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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Dec 05. 2023

무섬마을, 무섬다리를 아세요?

외나무다리 무섬다리를 건넜어요.

마지막 볼거리로 우리가 가는 곳은 무섬마을, 무섬다리.

무섬은 무얼까?


소백산 숙소에서 간단한 조식을 마치고 영주 시내를 지나 한갓진 곳으로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완만하게 구부러진 예쁜 도로를 달릴 때 봄에 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무섬이라는 독특한 이름 때문에 어리둥절한 채로 자동차가 가는 대로 평화로운 시골 풍경에 사로잡혀 드는 생각은 이런 곳에서 살면 무념무상으로 지낼 수 있을까?

나이 들면 전원으로 돌아가 살고 싶다면서 실행에 옮기며 텃밭을 가꾸어 소박한 가을걷이로 풍성한 마음을 이웃들과 나누는 재미로 사는 지인들이 떠올라 부럽다. 어쩌면 도시 생활보다 더욱 몸을 움직여야 하고 손이 많이 가는 생활일진대 시골길에 들어서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자연을 보면 그렇게 살아봄도 좋을듯하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쉬운 일이 아닌 것은 불 보듯 빤한데...

왜 무섬 마을인지 사전 지식이 없는 채로 도착해서 멀리 바라 보이는 외나무다리를 보고서야 언젠가 티브이에서 보았던 나무다리가 무섬다리이며 홍수에 유실된 다리 일부분은 새로이 만들어 보완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모래사장을 지나 구불구불한 둥근 선으로 놓여 아름다운 다리 위에 선다.

겨우 두발을 지탱해서 걸을 수 있는 외나무다리에서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과 만나면 어떻게 하나? 염려가 되었다.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다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속담처럼 원수가 아닌 낯선 여행자와 마주치게 되어 어쩌나 하며 더 이상 진행을 못하고 망설이니 앞에서 마주 오던 분이 한 옆으로 비켜서며 "지나가세요." 한다.

그러고 보니 중간중간 외나무다리 옆에 2미터 정도 길이의 보조 다리를 세워 놓아 마주쳤을 때 비켜서 있도록 해놓은 다리다. 모래사장 위로 있는 다리를 걸어갈 때는 떨어져도 안전하다 생각되어 걷는 것이 재미롭다. 하지만 강물이 점점 깊어지는 곳에 다다르니 조금 겁이 난다. 발을 헛디딜까 봐 바닥을 보면서 걸어 어지러운데 강물이 깊은 곳에서는 물살이 세어 다리에서 떨어질까 봐 무섭고 현기증이 났다.

애써서 물을 바라보지 않고 걸으려면 정면을 바라보아야 하지만 힘들어 비틀거려진다. 하여 나름 게처럼 옆으로 걸으면서 위기를 모면해 본다. 외나무다리에서는 게걸음으로 걸어야 안전하다고 순간 터득 다.

무섬 다리를 건너면서 재미있는 일은 강물이 없는 모래사장 위의 보조 다리 없는 곳에서 마주쳤을 때는 가위바위보 게임을 해서 진 쪽은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밭으로 내려가고 이기는 쪽이 먼저 다리를 지나간다. 지는 사람, 이기는 사람, 모두 유쾌하게 웃으며 건너는 모습을 보니 동심으로 돌아간 듯 재밌다. 그러다 나와 마주친 여행자와는 가위 바위 보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어서 어쩌지? 하는 사이에 그 남자분은

"에이 내가 내려가야지." 하며 타닥! 백사장 위로 뛰어내린다.

"감사합니다."라고 고마운 인사를 했다.  

무섬마을은 아름다운 자연과 고택 그대로 보존된 전통마을로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乃城川)이 마을의 삼면을 감싸듯 흐르고 있어, 그 가운데 섬처럼 떠 있는 육지 속 섬마을인데 그 형상이 마치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모습 연화부수()이며, 풍수지리학상으로 길지() 중의 길지로 꼽힌다.

