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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Dec 24. 2023

하율이, 가방, 하양이

오랜만에 부산 나들이를 다.


글벗 모임날짜에 춰 가면서 하루 일찍 하율이네로 가서 딸과 점심을 먹고, 여유롭게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며 느긋한 시간을 보낸 후 하율이 피아노 학원 앞에 마중부터 갔지.  깜짝 놀라며 달려 나와 부둥켜안고 펄쩍펄쩍 뛰는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친구들과 함께 아이스크림 거게도 들리고, 붕어빵도 사 먹으며 귀가를 하는 자유로움, 그래 이것이 진정한 아이들의 즐겁고 신나는 소소한 재미지.

집에 돌아와 하율이가 할머니에게 가져온 것은 두 개의 굵직한 털실 뭉치 상자다.

"엄마, 하율이가 *이소에서 털실을 사 왔어요. 만들고 싶은 가방이 있다면서."

"무슨 가방? 털실이 엄청 굵네."

"*튜브에 만드는 방법이 나오는데 코 잡는 것을 모르겠더라고요."

"코를 잡는다면 코바늘이나 대바늘이 있어야 하잖아?"

"엄마, 그게 손가락으로 하는 거래요."

"손가락? 처음 듣는데?"

하율이가 탭을 가져와 가방 짜기 동영상을 보여준다.

원래 손뜨개를 해보았던 나는 가방 짜기 동영상을 보며 뚝딱 가방 한 개를 만들었다. 하율인 가방에 리본 테이프로 장식을 하고 곰인형까지 달고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다.

"고학년도 아니고 1학년이 동영상을 보면서 어떻게 만들려고 그랬니?"

"엄마, 며칠 전에 시어머님이 오셨는데 하율이가 털실을 갖고 와서 할머니, 가방 만들어 주세요 하는 거예요."

"그런데 사부인이 못하셨어?"

"동영상을 보며 만들다 만들다가 에이, 난 못하겠다. 하시니까 하율이가 시무룩해져서 거의 울 것 같았어요. 할머니는 뭐든 다 만들 줄 안다고 생각했나 봐요. "

"그랬구나. 그런데 이걸 왜 하고 싶었어? 하율아."

"가방이 꼭 갖고 싶었어요."

"가방이 마음에 들어?"

"네!"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그만 만드세요. 엄마."

털실이 남아 다시 시작하는 내게 딸은 말리지만 남은 털실이 짐이 될까 봐 다시 코를 잡는다.

털실 한 뭉치로 속에서 한 줄 겉에서 한 줄 두 겹으로 의 가방을 만드는 것인데 하율이는 두 가지 색의 털실을 섞어서 만들고 싶다고 해 털실이 남아 한 개를 더 만들어 손잡이를 조금 더 길게 해서 마무리해 줬다.

"난 이런 방법으로 가방 짜기는 처음 해보네, 하율이 덕분에 새로운 걸 배웠네. 요즘 이런 것이 유행인가?"

"엄마, 예전에 다나네 집에서 파자마 파티 할 때 다나가 아영아, 손뜨개 가르쳐 줄게 하면서 털실로 이걸 가르쳐 줘서 조그만 목도리를 짠 적이 있어요. 강아지 목에 맞을만한 정도의 크기로. 그런데 가방은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그럼 미국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해 온 거네. 다나가 미국에서 와 3학년 때 너희 반에 전학 왔으니까."

하율이에게 선물한 원피스. 가방도 선물이 됐네요.

꼭 할머니 어렸을 때처럼 뭔가 끊임없이 하고 싶어 하는 하율인가 보다. 하율이를 보면서 어린 시절이 잠깐 떠오른다. 어른들이 털실로 장갑, 양말을 짜면 똑같이 따라 하고 싶어 짜는 방법을 유심히 보고 배웠다. 털실과 대바늘을 얻어 밤을 새워가며 짜다가 틀려 풀고 다시 짜 올라가다가 풀기를 반복하면서도 재미가 났다. 결국 서툴지만 장갑도 완성하고, 양말 짜기도 성공했는데 지금은 대바늘로 양말 짜는 방법은 다 잊어버렸다.


하율이를 보면서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해보며 자라기를 바랄 뿐 욕심은 없다. 지금처럼 밝고 환하게 나이와 때에 맞는 일들을 슬기롭고 현명하게 헤쳐 나가기만을 바라는 기도의 마음을 하율이도 알 거라고 생각한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말이다.


*하양이는 지난봄에 한 번 보고 이번에 두 번째로 만났는 데 완전 할미 바라기가 되어 내 무릎에서 떠나질 않는다. 딸은 신기해했다. 예전에 호야도 첫날부터 엄마에게 안기고 좋아하더니 하양이도 그런다고. 가족들 옆에 누워 잠은 자도 무릎에서 잠을 잔 적이 없다는 하양인 완전 무방비 상태로 내 품에 안겨 늘어져 잠을 자는 모습에 웃음만 났다.

의자 밑에서 '나좀 안아줘요.'애타는 하양이.

*사진; 양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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