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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Apr 22. 2024

봄날의 송리단길

딸과 함께 누리는 여유~

휴무일에 맞춰 딸이 온다.

서로 바쁜 나머지 3월은 건너고 짜를 조율하여 딸과 만난다. 이번 만남은 홀가분한 마음에서 어쩌면 많이 기다린 날이기도 하다.

말 못 할 마음고생을 나만 했을까.

딸도 여지없이 못난 에미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터....

보이스 피싱인 줄도 모르고 엄한 놈들에게 갖다 바친 돈 때문에 얼마나 속을 끓이며 살았는지 모른다. 이젠 빌렸던 돈도 다 갚을 수 있어 마음이 놓이고 하늘을 날 것 같다. 오전 알바도 끝을 냈으니 딸과 일찍 만날 수 있고 더 오래 시간도 보낼 수 있어 무엇보다 기쁘다.

사과나무꽃.

어딘가 공사 중이어서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2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한 딸에게 돈부터 갚는다.

반가운 인사도 잠시

"엄마, 송리단길에 가서 점심 먹어요"

"그래, 커피는 집에 와서 마시고~"

딸의 돈을 한 푼이라도 아껴주고 싶은 나는 분위기며 뭐며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낭만도 있을 때 부려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요즘엔..

아젤리아가 반기는 메밀집.

딸은 이미 송리단 길의 맛집을 검색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고 서로 좋아하는 메뉴로 정한 것 같았다

난 딸이 권하는 메뉴는 무조건 좋아한다. 미식가이기도 하고 엄마인 내가 무슨 종류를 잘 먹는지 꿰뚫고 있기 때문에 식탁 앞에 어린아이처럼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된다.

저온숙성수육, 메밀국수.

언젠가 딸이 했다가 실패했다는 수비드 수육이 나왔다.

"엄마, 예전에 집에서 만들었다가 잘 안 됐는데 지퍼백에 고기를 넣고 물 온도를 저온, 65도 정도에 맞추고  24시간 동안 두면 수육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수육이 이렇게 부드러워져요."

몇 년째 요리다운 요리를 안 하며 살고 있는 나는 수비드라는 단어조차 신기하기만 하다.

수비드 안심 수육은 부드러워 입에서 살살 녹는다. 작년부터 유난히 치아로 고생하는 나를 위함이리라. 피곤하면 잇몸이 붓고 신경치료하고 크라운으로 씌운 어금니가 아파 가끔 힘들다.

나이가 드니 이곳저곳 삐걱대며 아우성인데 가장 힘든 곳이 치아 문제, 치과치료라면 몸부터 떨린다.

크힘치즈 감자전.

메밀로 만든 음식은 맹모밀이든 막구수든 상관하지 않고 좋아하는데, 이 메밀집의 메밀국수는 특이하다.

식탁에 놓이는 메밀국수를 보고 '어? 이게 메밀국수야?'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소스 위에 비빔메밀, 메밀 위에 새싹순이 꽃처럼 얹어져 있다. 딸이 먹다가 하는 말

"엄마, 메밀국수가 샐러드 수준이에요."

"그렇네, 깔끔하다. 막국수처럼 강렬한 맛은 없어도 신선한데~"

피자 모양과 흡사한 감자전은 정말 바삭하고 과자 같다.

크림으로 토핑하고 슬라이스 치즈를 뿌렸는데 아이들 입맛에도 잘 맞을 것 같았다. 손녀 하율이가 생각났다.

간판이 재밌다. 옛날과 현대의 조화?
망원동 티라미수 내부.

티라미수 게 앞에서 한참 간판을 바라봤다. 세련된 느낌도 없고 옛날 간판을 보는 것 같아 왠지 신선함이 더 다가왔다.

"엄마, 티라미수 사요. 커피랑 먹게." 말을 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딸.

프랜차이즈라는데 실제로 망원동에서 시작한 티라미수 매장은 정작 없어졌고 지방에 <망원동티미수> 매장이 있다는 얘기를 해줘서 리는 웃고 말았다.

송리단 길엔 예쁜 건물이 많고, 리모델링이 한창인 곳도 많았다. 어떤 모습으로 변신할지 기대가 된다.

다음에 또 와야겠다. 딸과 함께~

지난 일 년 동안 마음 고생 시킨 딸에게 원금만 갚으며 미안하여

"이자는 살면서 천천히 갚을게."

"엄만. 별말씀을 다하셔. 원래 안 받으려 했어요"

"안 받으면 내가 안 편하지, 절대 그럴 수는 없어."

혼자 있는 엄마가 씩씩하게 아무런 변고 없이 살아줘야 딸들 마음이 편할 텐데 사고를 쳤으니 애들 앞에  좌불안석이었다.

때때로 찾아와 엄마의 기분을 살펴주고 건강엔 이상이 없는지, 근육이 빠지지 않도록 단백질 섭취는 잘하는지, 운동은 잘하고 있는지 늘 체크하는 딸에게

"발뒤꿈치 드는 운동을 했더니 아프던 발바닥이 안 아파서 살 것 같아. 누가 카톡에 보내줬는데 내게 가장 필요한 운동이더라. 하루에 100개씩 하라는데 난 200개씩은 하게 돼. 시간도 안 잡아먹고 족저근막염과 무릎 관절염에 좋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매일 쩔쩔매던 통증이 사라졌어. 허리도 쫙 펴지고 좋아."

딸도 따라서 해보더니 좋은 운동이라며

"엄마, 근육도 생기고 좋네요. 지난번에 통증도 의사 선생님이 근육통이라고 했는데 그동안 근육이 생겼네~^^"

"맞아, 우리들이 노동을 하면서 어깨, 팔근육이 운동이 됐는지 입사 전보다 인바디 측정 때 근육량이 많아졌다고들 하더라~ㅎㅎㅎ "

커피를 내리고 티라무수를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편안하게 나눈다.

앞으론 걱정 끼치지 않고 살아갈 방도를 늘 생각한다.

최우선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조심조심 살아나가면 봄날의 사과꽃처럼 티 없이 맑고 환한 삶이 될 거라는 마음이 든다.

은 성수동 친구에게 간다는 나를 위해 지하철역에 내려준 뒤 다음을 약속하고 떠났다.

틈만 나면 엄마 사진을 찍어 주는 딸.

*photo by 양유정 & 안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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