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엔 그동안 배시시 웃던 벚나무의 꽃봉오리들이 화사한 햇살을 받으며 까르까르 까르르 웃음소리를 내는 것처럼 보여 함께 호수 둘레길을 걷고 싶어 초대를 해본다.
"왜?"
"여기 벚꽃이 갑자기 다 폈어. 세상이 환하게 보여. 석촌 호숫가 걷자."
"벚꽃은 여기 둑방길도 엄청나. 내일은 비도 온대. 여기로 와."
벚나무들은 굵은 몸통에 꽃코르사쥬를 달고 있다. 요 아이는 세 자매브로치라고 부름.
온 동네를 환히 밝히는 벚꽃.
아침 일찍 일어나 나가서 하던 오전 알바는 오늘 2시간 정도하고 끝이 났다.
경력자가 오면서 이곳에 맞는 일의 순서를 인수 인계하고 10여 개월 하던 일을 시원섭섭하게 끝냈다.
오전에 서너 시간 일을 하고 회사에 출근하는 생활을 하느라 시간에 쫓겨 피폐해졌고
무리가 됐는지 근육통으로 인해 더 이상 지속할 수가 없어 그만하기로 했다.
돌아와 간단하게 집안일을 마치고 친구에게 가면서 '뭐가 좀 필요해?'하며 물었다.
오이와 꽃상추가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2시간 전에 종료 인사를 하고 나왔던 가게에 들렀더니 팀장 하는 말
"여사님, 벌써 얼굴이 밝아지신 것 같은데요?"
과일, 야채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비싼 요즘 오이도 한 개 더 넣어주길래 고맙다 인사를 하며
"그동안 내 몸에 미안했어."
해마다 몸이 다름을 여실히 느낀다. 의욕이 넘치는 마음과 달리 몸은 신호를 보내고 쉬어 주기를 갈망하며 여기저기 우둔하고 반사신경도 활발하지 못해 위기감이 들기도 했다.
친구는 오늘로 일은 다 끝냈냐며 반가이 맞아준다.
"이제는 여유가 있어서 좋네. 내 마음이 다 푸근하다. 그동안 어쩌지도 못하고 애만 탔다."며 휴무라고 해도 오후 잠깐 시간 내서 만났다가 후다닥 헤어지던 날들이 떠오른 모양이다.
둑방길의 벚꽃터널.
둑방길로 가는 길에 메밀국숫집에 들려 점심식사를 하고 중랑천 둑길로 들어선다.
줄지어 서 있는 벚나무들은 환하게 꽃불을 밝혀 벚꽃 터널을 만들고 이미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역시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 그 틈에 끼여 우리도 꽃길을 걸어 본다.
꽃만 찍는 내게 우리도 한번 사진을 찍어 보자는 친구.
하지만 셀카를 잘 찍지 못하는 나는 연속 실패를 한다. 친구 왈
"정말 좋은 인물을 다 버려 놓네. 내가 찍어 줄게."
"하하하, 난 인물 사진을 못 찍는다니까."
친구의 셀카와 '여기 봐' 하며 사진을 찍어 줌.
조팝나무꽃과 종자나물(미국제비꽃)
난 여전히 꽃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오랜만에 여유롭게 느릿느릿 시간을 보내며 살짝 하얀 꽃을 피워 올리기 시작한 조팝나무며 풀꽃을 찾아 핸드폰을 들이미는 내게
"우리가 꽃인데 뭐 하러 꽃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냐?"라고 해서 나이 든 할미소녀 둘은 깔깔깔 웃는다.
둑길에 나온 사람들은 젊거나 나이 들거나 할아버지 할머니도 모두가 사진작가가 되어 벚꽃 사진을 찍느라 열중한다.
오전에 잠깐 봄비가 내렸는데 비는 그치고 땅은 마르고 알맞게 흐려 걷기에 좋은 날씨다. 그래서 더욱 사람들이 꽃을 보러 많이들 나온 모양이다.
"이제 또 언제 언제 놀아?"
