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아, 언니가 예쁜 옷 만들어 줄게. 신던 양말을 잘라서 만들겠지만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멋지게 만들어 줄게.'
"엄마, 어제 못 신게 된 양말 버렸어요?"
"아니, 아직 안 버렸어."
어제 학교에서 돌아와 양말에 구멍이 났다면서 벗어 놓은 양말.
이상하게 찢어져 신을 수 없는 양말을 하율이가 다시 달라고 하는데 '왜지?' 하면서도 딸은 버리려고 다용도실에 놓아둔 양말을 가져다줬다. 원래 쓰던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하율이다. 지금은 좀 커서 많이 바뀌었지만 어렸을 때는 들고 다녔던 생수병도 버리지 말라며 울고, 음식점에서 먹다 남긴 밥도 두고 오면 울었다. 제 엄마는 그럴 때마다 난감했지만 생수병은 가져오고 남긴 밥은 딸과 사위가 먹어야 했다. 그것들이 불쌍하다며 우는 아이를 달랠 방법은 하율이가 원하는 대로 해야 했던 나날들이 있었다.
양말을 손에 들고 예전에 내가 만들어준 바느질함을 찾아 바느질을 시작하는데 마음이 조마조마했을 것이다. 바느질은 아직 해보지 않았는데 어쩌려나?
하율이는 생전 처음 바늘로 뭔가를 하는데 얼기설기 실로 엮은 것처럼 보인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바느질을 끝내고 오랑우탄 인형에다 옷을 입혔다.
양말을 뚝딱뚝딱 가위로 자르고 바늘에 실을 꿰어 듬성듬성 꿰맨 인형옷은 꽤 괜찮아 보인다.
사진으로 보아하니 발목 부분을 옷소매를 만들고 영어 문장이 들어간 발 뒤꿈치 부분을 잘라서
옷자락 앞면에 넣은 것을 보면 상당히 고심해서 한 것이 역력하고 상당히 센스 있게 잘 만들었다.
하율의 마음에 할머니가 바느질을 잘할 거라고 생각해 줘서 고맙다. 할머니는 어린 손녀가 바느질을 했다니 바늘에 손가락은 찔리지 않았을까 걱정부터 했는데...
전화를 해서 잘 만들었다고 격려의 말을 해주는 내게 하율이는
"할머니, 할머니가 인형옷 만들어 줄 수 있어요?"하고 묻는다.
"당연하지 다음에 가서 만들어 줄게. 지금 하율이가 만든 것도 엄청 잘 만든 거야."
하율이 생각에는 자기가 만든 것이 제 엄마 말처럼 어설퍼 보였나 보다. 다음에 내려가서 깔끔하게 만들어 하율이 마음에 쏙 들도록 해줘야겠다고 다짐하며 약속을 했다.
하율이의 달 그림.
딸네 집에 가면 하율이 작품이 여기저기에 놓여 있다.
도시와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곳에서 살고 있는 하율이가 참 좋다. 다음엔 지금보다 복잡한 곳으로 이사를 할 예정이라 난 조금 아쉽다.
눈을 뜨면 산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곳에서 감성이 풍부한 아이로 자라며
때때로 그림도 그리고 방과 후 공예시간에 만드는 물건들이 신기하다.
그 작은 손으로 야무지게도 요것조것 작품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볼 때면 마음이 뿌듯해져 온다.
어릴 때부터 치열한 경쟁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친구들의 손주들이 떠오르면서 무엇이 정답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평안이 하율이를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시킬 것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아이는 아이답게 자라야 하니까.
하율이가 내준 인형옷 숙제로 다음에 내려가서 하율이 마음에 쏙 들도록 만들어 줄 수 있을지 괜스레 걱정도 된다. 잘 만들어서 하율이가 좋아할 것을 그려보며 행복한 미소가 번지면서 말이다.
어느새 키도 쑥 커버린 하율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다음에 만날 때는 이 할머니 키보다 더 커버린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