하늘빛아파트까지 태워다 주는 것이 나의 임무이다. 윤창숙 어머니는 이대에서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하고 박사과정을 밟고 교수생활까지 한 박학다식의 선생님이다. 늘 그가 들려주는 미술사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고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조갑만 어르신은 완주군 운주면이 고향으로 어찌하다보니 옥천과 인연을 맺어 조용히 시골에서 사시는 분이다. 늘 겸손하면서도 할말을 하는 어르신이다. 김학분 어머니의 아들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 멤버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남편에 대한 사부곡과 학창시절에 대한 자부심은 김학분 어머니의 이야기 자산이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매일 일기를 쓰는 노력들은 귀감이 된다. 헤드폰을 끼고 마이크로 이야기를 하면 존중받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짧디 짧은 시간이지만, 그 여운은 제법 길다. 다들 같이 만들어가는 시간이다.


작가의 이전글 진로를 넘어서 이야기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