"00 날,00 날 손을 꼽으며 월요일은 네가 안되고 금요일도 안되지? 아들네 가는 날이잖아
화요일엔 울 막내 오고...."
'쉬는 날은 이제 뭐 할 거야? 24시간이 모자라는 여인아."
"여름 대비해서 이것저것 액세서리 만들어야 하니 재료상에도 가고."
"재료상에 갈 때는 나도 데려가."
"알았어."
계획은 퀼트 작품도 하고 멈춰 있는 스마트 스토어도 활성화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둑길을 한참 걷다 보니 커피 생각도 나고 둑길 아래 적당한 카페가 보여 내려가 들어간다.
그곳엔 주택을 리모델링해서 군데군데 카페로 변한 곳이 많다. 예전에 와서 걸을 때 안 보이던 카페가 여럿 생겨난 것을 보면 이곳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여겨진다.
편안한 자세로 느긋하게 커피를 마셔본다.
커피가 고팠던 참에 후후 불며 후루룩 후루룩 커피를 마시는 내게
"에쁘게 웃어봐, 사진 찍어 줄게."
사진이라 하면 어색해지는 나. 그냥 웃으며 친구를 바라본다.
"히히히..."
친구에게 가는 길에 자목련이 예뻐서.
얼마 만에 근심 걱정 없이 이런 시간을 보냈던가.
마음은 소녀로 꽃에 동화되어 하얀 웃음을 날려보고 느긋하게 커피도 마셔 본다.
집에 돌아와 잠깐 쉬더니
"떡볶이 어때? 떡볶이 먹자."
"좋아, 떡볶이 안 먹어본지도 오래됐네."
요리 솜씨가 좋은 친구는 밖에 나가서 저녁 먹자는 내게
"간장? 고추장?"
"간장!"
매운 것을 즐기지 않아 궁중떡볶이를 생각해 낸다.
친구는 도깨비방망이라도 휘둘렀는지 금세 뚝딱 떡볶이를 만들어 대령한다.
떡볶이, 염색샴푸와 반찬거리를 챙겨 줬다.
친구와 있으면 난 어린아이가 된다.
친구는 마치 언니처럼, 엄마처럼 나를 보살펴 준다.
혼자 지내다 보면 먹는 것이 아주 단순해져 만들지 않는 음식이 많아지는데 떡볶이가 많다며 싸주면서 집에 가서 먹으란다. 또 냉동실, 냉장실을 번갈아 열어보며 뭔가 더 보낼 것은 없나 살펴본다. 얼마 전에 펌을 한 내 머리를 찬찬히 살피더니 간편한 염색 샴푸 하나 줄 테니 염색 다시 하란다. 귀 옆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요기, 요기 신경 써서 문질러 주고 해." 한다.
"올 때마다 뭘 그리 싸주려고 그래? 무거워 그만해"
오동나무도 봄채비를 하고 있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간다.
며칠 전부터 수줍어 살며시 미소 짓던 꽃봉오리, 갑자기 높아진 기온 때문인지 봄바람 때문인지 어느새 활짝 웃음소리를 낸다. 환한 햇살 아래 간지럼 타며 저희들끼리 재잘재잘, 키들키들, 까르르 숨 넘어가듯 웃는 것처럼 보여 절로 미소 지어지는 풍경에 마음은 즐겁다.
친구와도 환한 벚꽃길을 걸으며 마음껏 재잘거렸다.
인생의 후반기에 있는 우리들, 어떻게 살아야 마무리를 잘하고 갈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고민이기도 하다.
우리 둘은 아직 일을 손에서 놓을 수는 없다. 친구는 2학년인 손주 보살피러 일주일에 두 번씩 아들네로 간다. 직장에 다니는 나와 자주 만날 수는 없지만 한 번씩 만나면 주로 걷기를 한다. 무리되지 않는 8000~10000보 정도 걸으며 밝은 생각만 하기로 한다.
달이 바뀌면 언제가 휴무일이냐며 만남을 위해 편한 날을 조율하는 우리.
그래 이제 우리는 봄날의 훈풍처럼 부드럽고 꽃처럼 예쁘게 살아가는 일만 남은 거야.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