옛날에 마을 사람들이 나무를 이어 다리를 놓고 내성천을 건너 뭍의 밭으로 일하러 다녔는데, 장마철이면 다리는 불어난 물에 휩쓸려 떠내려갔고,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다리를 다시 놓는 일이 반복됐다. 새로운 콘크리트 수도교가 놓이기 전까지 무섬마을의 유일한 통로 역할을 한 외나무다리는 길이가 150m에 이르고, 폭은 30cm에 불과한 다리인데 폭이 좁아 긴 장대에 의지한 채 건너야 했다. 현재의 외나무다리는 지난 350여 년간 마을과 뭍을 이어준 유일한 통로였던 다리를 마을 주민과 출향민들이 힘을 모아 예전 모습으로 재현시켜 놓은 것이다.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의 우리말 원래 이름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섬 마을 관광해설사의 말을 빌리면 원래는 물섬마을이 발음을 하다 보니 어려워 무섬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 사람이 정착해 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중반쯤으로 전라남도 나주시의 반남을 본관으로 하는 반남박 씨(潘南朴氏) 박수가 처음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뒤, 그의 증손녀 사위인 선성김 씨(宣城金氏)가 영조 때 다시 무섬에 들어왔으며 이 무렵부터 반남박 씨와 선성김 씨가 함께 대대로 살아 오늘날까지 두 집안의 집성촌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전통가옥이 많고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으로 문화재도 많다면서 한 번씩 둘러보라고 하여 돌담을 따라 마을의 고샅길을 걸으며 빨간 감나무와 고택이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탄성을 자아내며 감탄을 한다. 곳곳에 들꽃 같은 추억의 꽃들을 만나 반가워 고택 사잇길을 하염없이 걷고 싶다. 김규진가옥(金圭鎭家屋), 김위진가옥(金渭鎭家屋), 해우당고택(海遇堂古宅), 만죽재고택(晩竹齋古宅) 등을 찾아 고택 앞에 서서 아름다운 기와집을 음미해 본다.

해설사의 설명으로 옛날의 사대부들은 남자들끼리만 계모임을 하고 정자를 지어 그곳에서 시조를 짓고 노래하며 즐겼다고 한다. 돌로만 지었다는 청퇴정(淸退亭)에 오르니 무섬 마을의 정경과 강 건너의 암반 위에 지은 집이 고스란히 눈 안으로 들어왔다. 마치 선경(仙境)처럼.

 한참 구경을 하다 보니 배꼽시계가 울려 식당을 찾아 나선다. 식당도 여러 곳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데  도토리묵무침, 야채 전, 청국장으로 비벼 먹는 산채 비빔밥이 맛이 있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고 일어나 무섬 마을의 유일한 초가카페로 향한다. 고택들 주변에 새로운 건물을 지어 근린시설을 하는 것 같지 않고 선비촌처럼 이곳에도 고택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니 한옥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점심 식사를 맛있게 하고 카페를 찾았으나 초가카페 한 군데가 있다. 하지만 초가는 안 보이고 실처럼 만든  천막 카페에서 커피를? 한옥의 주방에서 커피를 내려 나오는 안주인의 커피맛은  예상외로  커피맛이 좋아 우린 기분이 좋아졌다. 다탁마다 노란 산국, 들꽃을 한 아름 꽂아 놓은 초가 카페에서 커피를 취향대로 마시고 길을 나선다.

무섬마을은 안동 하회마을과 지형이 비슷하고 경관이 아름답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아 옛 모습을 많이 간직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번듯하게 도시화된 상점은 없었고 원두막 같은 간이상점에서 지역의 농산물, 배추 전, 막걸리, 커피 정도 판매하는 정도로 정아 씨는 고구마가 괜찮아 보인다며 한 상자 샀다.

시간에 쫓겨 살던 도시를 떠나 깊은숨을 들이쉬며 2박 3일 동안 여유를  부린 행복한 시간이 서서히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 빠져나가듯이 지나갔다. 점점 헤어져야  시간은 다가와 아쉬운 작별을 남기고야 만다.

영주터미널에 내려준 글벗 일행과 12월 부산의 모임에 참석하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눈을 딱 감았다.

*청퇴정에서

*사진; 노향숙, 박정아, 안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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