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글벗님들~
가을 여행의 끝.
2박 3일의 여정을 마치고 버스 터미널 근처 카페에 앉았다.
아쉬움 가득 담은 채 커피를 마시며 전에 선물한 스카프를 우아하게 맨 모습을 보며 속으로 감탄하다가 한마디 했다.
"어쩜! 볼떼마다 향숙 씨는 스카프도 정말 예쁘게 해요?"
그러자 정아 씨가
"나는 이런데 언니는 정말 예쁘게 한다."
"정아 씨도 예뻐."
정아 씨는 다시 스카프를 매만진다. 경숙 언니가
"나도 그거 있는데 가방에." 하면서 하고 있는 스카프를 만지며 나도 저걸로 할 걸 그랬나? 하는 표정이시다.
서로들 잘 쓰고 있다고 언제나 고마워하는 분들. 특히 니트 입을 때 목에 두르면 얼마나 좋은 지 몰라. 목에 두르면 쌀쌀한 날씨에 목 보호도 되고 처음에 해준 거는 이제 나른 나른 해지도록 잘 썼어. 하며 한결같은 마음을 보여준다.
"난 잘 때 꼭 목에 두르고 자요. 그럼 감기도 안 걸리고 좋거든요."
목이 따듯해야 잠도 잘 오고 기침도 나지 않아서 면 쪼가리만 있으면 목에 두르기 좋게 스카프를 여러 개 만들어 둔다.
옷 만들기를 배우고 난 뒤 모임에 갈 때나다 뭔가 해주고 싶은 마음에 시작된 선물. 비싼 물건은 아니지만 사려면 왠지 선뜻 내키지 않은 파우치, 목에 간단히 두를 작은 스카프가 소소하게 필요하다. 내가 만들어서 하다 보면 좋아서 한 개씩 만들어 갖고 가는 일은 내겐 즐거움이다. 명품도 아니고 비싸지도 않지만 벗님들은 너무나도 소중하게 여기며 다들 좋아했다.
이번에도 예전과 다름없이 목에 스카프를 두른 글벗님들. 이틀 동안 다른 것으로 바꿔가면서 해주니 마음이 뿌듯하다. 여행에서 만나면 수년 전에 해준 파우치가 커다란 캐리어에서 종류별로 나와 나를 감동시킨다. 오래전 파우치를 가리키며
"그 무늬가 참 예쁜데 요즘은 그런 게 안 나와요."
"이거 참 좋아. 어딜 가도 필요한 거라서."
방수천 유행도 세월 따라 변해서인지 많이 달라졌다. 요즘 방수천이 점점 얇아지는 추세라서 조금 두껍고 각지게 만들고 싶은 것도 있는데 어렵다.
소지품을 넣을 때 얇고 부드러운 것은 얇은 파우치에.
큰 파우치엔 속옷과 티셔츠 종류. 조금 두꺼우면서 강한 파우치엔 단단한 화장품 종류를 넣으면 좋듯이...
암튼 벗님들은 용도에 맞게 사용도 잘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오랜만에 예쁜 그림의 방수천으로 파우치를 만들고 서랍 속의 애장품들을 꺼냈다.
좋은 분들에게 가면 더 대접받고 유용하게 쓰일 것 같아서 가방 모양과 글벗들을 어느 분에게 가면 좋을까를 매치시켜 보았다.
네모 가방은 경숙 언니 성경책 넣어 교회 갈 때 좋을 것 같고. 강아지 그림은 향숙 씨가 동네 나들이 할 때 함께 산책하면 되고, 스티치 가방은 막내 정아 씨가 들면 어울릴 것 같다. 핸들링 없이 가방만 주었는데 자수, 염색, 다도 등 갖가지 솜씨를 내장하고 있는 막내 정아 씨는 예상대로 집에 있는 가방 줄로 예쁘게 완성했다.
사실은 여행 전날 다른 일을 좀 하다가 늦게서야 새로운 파우치를 만들고 싶어 미싱 앞에 앉았다. 예전 같은 몸인 줄 알고 시작하면 금방이라고 생각하며 시작한 일이 새벽 3시에 끝났다. 잠 안 자고 만들어 선물하는 것을 원치 않는 글벗님들이지만 일 마치고 돌아오면 늦은 시각인 데다 우물쭈물 한눈팔다 보면 금세 12시가 넘어버린다.
7시 첫 차를 타고 담양을 가려면 5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잠깐 간 눈을 붙였다 일어나야지 했는데 알람소리도 못 듣고 그만 날이 훤해졌음을 알고 기암 하듯이 일어났다. 이런 일이 난생처음이라 너무 당황스럽고 황당해서 말로 표현이 안된다. 앞이 캄캄했다. 어쩔 줄 모르다가 멘붕이 온 상태에서 다시 예매를 하고 글벗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나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조금 늦게 만나는 것뿐 일정이 크게 틀어지지는 않는다며 글벗님들은 안심을 시켰다.
담양은 둘레둘레 짧은 거리 안에 둘러볼 것이 있으니 구경하고 있겠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고속버스로 가는 담양의 초행길에 '내가 왜 그랬을까'를 연신 되뇌며 앞으론 이런 일을 절대 만들지 말자 뭔가 만들고 싶은 것이 있으면 미리미리 만들어 두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아득하고 두근거리던 가슴이 진정된 끝에 담양에 도착해서 글벗들과 합류했다.
글벗들의 반가운 얼굴을 보고서야 아침 황망했던 순간은 어느새 말끔히 두둥실 파란 가을 하늘로 사라졌다.
*photo by young.